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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숲, 2009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일과 날』은 헤시오도스가 형 페르세스의 부당한 소송에 맞서 쓴 시이다. 그는 형 페르세스와 이미 아버지의 유산을 공정한 절차에 따라 나눴지만, 헤시오도스의 재산이 탐났던 형은 당시 재판관들이었던 왕들, 귀족들에게 뇌물을 주고 헤시오도스를 고소한다. 소송을 당한 헤시오도스는 형과 형에게 뇌물을 받은 왕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른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헤시오도스가 형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알려준다는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되려면, 남의 것을 계속 빼앗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화를 불러온다. 헤시오도스 입장에서는 형이 신들의 분노를 사거나, 혹은 다른 재판에서 패하여 신분이 낮아질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히 일해서 부자가 된다면 그런 화를 당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복이 함께한다. 헤시오도스는 형에게 물고기를 부당하게 잡으려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준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형의 소송에 대항한 자신의 의견이지만, 왠지 형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선의의 경쟁과 불의의 경쟁
헤시오도스는 불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경쟁이라는 용어가 없었으므로 이 부분은 불화를 경쟁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나는 남을 끌어내리려 하고, 남의 손해를 기뻐하는 악의의 경쟁이다. 다른 하나는 둘 다 함께 좋은 위치로 올라가려는 선의의 경쟁이다.
불화는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는
두 종류가 있소. 그중 하나는 알고 보면 칭찬받겠지만
다른 하나는 비난받아 마땅하니, 둘은 서로 기질이 다르오.
(…)
다른 사람이 서둘러 (…)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
저도 부자가 되려고 이웃끼리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이런 불화는 인간들에게 유익하다오.
그래서 도공은 도공에게, 목수는 목수에게 화내고,
거지는 거지를, 가인은 가인을 시샘하는 것이라오.
(…)
남의 손해를 기뻐하는 불화가 그대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시라!
—헤시오도스, 『일과 날』 11–29행
헤시오도스는 페르세스에게 자신을 시기하지 말고 정직하게 벌어서 스스로를 먹이라고 주장한다. 악의의 경쟁은 증오와 질투를 낳는다. 헤시오도스와 페르세스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페르세스는 현재 낮은 지위에 있다. 그래서 헤시오도스는 정당하지 못한 소송으로 재산을 탕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거짓 맹세를 하며 (…) 정의를 해코지하면
(…)
그의 집안은 앞으로 더욱더 한미해질 것이고,
반면에 정직하게 맹세한 자의 집안은 장차 더 번성할 것이오.
⠀
어리석은 페르세스여, 그대에게 좋은 뜻에서 말하고자 하오.
열등한 것은 힘들이지 않고도 무더기로 얻을 수 있소.
길은 평탄하고, 그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이오.
하지만 뛰어난 것 앞에는 불사신들께서 땀을 갖다 놓으셨소.
그리고 가는 길은 멀고 가파르며 처음에는 울퉁불퉁하기까지
하다오. 그러나 일단 정상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비록 힘들었지만 나아가기가 수월하지요.
—헤시오도스, 『일과 날』, 282–292행
헤시오도스는 정의를 지키지 않으며 남의 재물을 탐하는 자는 점차 어려워질 것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 돈을 버는 사람은 점점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제우스의 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재앙을 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남에게 재앙을 꾀하는 자는 자신에게 재앙을 꾀하는 것이고,
해로운 조언은 그런 조언을 하는 자에게 가장 해로운 법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265–266행
땀 흘려 일해야 하는 이유
헤시오도스는 인간이 땀 흘려 일해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신을 속여 뼈와 기름뿐인 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살코기는 인간이 먹게 했다. 그래서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피조물들인 인간의 양식과 불을 감추어버렸다. 그래서 인간들은 열심히 일해서 양식을 찾아먹어야 한다. 또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간들에게 불을 갖다주었다. 그래서 신들은 판도라를 만들어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헤르메스는 판도라에게 교활한 마음을 주었다. 판도라가 판도라의 항아리를 열었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늙음이나 죽음, 병, 근심 같은 재앙이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은 제우스의 뜻으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은 그러므로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재앙이 함께할 것이라는 헤시오도스의 기본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
그게 다 신들께서 인간들의 양식을 감춰두시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일하지 않고도 단 하루 동안에
일 년 이상 먹을 것을 쉬이 벌게 될 테니까요.
—헤시오도스, 『일과 날』, 42-44행
다른 신화는 다섯 시대에 관한 것이다. 크로노스의 시대였던 첫 번째 황금 시대에는 사람들은 풍족하게 살았다. 땅은 항상 황금 시대의 인간들에게 열매를 갖다주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은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어리석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어린 아이들처럼 항상 어리숙했으며, 범죄 행위를 일삼고 신들을 섬기지 않았다. 세 번째 청동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에만 열중했다. 네 번째 영웅들의 시대에는 의롭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전쟁으로 멸망했다. 바로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반신인 영웅들은 엘리시움 들판에서 살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들과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원시 시대의 인간들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원시공산 사회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넘쳤다. 따듯한 날씨가 찾아오고 나서 나무들은 풍족한 열매를 맺었다. 너와 나의 땅의 구분이 없었다. 누가 열매를 독차지하려 하면 그냥 다른 나무로 가서 열매를 먹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농경 생활 이후 서로 땅 영역을 정하기 시작했고,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로 싸우기 시작했으며, 싸움을 잘하는 영웅들이 탄생했다.
현재 시대인 철의 시대에는 밤낮으로 노고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곤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만약 현재 시대인 이 철의 시대가 약육강식이 당연하게 되는 시대가 되면 제우스는 이전에 그랬듯이 사람들을 멸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의나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곤궁을 벗어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곤궁의 시대를 맞이했다. 어쩌면 다섯 시대의 흐름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이 서로 싸우고 궁핍하게 만들었다. 대지는 이미 모든 인간이 풍족하게 먹을 양식을 내주고 있지만, 인간의 욕심이 다수가 궁핍하고 소수가 잘 사는 시대를 만든 것이다.
이번에는 철의 종족이기 때문이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노고와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을 것인즉 신들께서 그들에게 괴로운 근심거리를 주실 것이오.
(…)
그러나 제우스께서는 필멸의 인간의 이 종족도 멸하실 것이오,
(…)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낯설 것이고,
손님은 주인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반갑지 않을 것이며,
형제도 더 이상 이전처럼 반갑지 않을 것이오.
머지않아 그들은 늙어가는 부모를 공경하기를
그만두고 심한 말로 꾸짖고 나무랄 것이오,
인정머리 없이, 신들의 벌도 무시하고. 그들은 또
늙어가는 부모에게 길러준 은공도 갚지 않을 것이오.
주먹이 곧 정의고, 서로가 서로의 도시를 약탈할 것이오.
맹세를 지키는 사람이나 의롭고 선량한 사람에게는 아무도
감사하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오히려 악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자를 존경하게 될 것이오. 정의는 주먹 안에 있고
염치는 사라질 것이오. 악한 자가 더 나은 사람을
굽은 말로 모함하고 거짓 맹세로 이를 뒷받침할 것이오.
증오에 찬 얼굴로 남의 피해를 기뻐하는 시기는
험담을 하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어디든 따라다닐 것이오.
(…)
그러면 필멸의 인간들에게
쓰라린 고통만 남게 될 것인즉 재앙을 물리칠 방도가 없을 것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176–201행
부모와 자식의 관계, 손님과 주인의 관계, 친구 사이의 관계가 파괴되고, 선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시대. 지금 같지 않은가? 제우스가 철의 시대의 인간을 멸한다는 것은 다 죽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재앙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말이다. 여기에 더해 약육강식이 당연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매와 밤꾀고리의 비유로 설명한다. 이런 시대적 경향은 경제가 궁핍해질 때 더욱 심화된다. 헤시오도스는 어떻게 곤궁으로부터 이런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예언한 것일까? 그의 혜안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래서 헤시오도스는 일하지 않는 것이 왜 나쁜지도 설명한다.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왜 좋은지도 설명한다.
기아는 게으름뱅이의 충실한 동반자이니 말이오.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는 신들도 인간들도 싫어하는 법이오.
그런 자는 빈둥빈둥 놀며 꿀벌들의 노고를
먹어 치우는 침 없는 수벌들과 기질이 같소.
(…)
사람들이 양 떼를 많이 갖게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은 일 덕분이오.
(…)
일은 수치가 아니오, 일하지 않는 것이 수치요.
그대가 일하면 게으름뱅이는 곧 그대가 부자가 되는 것을
시기할 것이오. 하지만 부에는 위엄과 명망이 따르는 법이오.
(…)
염치는 궁핍한 사람에게는 좋은 동반자가 아니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302-317행
집 안에 쌓여 있는 것은 걱정거리가 아니오. 재물은 집 안에
있는 것이 더 낫소. 집 밖에 있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오.
이미 가진 것에서 고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없는 것이 필요하면
마음이 괴로운 법이오. 내 이르노니, 그대는 이 점을 유념하시라.
—헤시오도스, 『일과 날』, 364-367행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나중에 궁핍해져서 남의 집을 돌며
구걸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오—일전에 그대가 나를
찾아왔듯이 말이오.
(…)
일하시라, 어리석은 페르세스여,
신들께서 인간들에게 정해주신 대로 일하시라.
어느 날 그대가 괴로운 마음으로 처자를 데리고 이웃을 돌며
양식을 구하다가 이웃에게 외면당하는 일이 없도록!
(…)
그대는 빚을 갖고 굶주림을 피할 생각을 하시라.
(…)
근면만이 일을 진척시키지요.
반면에 일을 뒤로 미루는 자는 끊임없이 미망과 씨름하게 되지요.
—헤시오도스, 『일과 날』, 394–404행
(…) “빌려주게나"라고 말하기는 쉬우나
(…) 거절하기도 쉽기 때문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453–454행
그대는 부자로서 화창한 봄을 맞을 것이고,
그대가 남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그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477–478행
땀 흘려 돈 버는 방법
만약 헤시오도스가 땀 흘려 일하라고 타이르는 것에서 끝났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선처럼 보였을 수 있다. 방법을 모른다면 땀 흘려 일하는 것이 헤시오도스가 말했던 만큼이나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시오도스는 잘 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것 덕분에 그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먼저 농사 짓는 방법 상세히 서술한다. 밭을 갈아야 하는 때, 어떤 하인과 노예를 들여야 하는지, 어떤 일에 어떤 하인이 적합한지, 씨를 뿌려야 하는 때, 추수해야 할 때 등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또한, 자기 아버지에게 배웠던 항해를 해야 할 때 등도 서술한다.
계절에 대한 영향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까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헤시오도스는 여름에 보양식을 먹으라고 한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화는 계속된다.
엉겅퀴가 만발하고 시끄러운 매미가
나무에 앉아 지치게 하는 여름철에 날개 밑에서
요란한 노래를 마구 쏟아낼 때는,
(…)
그때는 바위 그늘과 비블리노스 포도주와
유지 죽과 맨 나중에 짠 염소젖과
아직 새끼를 낳지 않은, 숲 속에서 풀을 뜯는 암소와
염소의 맏배 새끼들의 고기를 마련하시라.
그리고 실컷 먹고 나서는 시원한 서풍을 마주하고
그늘에 앉아 반짝이는 포도주를 곁들여 마시도록 하시라.
—헤시오도스, 『일과 날』, 582–894행
그믐날은 30일 같은 월말을 의미한다. 헤시오도스는 이런 월말에 하인들의 월급을 정산하라고 한다. 지금도 월급은 월말에 정산한다. 정산 때문에 10일이나 20일에 받는 근로자들도 있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 달 동안 일한 대가가 바로 월이 끝나는 30일에 들어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믐날은 일을 감독하고 식량을 나누어주기에 가장 좋은 날이오.
사람들이 이를 지킬 때 바르게만 계산한다면 말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767–768행
이외의 처신
그러나 헤시오도스는 돈을 버는 방법만 알려준 것은 아니다. 결혼, 우정, 사교법 등 사는 데 필요한 중요한 것들도 전부 설명해놨다. 형이나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자신의 실천적 지혜를 다 쓰려고 한 것 같다. 어쩌면 실천적 지혜가 담긴 최초의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먼저 오해를 하면 안 될 것이 헤시오도스는 돈을 최고로 한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보다 생존이나 건강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재물을 좇거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중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련한 인간들에게는 재물이 목숨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파도 속에서 죽는다는 것은 끔찍한 알이오.
내 이르노니, 그대는 내가 일러준 이 모두를 명심하시라.
속이 빈 배에 그대의 재산을 다 싣지 말고,
큰 부분은 남겨두고 작은 부분만 싣도록 하시라.
바다의 파도 사이에서 재앙을 만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니까요.
그리고 짐수레에 짐을 너무 많이 실어 굴대가 부러지고
화물이 망가진다면 그 역시 무서운 일이지요.
그대는 중용을 지키시라. 매사에 적정이 최선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685–694행
결혼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충고는 무엇일까?
그대는 적당한 나이에 아내를 집 안에 들이시라.
서른 살에서 많이 모자라지도 많이 넘지도 않을 때 말이오.
이때가 결혼 적령기라오.
여자는 4년 동안 꽃이 피다가 5년째에는 결혼해야 하오.
그대는 처녀와 결혼하시라. 그대가 바른 행실을 가르칠 수 있도록.
(…)
한 남자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양처보다
나은 것이 없고, 악처보다 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695–704행
이는 남자에게 하는 충고이기 때문에 헤시오도스는 아내를 잘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30살 쯤에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여자는 꽃이 핀 지 5년째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꽃이 피는 것은 월경을 의미한다. 초경은 보통 10세에서 16세 사이에 한다. 식습관이 서구화되기 이전의 평균 초경 나이는 13세였으므로 헤시오도스는 15세–21세 사이에 결혼을 해야 하며, 평균적으로는 18세에는 여자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의 가임 능력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최고를 찍으며 그 이후에는 감소한다. 나이가 듦에따라 계속해서 감소하며, 35세 이상이 되면 노산으로 분류되고 태아와 산모에게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해 노산 인구가 많아지면서 기형아나 자폐아 출산 확률도 커지고 있다. 사회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데 인간의 몸은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 기조로 인해 출산이 없어지던가, 정자/난자 동결이나 유전자 편집 등의 기술이 더 발전하면 해결될 일이긴 하다.
어쨌든 헤시오도스는 출산에 적합한 나이에 대해서는 잘 맞혔다. 또한, 남자에게 양처보다 좋은 것은 없고 악처보다 나쁜 것도 없다고 한다.
사교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충고에서도 놀라운 혜안이 보인다. 먼저 상호호혜성에 대한 놀라운 말이다.
그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식사에 초대하되, 미워하는 사람은
초대하지 마시라. 누구보다도 그대의 이웃을 부르시라.
그대의 집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이웃들은 허리띠도
매지 않고 달려오지만 친척들은 허리띠를 매기 때문이오.
좋은 이웃이 축복인 만큼 나쁜 이웃은 골칫거리요.
(…)
이웃에게 꿀 때에는 고봉으로 받고 갚을 때에도 고봉으로,
꾼 만큼만 아니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돌려주시라.
훗날 그대가 어려울 때 의지할 데를 구할 수 있도록.
—헤시오도스, 『일과 날』, 342–351행
상호호혜성은 혈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관계의 기본 원리이다. 내가 해준 만큼 받길 원하는 것이 상호호혜성이다. 여기서 “꾼 만큼만 아니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돌려주시라"라는 말은 상호호혜성을 뛰어넘어 관계를 강화하고 지위를 높이는 사회적인 기술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떡을 1개 줬다고 해보자. 만약 그랬을 때 그 사람이 나중에 떡을 1개 준다면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악한 사람이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명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떡을 1개 줬는데, 상대방이 떡을 2개를 돌려준다면 이는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주고 받는 떡이 4개, 6개 등으로 늘어나면서 돈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심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다른 사교술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번엔 말에 관한 사교술이다.
그리고 마음을 좀먹는 저주스런 가난 때문에 누군가를 모욕할
생각일랑 마시라.
(…)
인색한 혀가 인간들 사이에서는 최선의 보배고,
혀는 절제할 때 가장 매력 있다오.
나쁜 말을 많이 하면 그대 자신도 곧 더 나쁜 말을 듣게 될 것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717–721행
그대는 사람들의 구설을 피하시라.
구설은 나쁜 것이라오. 구설이란 듣기는 매우 쉬워도
견디기는 힘들고 벗어나기도 어려운 법이오.
그리고 구설은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게 되면 결코 전히
소멸되지 않는다오. 그래서 구설도 일종의 신인 것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760–764행
말은 절제하는 것이 제일 좋다. 헤시오도스는 이를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혀는 절제할 때 가장 매력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교를 위해서는 말을 하는 것보단 듣는 것이 좋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딱 두 가지이다.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상대방의 관심사에 진심으로 관심을 표하고. 그러면 상대방은 자신의 편이 되게 되어있다.
구설을 피하라는 말도 참 인상 깊다. 현대 자기계발서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 아닌가? 뒷담화를 하지도 말고, 뒷담화에 참여하지도 말라. 누군가가 뒷담화를 하려고 한다면, 자신은 자리를 피하겠다고 하라. 구설을 피하라는 것은 자신이 구설에 오를 만한 행동을 삼가라는 것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구설도 피하라는 것이다.
사교술에 대한 조언에는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조언도 있다.
손님들이 많이 모인 잔치 자리에서는 무뚝뚝하게 굴지 마시라.
모두가 참석하는 곳에서는 기쁨은 가장 크고 비용은 가장 적은 법이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722–723행
그리고 사람들이 마실 때는 포도주 희석용 동이 위에
주전자를 얹지 마시라. 그렇게 하면 액운이 따르는 법이라오.
—헤시오도스, 『일과 날』, 744–745행
잔치에서는 기쁘게 굴 필요가 있다. 장례식에서는 슬프게 굴 필요가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포도주 희석용 동이 위에 주전자를 얹는 것은 포도주를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파티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들이 잔치를 즐기고 있을 때, 눈치 없이 찬물을 붓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정에 대한 충고도 보자.
친구를 형제와 동등하게 여기지 마시라.
하지만 그대가 그렇게 한다면 친구를 먼저 해코지하거나
듣기 좋은 거짓말일랑 하지 마시라.
그러나 친구가 먼저 말이나 행동으로 그대를 모욕한다면
명심하고 그것을 두 배로 되갚아주도록 하시라.
그러나 그 뒤 친구가 다시 그대와 화해하고 보상하기를 원한다면
받아들이시라. 때에 따라 친구를 바꾸는 것은 비열한 자가
하는 짓이오. 그대의 마음과 그대의 외모가 일치하게 하시라.
그대는 지나치게 친구가 많은 자라고도, 친구가 없는 자라고도,
악당들의 전우라고도, 착한 사람들의 비방자라고도 불리지 않도록 하시라.
—헤시오도스, 『일과 날』, 707–716행
이것도 가치 있는 충고다. 우정은 일반적인 타인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상호호혜성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것을 초월한다. 헤시오도스는 친구에게 먼저 불의를 행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상호호혜성 관계를 공략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먼저 호의를 베풀 것. 둘째, 다음 턴부터는 상대가 행하는 대로 행할 것. 헤시오도스는 상대가 행하는 것의 두 배씩 행할 것을 요구한다. 빚이 있다면 더 얹어서 갚고, 불의를 당해도 두 배로 갚으라고 한다. 선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어주는 것이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에서 착한 사람은 불의한 사람에게 다 당하고 어렵게 살게 된다. 불의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착하게 살더라도 불의한 사람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불의한 사람에게 때로는 불의하게 굴 필요가 있다. 헤시오도스는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친구를 너무 많이 사귀지도, 없이 지내지도 말라고 한다. 실제로 친구의 유무는 행복과 큰 관계가 있는데 오히려 친구의 수는 행복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 행복도와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의 유무이다. 그러므로 친구 관계의 양적 향상이 아니라, 질적 향상을 추구하라는 헤시오도스의 조언은 완벽하다.
이런 충고들 외에 종교적 처신에 대한 충고도 있다. 또한, 한 달 중 무엇을 하기에 좋은 날과 나쁜 날에 대한 충고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의 미신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우리가 보기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신을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었던 과거에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충고를 한 것은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 틀림 없다.
정리
물질적 세계에 집착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대부분 신화에서 관통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그것을 등한시하는 것은 현실을 등한시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결국 물질 세계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의를 통해 자신이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그의 욕망은 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잘 살기 위한 욕망은 인간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다. 그런데 물질 세계에 대해 논하는 것이 혼자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살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악이 아니라 선이다. 헤시오도스는 그런 현실적인 선을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과 날은 자신을 소송한 형에게, 그리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정당히 일해서 부자가 되라는 교훈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해준 것이다. 이것은 헤시오도스의 사랑이 담긴 현실적인 조언이다. 자신의 형이, 사람들이 잘 살길 바라는 실천적 지혜가 담긴 책이자,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고전 실용 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