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숲, 2009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숲, 2009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우라노스 신화→크로노스 신화→제우스 신화에 이르는 신들의 계보

『신들의 계보』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계보를 알려주는 책이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이 무사 여신들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 시를 노래함을 알리고, 최초의 세 가지 힘들인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운을 띄운다. 이야기는 가이아로부터 나온 우라노스와 폰토스, 또 가이아가 그들과 낳은 자녀들, 그 자녀들이 낳은 자녀들로 내려가 마지막은 여신들과 인간 남자들의 교합에 대해 노래하고 자연스럽게 『여인들 목록』의 서두로 넘어가며 끝난다.

이 계보는 단순히 누구의 아들 누구, 누구의 아들 누구, 이렇게 출생에 대해서만 밝히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의 탄생 기원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우라노스 신화→크로노스 신화→제우스 신화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중심 이야기들의 변방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부터 읽은 건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흥미롭게 읽었다. 농경사회적 알레고리는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 현시대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의 유사성, 차이점을 헤아려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더 풍부하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먼저 읽기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다음은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과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무사 여신들에 대한 노래

누군가가 최근에 불상사를 당하여 그 슬픔으로 마음이 시들어간다 하더라도, 무사 여신들의 시종인 가인이 옛사람들의 영광스런 행적과 올륌포스에 사시는 축복받은 신들을 찬양하게 되면 그는 금세 슬픔을 잊고 더 이상 자신의 불상사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신들의 선물이 금세 그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를 믿는 인간은 그 존재에 의존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난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이들을 보면 확실히 그래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것보다 더 쉬운 길처럼 보인다.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고통을 이겨낸 사람은 그 자신이 초월적 존재처럼 보인다.

폰토스

가이아는 또 거칠게 파도치는 추수할 수 없는 폰토스를 낳았다,

폰토스는 바다의 신이다. ‘바다를 주관하는 폰토스’와 같이 말하지 않고 ‘추수할 수 없는 폰토스’라고 했다. 땅이 아닌 곳에서는 추수할 수 없다. 이처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유려하고 간결한 문학적인 표현을 쓴 것이 인상깊다.

우라노스의 거세

지체 없이 잿빛 아다마스의 종족을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큰 낫을 하나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역주에 의하면 아다마스는 전설적인 금속으로, 헤라클레스의 투구와 방패의 일부도 이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는 강철이 소문으로만 알려져 있던 시기에 사람들이 이것을 신들의 금속으로 여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접근하기 어려운, 혹은 미지의 것을 신들의 영역으로 귀속시키는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지식이 두려움을 이길 때 소멸된다.

거대한 우라노스가 밤을 끌어올리며 다가와 사랑을 바라고 사방으로 뻗으며 가이아 위에 자신을 펼치자, 그의 아들이 매복처에서 왼손을 내밀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길고 이빨이 날카로운 거대한 낫으로 친아버지의 남근을 재빨리 자르더니 아무 데나 날아가라고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무익하게 그의 손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기서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가이아가 모두 받아 해가 다 차자 강력한 복수의 여신들과, 무구들을 번쩍이며 손에 긴 창을 든 거대한 기가스들과, 끝없이 대지 위에서 멜리아들이라고 불리는 요정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 우라노스가 가이아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화려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깊다.
  • 낫으로 남근을 잘라 아무 데나 날아가라고 등 뒤로 던져버리다니.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악을 처단하는 방식이 아주 원시적이고 적나라하다.
  • 우라노스의 남근의 핏방울로부터 복수의 여신들이 탄생했다. 역주에 의하면 이들은 가족 내에서의 범죄 행위를 응징하는 여신들로, 올륌포스의 신들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제우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복수의 여신들이 제우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가족 내에서의 범죄가 가장 큰 죄악이며 이 범죄에는 어떠한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다른 신들은 제우스의 지배를 받는다.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지금도 가족 내 범죄는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겨진다.

밤과 불화의 자녀들

밤은 가증스런 운명, 죽음의 여신, 죽음, 잠, 꿈의 부족, 비난, 고초, 헤스페리데스, 응보, 기만, 정, 저주스런 노년, 불화를 낳았다. 그리고 불화는 또 노고, 망각, 기아, 눈물을 자아내는 고통, 전투, 전쟁, 살인, 남자들의 도륙, 언쟁, 거짓말, 핑계, 반론, 무질서, 미망, 맹세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어둠과 어둠이 찾아오게 만드는 서쪽 세계를 무섭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모든 불행스러운 것들의 모태가 되는 것은 밤인가보다. 도시에는 빛이 많다. 깜깜한 밤에도 광해가 심하다. 그런데 밤이 되면 모든 빛이 사라지는 시골에 가보면 밤이 정말 무섭다. 모든 불행의 모태를 밤으로 설정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불화가 낳은 자녀 중에 맹세가 있는데, 헤시오도스는 ‘누군가 알고도 거짓 맹세를 한다면 이는 지상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다’고 말한다. 그리스 신화 전반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맹세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정의관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폰토스의 자녀들과 튀폰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녀들, 그 자녀들이 낳은 자녀들은 외양이 보편적인 모양을 하고 있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가이아와 폰토스의 자녀들, 그 자녀들이 낳은 자녀들 중에는 괴물이 많다. 우라노스, 폰토스의 상징은 제우스, 포세이돈의 상징과 평행을 이룬다. 우라노스는 1세대 하늘의 신이고 폰토스는 1세대 바다의 신이며, 제우스는 하늘을 다스리고 포세이돈은 바다를 다스린다. 제우스는 영의 상징, 포세이돈은 잠재의식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은 포세이돈이 보낸 괴물과 맞서 싸우는데, 폰토스의 가계에서 나온 괴물들도 마찬가지로 영웅들과 인간들을 괴롭힌다(폰토스 가계의 괴물들에는 고르고 자매, 케르베로스, 에키드나, 스핑크스 등이 있다). 영웅들은 괴물로 상징되는 자신 내부의 허영, 욕망과 투쟁한다.

폰토스 가계의 괴물 중 하나인 에키드나와 교합하여 수많은 괴물을 낳는 튀폰은 타르타로스와 가이아의 아들이다. 튀폰은 신들이 동물로 둔갑해 도망칠 정도로 무서운 괴물이다. 알레고리적 측면으로 보자면, 고대인들은 화산 정도의 무시무시한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 속 튀폰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심리학적 측면으로 보자면 가이아는 어머니, 대지, 물질을 뜻하고 타르타로스는 잠재의식을 뜻하며 괴물 중의 괴물, 뱀 중의 뱀인 튀폰은 허영을 뜻한다. 튀폰이 가이아와 타르타로스의 아들이라는 것은 잠재의식이 물질과 만나 허영을 낳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최초의 여인 판도라

제우스는 불을 훔치고 신들을 속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주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들에게 판도라라는 재앙을 주는 것이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를 빚게 했다. 헤시오도스는 필멸의 인간들이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가파른 함정’인 판도라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판도라로 대표되는 여자가 가파른 함정인 이유는 여자가 ‘남의 노고를 제 뱃속에 쌓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살 때는 인간에게 큰 고통이요, 저주스런 가난에는 적합한 동반자가 아니지만 부에는 그렇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살면 ‘수고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여자 때문에 더 화를 입고, 부유하게 살면 좀 낫다는 것 같다.

제우스가 인간들에게 판도라를 보낼 때 또 다른 재앙이 있었다.

결혼과 여자들의 수고를 끼치는 행동을 피하여 결혼하기를 원치 않는 남자는 노후에 돌봐주는 이도 없이 무정한 노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는 비참한 노년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편 결혼하게 되어 알뜰하고 곰살가운 아내를 맞는 남자는 평생 동안 늘 화복을 번갈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악처를 만나는 남자는 가슴속에 마음속에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되며, 그것은 치유할 길 없는 재앙이다.

여자를 ‘남의 노고를 제 뱃속에 쌓는’ 종족이라고 하거나, ‘여자들의 수고를 끼치는 행동’과 같은 말은 현대 문학 작품에 나오기는 힘든 말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는 남자(여자도 마찬가지다)가 노년에는 외롭다는 것과, 배우자 선택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에도 분명 교훈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의 문제는 늘 올바른 배우자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 올바른 배우자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제우스 남매들과 티탄 신족의 싸움

제우스 남매들은 티탄 신족과 오랫동안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제우스는 브리아레오스, 콧토스, 귀게스에게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이며 도움을 청했다. 최고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적합한 인물을 찾아 도움을 받는 것도 권력자의 자질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