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숲, 2009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숲, 2009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정의, 노동, 생활 태도에 관한 교훈시

『일과 날』은 정의와 불의, 노동, 그리고 농부가 지녀야 할 태도에 관한 노래로, 헤시오도스가 그의 형 페르세스에게 하는 말을 통해 전개된다. 『신들의 계보』보다 작가의 색채가 짙다고 느껴진 작품이다. 교훈시라고 불리는 만큼 생각할 점이 많고, 지금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훈이 많다.

초반부에는 헤시오도스의 작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 이야기가 나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고 신들을 속였기 때문에 제우스는 벌로서 프로메테우스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판도라라는 재앙을 주었다. 남자들이 ‘자신의 재앙을 껴안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게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가 판도라를 빚고 아테네 여신과 카리스 여신들, 페이토 여신이 그녀를 치장해주었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그녀에게 거짓말, 아첨, 교활한 기질을 불어넣었다. 사후에 생각하는 자인 에피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충고를 잊고 판도라를 받았고,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어 모든 고통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항아리 안에는 단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오직 희망만이 거기 부술 수 없는 집 안에’ 남아 있었다. 항아리 안에 희망만 남아 있었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모든 걸 다 잃어도 인간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희망이 있기에 그 모든 고통들을 다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헤시오도스는 다섯 인간 종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들이 만든 첫 번째 인간 종족은 황금으로 만든 종족이고 두 번째는 은으로, 세 번째는 청동으로 만든 종족이다. 네 번째가 반신이라고 불리는 영웅들, 다섯 번째가 철로 만든 철의 종족이다. 이 다섯 번째 종족에 대해 말할 때 헤시오도스의 정의관, 도덕관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 다섯 번째 인간 종족과는 결코 함께하지 않고 먼저 죽거나 나중에 태어났으면 한다고 말할 정도로 철의 종족을 싫어한다. 그에게 이 종족은 정의롭지 못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철의 종족은 이런 사람들이다.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를 멀리하고, 주인은 손님을 반기지 않고, 친구가 친구를 반기지 않으며, 형제가 형제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부모를 공경하기는 커녕 부모를 꾸짖고 부모에게 은혜를 갚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먹이 정의가 되고 도시를 약탈하는 사람들이다. 의인이 아닌 악인을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약한 자가 더 나은 사람을 모함하면 거짓 맹세로 이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이다. 시기에 차 남의 피해를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염치와 응보마저 사라져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헤시오도스가 말한 철의 종족은 지금 봐도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사회는 지금 봐도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다. 인간이, 사회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부분이다.

다음은 노동, 농부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 태도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으로 치면 일과 돈에 대한 마음가짐과 일상생활에서 지녀야 할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몇몇 부분은 나에게 하는 충고 같기도 해서 찔렸다. 다음은 내가 인상깊게 받아들인 교훈들이다.

  • 쉬운 길
    헤시오도스는 열등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정상에 올라가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멀고 가파르며 울퉁불퉁하지만 정상에 도착하면 나아가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무언가를 쉽게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쉽다면 그건 열등한 것이라고 충고해주는 것이다.

  • 길게 생각할 것
    가장 훌륭한 사람은 종국에 무엇이 최선인지 숙고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눈앞의 이익만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충고해주는 것이다.

  • 게으름에 뒤따르는 것
    ‘기아는 게으름뱅이의 충실한 동반자’이며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는 신들도 인간도 싫어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대가 일하면 게으름뱅이는 곧 그대가 부자가 되는 것을 시기할 것이오. 하지만 부에는 위엄과 명망이 따르는 법이오.’ 게으름의 동반자는 기아, 부의 동반자는 위엄과 명망이다.

  • 염치
    염치는 궁핍한 사람에게는 좋은 동반자가 아니라고 한다. 가난하면 염치가 없어지기 쉬운가보다.

  • 나쁜 부
    교활하게 부를 약탈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파렴치가 염치를 몰아내고, 부도 잠시만 머물 뿐이다. 나쁜 이익은 손해나 다름 없다. 돈에 눈이 멀어 교활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 신뢰와 불신
    ‘형제간에도 서로 웃으며 지내되 증인을 세우시라. 신뢰도 불신도 똑같이 사람을 망치는 법이오.’ 상당히 현실적인 대목이다. 불신은 좋지 않지만 무조건적인 신뢰도 사람을 망칠 수 있다.

  • 일을 미루지 말 것
    일을 미루면 끊임없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일을 절대로 내일 모레로 미루지 말고 근면하게 일하라고 충고한다.

  • 부와 지위
    농사를 잘 지어서 추수를 해놓으면 ‘부자로서 화창한 봄을 맞을 것이고, 그대가 남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그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땅을 쟁기질하지 않으면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그대를 보고 경탄하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부가 곧 지위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은 지위를 얻기 쉽지 않다.

  • 통제권을 가질 것
    게으름뱅이는 공허한 희망만 믿고 기다린다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 통제권이 없는 것이다. 공허한 희망만 믿고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나서야 한다.

  • 아침 시간
    헤시오도스는 ‘이른 아침은 그대 하루 일의 삼분의 일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아침에 보내는 시간이 하루 전체를 좌우한다. 이 책 말미에 있는 말처럼 ‘하루가 어떤 때는 계모고 어떤 때는 어머니’인데 아침을 잘못 보낸 날은 하루가 계모인 날이다. 아침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 중용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은 중용이었는데, 이 책에도 그 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대는 중용을 지키시라. 매사에 적정이 최선이오.’ 부를 추구하는 것도 적정이 최선이다.

  • 적당한 친구
    지나치게 친구가 많은 자라고도, 친구가 없는 자라고도 불리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 친구가 너무 많은 것도 너무 적은 것도 좋지 않은가보다. 좋은 친구를 적당히 옆에 두는 것이 가장 최선인 것 같다.

  • 말의 절제
    ‘인색한 혀가 인간들 사이에서는 최선의 보배고, 혀는 절제할 때 가장 매력 있다.’ 확실히 말은 적게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은 혀 아래 맴돌도록 내버려두어야겠다.

  • 구설
    사람들의 구설을 피하라고 한다. 구설은 견디기 힘들고 벗어나기도 어려워 한 번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면 결코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고 한다. 쓸데없는 말을 줄임과 동시에 처신도 잘 해야 한다.

헤시오도스의 정의관과 처세훈으로부터 도덕, 생활 전반에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농사력에 대한 부분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으나 지금도 통용되는 교훈을, 거의 3천 년 전 사람이 전해준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책이다. 몇천 년 동안 인간의 생활방식이 그렇게 많이 변했음에도 헤시오도스의 정의관에 공감할 수 있고, 그의 교훈이 여전히 기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을 둘러싼 것들은 변해도 본질적인 것과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