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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천병희 옮김, 숲, 2021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배경지식
박코스 여신도들은 디오뉘소스 신에게 대항한 펜테우스가 맞이하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비극은 테바이 신화에 해당하는데, 테바이 신화에는 오이디푸스 비극이나 테바이 전쟁 이야기 등이 있다. 그러므로 테바이 신화 비극의 시작으로 이 작품을 택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배경지식으로 테바이의 창건 신화와 펜테우스까지의 가계도, 디오뉘소스 탄생 신화를 한 번 보자.
지난 번에 아이스퀼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에서는 이오의 후손들을 살펴보았다. 이오의 후손 중 한 명인 리뷔에는 벨로스를 낳았고, 벨로스는 쌍둥이 형제인 아이귑토스와 다나오스를 낳았다. 아이귑토스는 50명의 아들을 낳고, 다나오스는 50명의 딸을 낳았는데 『탄원하는 여인들』은 아이귑토스의 50 아들들이 다나오스의 50 딸들에게 구혼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또한, 에우리피데스의 『이온』에서는 데우칼리온(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의 자손들과, 에릭토니오스(헤파이스토스)의 아들)의 자손들이 이루는 아테나이 왕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테바이 왕가를 살펴보자.

그림 1. 이오에서부터 카드모스, 디오뉘소스와 펜테우스에 이르기까지의 가계도,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3.1–4 참고
이오의 후손 중 하나인 리뷔에는 벨로스와 함께 아게노르를 낳는다. 아게노르는 에우로페와 카드모스를 낳는다. 그런데 에우로페는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크레테로 갔다. 에우로페와 남매였던 카드모스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에우로페를 찾아나섰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아게노르는 아들들에게 에우로페를 찾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카드모스는 어머니 텔레팟사와 함께 트라케에 머물게 된다.
에우로페가 실종되자 아게노르는 그녀를 찾기 위해 아들들을 내보내며 발견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그녀의 어머니 텔레팟사와, 포세이돈의 아들인 타소스도 그녀를 찾아 나섰다. (…) 카드모스와 텔레팟사는 트라케에 정착했고 타소스도 역시 트라케에 타소스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에 정착했다.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1.1
어머니 텔레팟사가 죽자 카드모스는 에우로페가 어디있는지 묻고자 델포이의 신탁소에 찾아간다. 그런데 신탁은 카드모스에게 에우로페를 찾지 말고, 암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다가 암소가 쓰러져 눕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고 했다. 카드모스는 신탁에 따라 암소를 따라 가서 암소가 지쳐누운 곳에 나라를 세우기로 한다. 카드모스는 암소를 신에게 바치려고 부하들에게 근처 연못에서 물을 길어오게 하였다. 그런데 그 연못에는 아레스의 자손인 용이 살고 있었다. 부하들은 연못의 용에게 모두 죽었다. 카드모스는 연못에 가서 용을 죽였다. 아테네 신은 카드모스에게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고 그들을 부하로 삼으라고 한다. 카드모스는 아테네의 조언에 따라 용의 이빨을 땅에 뿌렸다. 그랬더니 땅에서 전사들이 솟아나왔다. 이 전사들을 ‘스파르토이’라고 한다. 카드모스는 전사들, 즉 스파르토이를 향해 돌을 던졌는데, 그들은 함께 솟아난 다른 스파르토이가 돌을 던진 줄 알고 서로 싸웠다. 결국 스파르토이는 5명만 남게 된다. 그들은 카드모스를 도와 테바이 도시를 세우게 된다(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4.1;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3권 1–137행 참고).
절름발이이자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는 아프로디테와 결혼한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절름발이인 헤파이스토스보다는 용맹한 전쟁의 신인 아레스를 더 좋아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헤파이스토스 몰래 간통하게 된다. 하지만 태양신이었던 헬리오스는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헬리오스는 이 사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린다. 헤파이스토스는 화가 나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 덫을 침대에 설치하게 된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침대에서 다시 간통하려 할 때 그들은 헤파이스토스가 설치한 덫에 걸리게 된다. 헤파이스토스는 신들에게 모두 보라고 하지만, 신들은 그것을 보고 불쾌해하기는 커녕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했다(이후 아프로디테에게 버림 받은 헤파이스토스는 아테나이에게 연정을 품고 달려들지만, 땅에 정액을 쏟아 에릭토니오스를 낳는다. 『이온』 배경지식 참고).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간통한 이후 하르모니아라는 딸을 낳는다.
나는 태양신(헬리오스, 라틴어: 솔)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거예요. 이 신이 베누스(아프로디테)와 마르스(아레스)의 간통 장면을 맨 먼저 본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만물을 맨 먼저 보는 신이니까요.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는 정신이 아득해져 손질하던 일거리를 손에서 떨어뜨렸어요. 그는 즉시 청동을 줄로 쓸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는 사슬과 그물과 올가미를 만들었지요. 가장 가는 실도, 아니 대들보 위에 매달린 거미줄도 이 작품을 능가할 수는 없었어요. (…) 그들은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기술과 교묘하게 준비한 사슬에 걸려들어 서로 포옹하던 중에 둘 다 꼼짝없이 붙잡혔지요. 렘노스의 신(헤파이스토스)이 즉시 상아로 만든 문짝을 활짝 열고 다른 신들을 들여보냈지요. 두 신은 사슬에 걸린 채 창피하게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 하지만 신들은 불쾌해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자기도 그렇게 창피를 당해봤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4권 170–189행
카드모스는 아레스의 용을 죽인 죗값으로 아레스 밑에서 8년간 종살이를 하게 된다. 이후 아레스의 총애를 받아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인 하르모니아를 아내로 삼게 된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가 결혼할 때 모든 신들이 참여해 그들을 축하해줬다. 그때 헤파이스토스는 결혼 축하 선물로 아주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 카드모스에게 준다. 카드모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목걸이와 아테네에게 받은 아름다운 결혼 예복—로브(가운)를 하르모니아에게 결혼 선물로 준다. 이후로 이 목걸이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라고 불리는데, 이 목걸이를 가지면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가 자기 아내가 자기 동생과 간통하여 낳은 자식에게 준 선물에 질투가 담겨있는 건지, 이 목걸이를 가진 사람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저주가 걸려있다. 테바이 왕가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대부분은 이 목걸이를 가진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네 딸 아우토노에, 이노, 세멜레, 아가우에과 아들 폴뤼도로스를 낳는다(나중에 일뤼리오스라는 아들을 또 낳는다). 하르모니아는 자신의 목걸이를 자신의 딸 세멜레에게 준다. 이후 세멜레는 제우스와 교합하여 디오뉘소스 신을 잉태한다. 이에 질투한 헤라는 세멜레에게 늙은 유모로 변장해 가고, 헤라가 오는 그날 세멜레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착용한다. 유모로 변한 헤라는 세멜레에게, 제우스가 진짜 제우스라면 헤라와 사랑의 포옹을 할 때의 모습으로 세멜레에게 와달라고 제우스에게 요구해보라고 한다.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그렇게 요구한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어떤 요구든지 들어주기로 스튁스 강에 맹세했으므로,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세멜레의 요구에 응하게 된다. 제우스는 수레를 타고 무장한 상태로 번개와 천둥을 들고 번개를 던지며 세멜레의 앞에 나타났다. 세멜레는 제우스의 광채를 보고 질겁하고 불에 타 죽었다. 제우스는 죽은 세멜레의 뱃속에서 아직 달이 차지 않은 디오뉘소스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맸다. 세멜레의 자매들인 아우토노에, 이노, 아가우에는, 세멜레가 아무 남자와 동침하고서 제우스와 교합했다고 거짓말하여 불에 타 죽은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디오뉘소스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나자, 헤르메스는 디오뉘소스를 세멜레의 자매였던 이노와 그녀의 남편인 아타마스에게 데려가, 디오뉘소스를 소녀처럼 기르라고 했다.
세멜레에 관해 말하자면 그녀한테 반한 제우스가 헤라 몰래 그녀와 동침하며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헤라한테 속아 그가 헤라한테 구혼할 때 다가갔던 모습으로 자기한테 와달라고 요구했다. (…) 세멜레는 질겁하며 죽었고 제우스는 불에서 여섯달 된 태아를 꺼내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맸다. 세멜레가 죽자 카드모스의 다른 딸들은 세멜레가 남자와 동침하고는 제우스에게 그 죄를 씌우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때가 되자 제우스는 꿰맨 자리를 풀고 디오뉘소스를 낳아 헤르메스에게 맡겼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이노와 아타마스에게 아이를 데려가 소녀처럼 기르도록 설득했다.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4.3
디오뉘소스는 헤라의 질투를 피해 새끼 염소로 변하기도 하지만, 헤라에 의해 결국 미쳐서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때 포도나무를 발견하고 여기저기에 포도를 재배하는 법을 전수한다. 디오뉘소스는 아이귑토스(현재의 이집트)에 갔다가, 프뤼기아(현재의 터키)에 간다. 프뤼기아에서 레아에게 죄를 정화받고, 비의를 배운다.
디오뉘소스는 소아시아 인근에 있는 섬들을 돌아다닌다. 이카리아 섬에서 낙소스 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는 해적선에 탄다. 그런데 해적들은 소아이사에 디오뉘소스를 노예로 팔아 몸값을 받으려고 항로를 바꿨다. 그러자 담쟁이덩굴이 배를 휘감고 올라왔고, 덩굴에서 포도 열매가 열렸다. 선원들이 두려워서 바다에 뛰어들자, 선원들은 돌고래로 변했다. 바다로 빠지지 않은 선원들은 디오뉘소스를 추종하는 무리가 된다(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5.3;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3권 582–691행 참고).
디오뉘소스는 트라케, 인디아를 돌아다니며 디오뉘소스적 광란에 몸을 맡기는 비의를 퍼뜨린다. 이때 디오뉘소스를 따라다니는 박코스 여신도들 무리가 생긴다. 그러면서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미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이후 디오뉘소스는 테바이에 돌아오고, 자신을 믿지 않고 어머니 세멜레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뜨렸던 이모들—아우토노에, 이노, 아가우에를 미치게 만들어 박코스 여신도 무리에 합류하게 한다.

그림 1. 이오에서부터 카드모스, 디오뉘소스와 펜테우스에 이르기까지의 가계도,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3.1–4 참고
세멜레의 자매들인 아우토노에와 이노, 아가우에, 남매인 폴뤼도로스의 이야기를 좀 더 보자. 아우토노에는 아리스타이오스와 결혼하여 악타이온을 낳는다. 악타이온은 30마리가 넘는 뛰어난 개들을 이끌고 사슴을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악타이온은 제우스의 아내인 세멜레를 보고 연정을 품고, 아르테미스보다 사냥을 잘한다고 교만하다가, 동굴에서 목욕하던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알몸을 보게 된다. 이에 화가 난 아르테미스는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하게 하고 그가 그의 개들에게 먹히게 한다(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4.4;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3권 138–252행 참고).
이노는 아타마스와 결혼하여 아들 레아르코스와 멜리케르테스를 낳는다. 아타마스는 이전에 네펠레와 결혼했는데, 네펠레는 아들 프릭소스와 딸 헬레를 낳았다. 이노는 프릭소스와 헬레의 새엄마가 되어 이들을 학대했다. 이노는 거짓 신탁을 꾸며 프릭소스와 헬레를 제물로 바치게 하였다. 하지만, 황금 양이 나타나 프릭소스와 헬레를 구하게 된다. 헬레는 결국 바다에 떨어져 죽지만, 프릭소스는 황금 양을 타고 콜키스 지방으로 가게 된다. 이 황금 양은 죽어서 황금 양 가죽이 되는데, 이는 나중에 아르고 호 원정대가 목표로 하는 것이다. 아르고 호 원정대는 테세우스나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당대 모든 영웅이 모여, 이아손을 도와 황금 양 가죽을 가지러 가는 이야기이다. 프릭소스와 헬레를 학대했던 이노는 나중에 헤라에 의해 미쳐서 자신들이 낳은 자식들도 죽이고 자기도 바다에 빠져 죽는다(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1.9.1–2 참고).

그림 2. 고대 테바이의 역대 왕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3.1–7 참고]
세멜레와 남매인 폴뤼도로스는 랍다코스를 낳는다. 폴뤼도로스는 펜테우스에 이어 테바이 3대 왕이 되고, 아들 랍다코스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랍다코스는 아테네의 5대 왕 판디온 1세와 싸웠던 왕이기도 하다. 랍다코스는 라이오스를 낳고, 라이오스는 저주를 받는다. 라이오스의 아들은 오이디푸스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당하는 비극에 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자.
아가우에는 『박코스 여신도들』의 주인공인 펜테우스를 낳는다. 어린 펜테우스는 카드모스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테바이의 2대 왕이 된다. 펜테우스는 박코스 여신도들이 테바이에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그래서 테바이 전역에서 디오뉘소스를 숭배하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서부터 『박코스 여신도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줄거리 및 직픔 해석
카드모스는 지혜로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말을 듣고, 디오뉘소스 신을 환영하기 위해, 박코스(디오뉘소스) 축제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 카드모스는 새끼 사슴 가죽을 걸치고, 머리에는 담쟁이 덩굴로 만든 관을 쓰고, 튀르소스라고 하는 막대기를 들고 춤을 추려고 한다.
카드모스의 손자이자 테바이의 왕인 펜테우스는 향락적인 박코스 축제를 싫어하기 때문에 디오뉘소스를 모욕하고, 그를 붙잡으려고 한다. 펜테우스의 시종들은 명령에 따라 박코스 축제에 참여한 여자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둔다. 또한, 명령에 따라 디오뉘소스를 잡아오고, 그를 가둔다. 그러나 디오뉘소스는 지진을 일으켜 감옥에서 탈출한다. 함께 탈출한 박코스 여신도들은 도시 밖의 산으로 올라가 미쳐서 소를 맨손으로 잡고, 땅에서 젖과 꿀, 포도주가 흐르게 하는 등 기적을 일으킨다. 박코스 여신도들 중에는 펜테우스의 친어머니인 아가우에와 펜테우스의 이모들인 아우토노에, 이노도 있다. 그녀들은 제일 미쳐서 박코스 여신도들을 앞장서서 인도하고 있었다.
펜테우스는 디오뉘소스 축제의 비밀 의식을 보고 싶어서 여자로 변장하고, 디오뉘소스와 함께 산으로 올라간다. 펜테우스는 전나무 위에 올라가 숨지만, 그녀의 어머니 아가우에가 펜테우스를 제일 먼저 발견한다. 아가우에는 무리를 이끌고, 펜테우스를 포위한다. 펜테우스의 이모들은 펜테우스의 팔을 뽑고, 신체를 갈기갈기 찢는다. 펜테우스의 친어머니 아가우에는 미친 상태이므로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펜테우스의 머리를 뽑는다. 그것을 튀르소스 막대기에 꽂고 자신이 사자를 사냥했다며 자랑스럽게 테바이 시민들에게 자랑한다. 카드모스는 널려있는 손자 펜테우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아가우에에게 정신을 차리게 한다. 디오뉘소스 신이 나타나 자신을 믿지 않고 모욕한 펜테우스와 아가우에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아가우에는 살인죄로 인해 테바이에서 추방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야기를 읽어 보면, 디오뉘소스 축제는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여자 옷을 입고 춤을 춰야 하는 축제를 탐탁지 않아 하는 펜테우스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펜테우스는 그런 축제에 참여하는 할아버지 카드모스가 우스꽝스럽고, 그런 행동에 의해 가문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디오뉘소스가 펜테우스에게 내리는 형벌은 지나치게 끔찍하다. 그는 미쳐버린 그의 친어머니에 의해 찢겨졌으며,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이런 끔찍함은 에우리피데스가 신에 대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비합리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드모스: 하지만 그대의 벌은 너무 가혹하나이다.
디오뉘소스: 그대들이 신인 나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카드모스: 하지만 신들께서는 인간들처럼 노여워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1346–1348행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완전한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그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합리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박코스 여신도들』을 읽을 때에는 디오뉘소스 신의 비합리적인 끔찍함도 봐야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코스모스라고 불리는 그리스인들의 자연적인 조화와 신에 대한 믿음도 함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어떤 조화가 담겨있을까? 그것을 알려면 먼저 디오뉘소스 신이 상징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디오뉘소스 신은 쾌락, 특히 향락적인 쾌락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의 신이고, 춤과 기쁨을 몰고 다닌다. 디오뉘소스는 인간에게 있는 향락적인 면을 상징한다. 그런 향락적인 면은 분명 인간성이다. 그런 향락은 인간이 과거의 고통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또한 하루하루의 행복에 충실하게 만든다. 그리스인들이 디오뉘소스를 섬긴 것은 이런 인간성 중 하나인, 지극히 인간적인 향락적인 면을 섬겼던 것이다.
코로스 (좌1): 복되도다, 은총에 힘입어 신들의 비의를 알고는 신성한 봉사의 삶을 살아가며 마음속으로 신을 떠받드는 무리의 일원이 되고, 신성한 정화를 위해 산속을 떼 지어 거니는 자는! 복되도다, 위대한 어머니 퀴벨레의 의식에 따라 튀르소스를 흔들며 머리에 담쟁이 덩굴 관을 쓰고 디오뉘소스를 섬기는 자는! (…)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73–82행
코로스 (종가): 부와 권세를 위한 경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다른 방법으로 앞지른다네. (…) 하지만 그날그날 행복한 삶이 주어지는 자를 나는 진실로 행복하다고 기린다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904–912행
코로스 (우2): (…) 그분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이에게도 근심을 잊게 해 주는 포도주의 환희를 똑같이 나눠주신다네. 그러나 그분은 낮과 행복한 밤에 축복받은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고, 지혜롭게도 초인들로부터 생각과 마음을 멀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신다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421–429행
그런데 지혜를 추구한다는 자들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은 이런 인간적이고 향락적인 면모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이런 향락적인 면모가 저급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욕망을 억압하고, 자신이 그런 인간성을 초월한 것처럼 교만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허영이다.
다오뉘소스: (…) 그러나 그자는 내 신성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여 제주에서 나를 배제하고 기도를 해도 나를 생각지 않아. (…)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44–45행
카드모스: (…) 나는 튀르소스를 가지고 밤낮없이 땅을 쳐도 지치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노인이란 걸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테이레시아스: 나도 마찬가지올시다. 나도 젊음을 느끼며, 함께 어울려 춤추고 싶소이다.
(…)
카드모스: 온 도시에서 우리만이 박코스를 위해 춤추는가요?
테이레시아스: 우리만 현명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이지요.
(…)
카드모스: 나는 인간인 주제에 결코 신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오.
테이레시아스: 나는 신들과는 결코 다투지 않을 거요. 우리가 선조에게 물려받은, 그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전통들은 어떤 논리로도 뒤엎지 못하지요. 심오한 지혜가 오묘한 논리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카드모스: 내가 이 나이에 담쟁이덩굴 관을 쓰고 춤추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말할 사람도 더러 있을 거요.
테이레시아스: 하지만 신께서는 젊은이만 또는 늙은이만 춤춰야 한다고 명령하시지 않았소. (…)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187–207행
펜테우스의 할아버지인 카드모스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인간의 향락적인 면모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늙어서 체면을 지키는 것보다는 춤을 추며 디오뉘소스를 환영하고, 춤을 추고, 삶을 즐기려고 한다.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향락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펜테우스: (…) 축제에 참가한 무리 한가운데에는 넘치는 (포도주) 희석용 동이들이 있고, 계집들은 사내들과 사랑을 즐기려고 저마다 은밀한 곳을 찾아 살금살금 숨어 드니, 그들은 자신들이 박코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마이나스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박코스보다는 아프로디테를 더 공경한다더군. 그래서 내가 그들을 잡는 족족, 내 시종들이 수갑을 꽁꽁 채워 공공 감옥에 안전하게 가두었지. (…) 내가 그들을 무쇠 그물로 꽁꽁 묶으면 이 해로운 박코스제도 끝장나겠지. (…) 내가 여기 이 집안에서 그자를 붙잡는다면, 그자의 목을 몸통에서 떼어 놓아 두 번 다시 그자가 땅을 튀르소스로 치고 머리털을 흔들지 못하게 하겠어.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220–240행
펜테우스: 우리는 박코스 여신도들과 싸울 것이다. 여자들에게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로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784–786행
펜테우스는 향락적인 면모를 무시하기 시작한 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눈앞의 향락을 즐기는 것은 그에게 옳지 않아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스꽝스럽고, 지위가 낮아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향락을 즐기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박코스 여신도들과 디오뉘소스를 붙잡아 감옥에 넣으려고 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다른 욕망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두려고 한다. 이것은 욕망과의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그는 디오뉘소스의 목을 몸통에서 뽑겠다고 하지만, 그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코로스 (우): 전에 용에서 태어난 펜테우스가, (…) 그자는 필멸의 인간이 아니라 사나운 괴물로서 피투성이 거인처럼 신들과 싸우는구나!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537–544행
코로스 (좌): “(…) 그자는 여자의 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암사자에게서 태어났거나, 리뷔에에 사는 고르고들의 족속이로다.” 정의여, 눈에 보이게 오소서, 칼을 갖고 오소서. 그리고 신도 없고 법도 없고 정의도 없는 자의, 에키온의 대지에서 태어난 자식(펜테우스)의 목구멍을 꿰찌르소서!
코로스 (우): (…) 광기와 만용으로 나서서 제압될 수 없는 것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자에게는 죽음이 그자의 의도를 교정해 준다네. 하지만 신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인간의 운명에 만족하는 것은 고통 없는 삶을 의미한다네. 나는 지혜로운 자의 지혜가 부럽지 않다네. 내 낙은 위대하고 명백한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밤낮없이 순결하고 경건하며, 정의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은 버리고 신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코로스(종가): 나타나소서, 황소로서. 또는 머리가 여럿인 뱀의 모습으로. 또는 불을 내뿜는 사자의 모습으로! 자, 박코스이시여, 마이나스 무리를 덮치는 박코스 여신도들의 사냥꾼에게 그대는 웃는 낯으로 죽음의 올가미를 씌우소서!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1000–1023행
그는 자신이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영의 상징이 무엇인가? 남자와 뱀, 사자, 늑대 등이다. 특히 뱀은 교만하게 된 영을 의미한다. 사자나 늑대는 권력에 집착하는 티탄적 진부화에 빠진 사람을 의미한다. 그가 뱀의 자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가 허영에 빠졌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고르고는 극단적인 허영의 상징이다. 고르고는 허영과 신경증적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고르고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모두 뱀으로 되어 있다. 메두사를 보면 돌로 굳어버린다. 그것은 허영으로 인해 자신이 고귀하게 된 것처럼 의식하는 것과 지나친 죄의식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의식이 마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신경증적 상태에 빠지는 것이 돌로 굳는 것처럼 표현되는 것이다. 아테네는 진실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아테네의 거울 방패로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허영과 신경증적 상태에 빠진다. 펜테우스가 고르고의 족속이라는 것은 이런 허영과, 허영으로 인한 신경증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욕망의 상징은 무엇인가? 여자, 땅, 뿔이 난 짐승—이를 테면, 염소와 황소 등이다.
욕망을 억압한 펜테우스에게, 디오뉘소스, 곧 욕망은 황소의 모습으로, 즉 분출되고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머리가 여럿인 뱀의 모습으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허영에 빠진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불을 뿜는 사자의 모습으로, 권력에 집착하는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마치 히브리 신화에서 사탄의 모습과도 같다. 뱀의 모습, 뿔 달린 염소의 모습, 사자의 모습 모두 사탄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다.
펜테우스: 저건 또 무슨 놀라운 일인가? 저기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내 외조부께서 얼룩덜룩한 새끼 사슴 가죽을 걸치고 정말 가소롭게도 황홀경에 빠져 지팡이를 흔들고 있다니! (카드모스에게) 외할아버지, 고령에 그렇게 제정신이 아니시니 보기 민망합니다. 담쟁이덩굴 관을 벗어 던지고 손에서 튀르소스를 놓으세요. (…) 여자들이 잔치에서 반짝이는 포도주를 마시면, 장담컨대, 그 축제에는 이미 건전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법이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248–262행
펜테우스는 카드모스와 테이레시아스와 대립한다. 그들은 서로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펜테우스는 체면을 지키지 못하고, 춤을 추며 인생을 즐기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꾸로 테이레시아스와 카드모스는 허영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펜테우스를 걱정한다. 그들은 펜테우스에게 신에 대항하지 말라고, 인간성에 대항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이지 않게 되려는 것은 곧 신에게 도전한다는 뜻이다.
테이레시아스: 슬기로운 사람처럼 혀는 잘 놀리지만, 그대 말에는 슬기가 들어 있지 않소. (…) 그분께서는 그와 균형을 맞추고자 포도 음료를 고안해 내어 인간에게 가져다주셨고, 그것은 가련한 인간들을 고통에서 풀어 주지요. 그들이 포도의 액즙을 실컷 마시고 나면 그것은 또 잠을 가져다주고 그날그날의 고생을 잊게 하니 어떤 다른 약도 그처럼 노고를 치료해 주지는 못하오. (278–283행)
테이레시아스: (…) 그러니 펜테우스여, 내 말을 따르시오. 그대는 권력이 인간 만사를 지배한다 과신하지 말고 그대의 생각이 병들었을 때 그대의 그런 생각을 지혜라고 생각지 마시오. 그대는 그 신을 이 나라에 받아들여 제주를 바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머리에 화관을 쓰시오! (…) 여인들이 언제 어디서 정절을 지키는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성격에 달려 있소이다. 박코스 축제에서도 정결한 여인은 결코 타락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309–318행)
테이레시아스: (…) 나는 그대가 조롱하는 카드모스와 함께 담쟁이덩굴 관을 쓰고 춤출 것이오. 우리는 한 쌍의 늙은이에 불과해도 역시 춤을 추어야 하오. 그리고 나는 그대의 말에 설득되어 신과 싸우지 않을 테요. (…) (322–325행)
카드모스: (…) 너도 보지 않았느냐, 악타이온의 비참한 운명을! 그 애는 제가 아르테미스보다 더 훌륭한 사냥꾼이라고 뽐내다가 제가 기른, 날고기를 먹는 개 떼에게 산골짜기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었지. 너는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 자, 이리 오너라! 내가 네 머리에 담쟁이덩굴 관을 씌워 줄 테니 우리와 함께 신을 공경하도록 해라! (336–342행)
코로스 (우1): (…) 지혜로워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꾀하는 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네. 인생은 짧은 것. 그래서 원대한 것을 추구하는 자는 눈앞에 있는 것을 놓치게 되리라. 내 말하노니, 그것은 미친 자와 나쁜 조언을 받은 자가 취하는 방법이라네. (394–401행)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중 발췌
펜테우스는 박코스 여신도들을 보이는대로 잡아서 감옥에 넣는다. 또한, 디오뉘소스를 잡아서 감옥에 넣는다. 그는 박코스 여신도들과 디오뉘소스를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향락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그가 바로, 자기 인식 조차 못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펜테우스: 또 교묘히 비켜 가는구나, 공허한 말로!
디오뉘소스: 무식한 사람에게는 지혜롭게 말하는 사람이 무식해 보이지요.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479–480행
그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계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자기 인식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디오뉘소스는 그에게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펜테우스는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디오뉘소스: 내 이르노니, 나를 묶지 마라. 나는 제정신이고 너희는 제정신이 아니다.
펜테우스: 명령이다. 그를 묶어라! 여기서는 그대가 아니라 내 권위가 통하니까.
디오뉘소스: 그대의 인생이, 그대의 행위가 무엇이며, 그대가 누군지 모르는구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504–506행
욕망을 억압하려는 교만한 그의 결말은 무엇일까? 펜테우스는 자신의 욕망과 분투했지만, 그런 싸움은 헛된 것이다. 결국 억압된 욕망은 제어할 수 없이 분출된다.
디오뉘소스: (…) 그대의 이런 교만을 그대가 부인하는 디오뉘소스가 벌주실 것이오. (516–517행)
디오뉘소스: (…) 그자는 나를 묶는 줄 알았으나 나를 건드리거나 잡기는커녕 헛된 희망에 매달렸다네. 그자는 나를 끌고 가 묶으려던 마구간 옆에서 황소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그 황소의 무릎과 발굽을 밧줄로 묶었지. 노여운 숨을 몰아쉬며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게다가 입술을 깨물며. (…) (616–621행)
시종: (…) 그들은 풀려나 자신들의 신인 브로미오스(디오뉘소스)를 부르며 들판 쪽으로 껑충껑충 뛰어가 버렸나이다. 그들 발에 채운 족쇄는 저절로 풀렸고, 문의 빗장들은 사람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활짝 열렸나이다. (445–449행)
사자: 광란하는 박코스 여신도들이 미쳐서 맨발로 이 나라에서 뛰어나가는 것을 저는 보았나이다. (…) (664–665행)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중 발췌
무절제하게 분출되는 욕망과 갈등 상태에 있는 것이 신경증적 상태이다. 그래서 신경증적 상태는 대부분 신화에서 반인반수의 괴물이나, 갈라짐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박코스 여신도들이 산으로 뛰쳐나가 암송아지를 찢는 것은 펜테우스의 욕망이 제어할 수 없이 분출되고, 신경증적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뱀이 그녀들의 볼을 핥고, 피를 핥아먹는 것은 허영이 펜테우스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욕망의 분출 상황에서도 펜테우스는 교만하여 자신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진부화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향락적인 삶을 즐기는 것은 저급한 것으로 여기며 멸시하지만, 자신이 욕망을 즐기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펜테우스는 결국 그릇된 욕망이 분출된다. 박코스 여신도들의 비의를 훔쳐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혹여나 그런 비의에 음란한 행동이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말이다.
펜테우스: 이봐, 그들은 아마도 짝짓기하는 새들처럼 덤불 속에서 서로 껴안고 사랑을 즐기고 있겠지.
디오뉘소스: 그래요. 그대는 그것을 지켜보러 갑니다. 그대는 그들을 잡게 되겠죠. 그대가 먼저 잡히지만 않는다면.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957–960행
펜테우스: 그들의 술 취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괴로운 일이겠지.
디오뉘소스: 그런데도 그대는 그대에게 쓰라린 것이 보고 싶은가요?
펜테우스: 그렇다니까. 하지만 전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몰래 보겠다.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814–816행
펜테우스는 전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박코스 여신도들을 훔쳐보겠다고 한다. 디오뉘소스는 전나무를 휘어 그를 매달고, 그가 박코스 여신도들을 훔쳐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도망갈 수 없게 만든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테세우스가 죽였던 소나무를 굽히는 자 ‘시니스’이다.
둘째, 그는 폴뤼페몬과 코린토스의 딸 쉴레아의 아들인 시니스를 죽였다. 그 자는 ‘소나무 굽히는 자’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에 살면서 행인들한테 자기가 굽힌 소나무들을 잡고 있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힘이 딸려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나무들에 의해 허공으로 퉁겨져 비참하게 죽었다(일설에 따르면 그는 행인들의 사지를 두 그루의 나무에 묶었다가 나무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찢어져 죽게 만들었다고 한다). 테세우스는 시니스를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천병희 옮김), 3.16.2와 그에 대한 주석
소나무에 의해 찢겨지는 것은 갈라지는 것은 신경증적 상태를 의미한다. 억압된 욕망이 제어할 수 없이 분출될 때에는 다양한 욕망에 의해 그의 영은 산만하게 된다. 이것이 갈라져 찢겨짐을 의미한다.
디오뉘소스의 비의는 오르페우스가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아내 에우뤼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식음을 전폐한다. 그는 저승에 내려가 에우뤼디케를 데려오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죽은 아내 때문에 향락을 완전히 끊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을 뜻한다.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에게 내건 조건은 에우뤼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즉,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오르페우스가 구원 받는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죽은 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향락을 다시 끊은 것이다. 에우뤼디케는 뱀에 물려 죽었다. 에우뤼디케가 오르페우스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에우뤼디케가 뱀에 물려 죽는 것은 오르페우스가 향락적인 것을 완전히 억압하고 허영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그가 결국 박코스 신도들에게 찢겨 죽는 것도 펜테우스 비극과 같은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징에 대한 이해 없이 보면 오르페우스 이야기도 그냥 기이한 신화처럼 여겨질 뿐이다(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1.3.2 참고).
펜테우스: 내게는 저기 하늘의 해도, 여기 일곱 성문의 테바이 시도 둘로 보이는 것 같구려, 그리고 자네도 내 앞에서 황소로서 걸어가는 것 같고 자네의 머리에는 이제 뿔이 난 것 같구려. 그렇다면 자네는 전부터 늘 짐승이었나? 지금 자네는 분명 황소로 변했으니까.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918–922행
디오뉘소스: (…) 나를 따르시오. 그대를 안전하게 그리로 호송하겠소. 집으로는 다른 사람이 데려다줄 겁니다.
펜테우스: 내 어머니겠지.
디오뉘소스: 만인이 보는 앞에서.
펜테우스: 그렇게 나는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디오뉘소스: 그대는 들려서 집에 가게 될 것이오.
펜테우스: 자네는 나를 유약하게 만들 셈이로군.
디오뉘소스: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펜테우스: 자네는 정말로 나로 하여금 호사하게 할 셈이로군.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965–968행
제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완전한 신경증적 상태에 이른 펜테우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디오뉘소스에게 뿔이 나고, 그가 황소로 보인다는 것은 펜테우스의 욕망이 폭발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찢겨져 죽는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디오뉘소스가 그가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것은 참으로 참담하다. 얼마나 비극적인 장면인가! 펜테우스는 자신이 어머니의 손에 들려올 것을 듣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머리가 뽑힌 상태로 올 것이라는 것은 모른다. 어머니와 자신에게 모두 엄청난 고통이 될 결말인데도 말이다.
아가우에: 내 어리석음 때문에 왜 펜테우스가 당해야 하나요?
카드모스: 그 애는 너희를 닮아 신을 존중하지 않았다. (…)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1301–1302행
디오뉘소스: (…) 내 말의 유희가 이자를 그물 안으로 유인했지만 이자는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의 손에 죽었노라. 이자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은 당연지사이니라.
—에우리피데스, 『박코스 여신도들』, 1325행 이후 재구성된 부분
마지막에는 역시 에우리피데스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기계 장치를 타고 하늘에서 디오뉘소스 신이 나타나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에 등장하는 디오뉘소스는 상황의 해결자가 아니다. 이미 끝난 상황과 남은 자들이 맞이하게 될 운명을 설명할 뿐이다. 테바이 왕가의 비극은 계속된다.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인간성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다. 이 작품이 경고하는 것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 다운 모습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인 인간이 아니게 되려는 자들, 인간성을 무시하려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인간의 향락적인 면모를 비웃고, 고고한 척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간다움을 멸시하는 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자신도 인간임을, 또한 자기 인식이 부족하여 다른 인간을 보고 비웃는 자신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도 권위에 취해 지극히 인간적인 향락적인 인간의 면모를 멸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것보다는 그런 순간을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