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숲, 2008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숲, 2008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탄원하는 여인들』은 다나오스와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의 구혼을 피해 아르고스에 탄원(도움을 호소함)하러 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기원전 463년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야기는 얼핏 보면 그냥 결혼하기를 싫어하는 여인들이 생떼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다나오스의 딸들과 사랑을 통해 영혼의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한 해석을 하도록 하겠다.

배경지식

아르고스에서 헤라의 여사제로 있던 이오는 제우스에 의해 암소로 변하고, 헤라의 박해로 인해 방랑하다가 현재의 이집트 땅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이오는 원래 모습을 되찾고, 이집트 사람들에게 ‘이시스’ 여신으로 숭배된다.

이오는 그곳에서 아들 에파포스를 낳고, 에파포스는 네일로스(나일 강의 이름)의 딸 멤피스와 결혼한다. 그래서 에파포스가 네일로스 강(나일 강) 근처에 세운 도시의 이름을 멤피스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는 에파포스가 이집트 왕가의 시조라고 주장한다.

에파포스는 딸 리뷔에를 낳는다. 이 이름을 따서 아이귑토스(이집트)의 서쪽 지역을 리뷔에(리비아)라고 하였다.

리뷔에는 포세이돈과 결합하여 아들 벨로스를 낳는다. 벨로스는 쌍둥이 아들인 아이귑토스와 다나오스를 낳는다. 벨로스는 다나오스를 리뷔에 땅에 정착시켰고, 아이귑토스는 아라비아에 정착시켰다. 아이귑토스는 현재의 이집트 땅까지 정복하여 나라 이름을 아이귑토스라고 했다. 이 아이귑토스에서 이집트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2.-다나오스-아이귑토스-가계도

그림 1. 이오에서 아이귑토스와 다나오스까지의 가계도, 아폴로도르스의 『비블리오테케』 2권 1장 참고

아이귑토스는 50명의 아들들을 낳았고, 다나오스는 50명의 딸들을 낳았다.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왕위를 두고 다투기 일쑤였고, 그래서 다나오스가 왕위를 갖게 될까 두려워 다나오스를 추방한다.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두려워 아테네의 조언에 따라 배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배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르고 호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배라는 주장이 더 널리 알려져있다. 다나오스는 50명의 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아르고스로 도망친다. 나중에 아이귑토스의 50명의 아들들은 아르고스로 찾아와 다나오스에게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당시에는 친족들에게 우선적으로 구혼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추방되고 신변의 위협도 느꼈던 다나오스가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게 쉽게 딸들을 줄리가 없었다.

(…) 아이귑토스는 아들이 쉰 명이고 다나오스는 딸이 쉰 명이다. 나중에 그들이 왕위를 다투게 되자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두려워 아테네의 조언에 따라 배를 건조한 다음—그가 처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딸들을 배에 태우고 도망쳤다. 그리고 로도스 섬에 들러 린도스의 아테네의 신상을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아르고스로 갔고 (…)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2.1.4 중

프로메테우스: (이오에게) (…) 그러면 그대는 살갗이 검은 에파포스를 낳게 될 터인데, 제우스가 낳아준 방법에 따라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그는 네일로스의 넓은 강물이 적셔주는 모든 땅에서 수확할 것이오. 쉰명의 딸들로 이루어진, 그로부터 다섯 번째 세대가 의사에 반해 도로 아르고스로 가게 될 것인데, 이 처녀들은 사촌과의 근친 결혼을 피하고 싶어한다오. 하지만 총각들은 마음이 후끈 달아올라, 마치 비둘기들에게 많이 처지지 않은 매처럼, 사냥할 수 없는 사냥감인 결혼을 사냥하러 오겠지만 신은 그들에게 처녀들의 몸을 내주지 않는다오. (…)
—아이스퀼로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846–859행

이상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2.1.1–4와,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1권 568–746행을 참고하면 좋다.

본작 내용 및 해석

『탄원하는 여인들』은 다나오스의 딸들로 이루어진 코로스가 아르고스 땅에 도착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나오스와 다나오스의 딸들은 아프리카 땅 리뷔에에서 왔기 때문에 그들의 외모는 흑인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백인들인 아르고스인들에게 자신들이 당신들과 같은 혈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웠겠는가?

하지만 『탄원하는 여인들』이 비극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다나오스의 딸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르고스의 펠라스고스 왕이 처한 난처한 상황 때문이다. 펠라스고스 왕은 그녀들을 받아주기를 거절하고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게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신들에 대한 의무인 탄원자를 돕는 의무를 져버린 것이므로, 정의를 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에 어떤 저주가 내리게 될지 알 수 없다. 만약 그녀들을 도시에 숨겨주고 보호해준다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정의를 수호하는 대신 도시의 무고한 젊은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이 상황에 처한 펠라스고스 왕이 비통한 상황을 노래하는 장면은 본 작품의 압권이다.

펠라스고스: 제어하기 어려운 일들이 사방에서 다가오고, 숱한 재앙이 강물처럼 밀려드는구나. 나는 한없이 깊고 항해하기 어려운 미망의 바다에 빠져 있고, 안전한 항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468–471행

하지만 펠라스고스 왕은 현명하다. 그는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도시의 남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다. 왕은 민회를 소집하여 사람들을 설득하고, 시민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자고 만장일치로 결의한다. ‘만장일치’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도시의 사람들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는 현명한 왕이 힘을 합쳐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쩌면 이방인들로 여길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보호하기로 결정하면 도시에 피해가 올 것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시민의 일원으로 보호하겠다고 만장일치로 결의를 한 것이다.

다나오스: 아르고스인들은 만장일치의 결정을 내렸고, 그래서 이 늙은이의 마음이 도로 젊어진 것 같았지. 백성들이 오른손을 들어 대기를 가득 메우며 다음과 같이 결의했을 때 말이다. 우리는 여기 이 나라의 주민으로서 자유롭게, 침해당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 약탈당하지 않으며 살 수 있대. 그리고 이곳 토박이든 이방인이든 아무도 우리를 끌고 가지 못할 거래. 만일 우리에게 폭력이 행사되면 이곳 시민들 중에 우리를 도우러 달려오지 않는 자는 명예를 잃고 백성들의 결의에 의해 추방될 거래.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605–614행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결국 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전령들이 탄 배가 도착한다. 전령들은 다나오스의 딸들을 억지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 순간 펠라스고스 왕이 극적으로 나타나 그들을 쫓아낸다.

펠라스고스: (…) 이 나라 온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했다네. 어떤 일이 있어도 여인들의 무리를 폭력에 넘겨주지 않기로 말일세. 그리고 이 법령은 단단히 못질되어 있고, 요지부동으로 고정되어 있네. 물론 그것은 서판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문서의 지면에 봉인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자네는 한 자유인의 입에서 그것이 공표되는 것을 듣고 있네. 이젠 내 눈앞에서 어서 사라지게!
전령: 곧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 같군요. 승리와 우위는 남자들의 몫이 되기를!
펠라스고스: 자네들은 이 나라 주민들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들임을 알게 되리라. (…)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942–951행

이후 다나오스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단정한 품행을 약속하며, 아르고스 도시와 펠라스고스 왕을 축복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펠라스고스 왕의 고뇌와 아르고스 시민들의 현명한 결정은 이 작품이 명작으로 남도록 했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을 기피할 이유가 있지만, 다나오스의 딸들은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을 기피할 이유가 분명하지가 않다. 아버지를 따라 기피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게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작품에서는 모호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오히려 그녀들이 몸서리치는 것은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불쌍해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작품 내면에 있는 상징들을 파악하고 나면 그녀들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의 결혼을 그렇게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 세계에서 남자는 정신 세계인 영으로써 그려지고, 여자는 물질 세계인 육체로써 그려진다. 남자의 긍정적인 형태는 정의와 다른 도덕적 가치를 수호하는 신성한 영이다. 남자의 부정적인 형태는 허영이다. 허영과 교만에 빠진 영은 삶의 의미를 정의나 다른 도덕적 가치에 두지 않고, 그저 삶의 강렬한 체험이나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우월성에 둔다. 그렇게 되면 파괴적인 진부화에 빠진다. 여자의 긍정적인 형태는 영과 조화로운 욕망이며, 욕망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승화이다. 그런 승화는 보통 생명력을 상징한다. 여자의 부정적인 형태는 세속적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육체적 쾌락이나 세속적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도 영혼의 죽음인 진부화에 이르는 길이다. 그래서 보통 긍정적인 남신은 수호자이자 심판자인 하늘 신으로 많이 나오며, 긍정적인 여신은 모든 생명의 씨앗이자 풍요를 제공하는 자비로운 대지의 신 형태로 많이 나온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이오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이오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이오는 검은 먹구름으로 나타난 제우스와 (원치 않게) 교합하였다가 악마의 상징인 뿔이 나고 헤라가 보낸 쇠파리 때문에 황소의 모습으로 이곳저것 방랑한다. 그러면서 히브리 신화의 사탄과도 같은 존재인 프로메테우스를 만나기도 한다. 여기서 제우스는 검은 먹구름의 형태로 나타났으므로 타락한 영을 상징한다. 원래 이오는 헤라를 섬기던 여사제이다. 헤라는 욕망의 올바른 형태인 승화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그렇다면 이오 이야기는 이오가 허영에 속아 세속적 욕망에 집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진부화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제우스와 교합할 때 원치 않았다. 그녀 마음 속에서 어떤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죄책감을 상징하는 쇠파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오는 제우스가 헤라에게 요청함에 따라 헤라와 화해를 한 뒤, 그제서야 영의 아이인 에파포스를 낳을 수 있었다.

이제 『탄원하는 여인들』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다나오스의 딸들은 이오의 후손이다. 이오는 욕망을 올바르게 승화하는 모습과, 세속적 욕망에 집착하는 잘못된 모습을 왔다갔다 했던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다나오스의 딸들은 욕망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욕망을 잘 다스리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순결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순결은 욕망의 제어를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그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오를 검은 먹구름의 형태였던 제우스가 유혹했듯이, 이브를 허영의 상징인 뱀이 유혹했듯이 말이다.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허영, 곧 교만의 상징인 것은 작품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만약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다나오스의 딸들을 그냥 폭력적으로 납치해가려는 것이라면 그들을 교만하다고 표현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그런 표현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코로스: 아이귑토스의 오만한 아들들은 (…) (30–31행)
코로스 (우 3): 그대들은 교만을 진심으로 미워하시어 정당한 결혼의 권리를 지켜주소서. (…) (81–82행)
코로스 (우 5): 제우스께서는 인간의 오만을 굽어 살피소서. 이 오래된 가문은 우리와 결혼할 욕심으로 다시 젊어지며 어떤 조언에도 마이동풍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광기 어린 욕망이 피할 수 없는 박차 노릇을 한다면 속임을 당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리라. (104–111행)
코로스 (우 4): 남자들의 교만을 알아보시고, 신들의 노여움을 조심하세요! (426–427행)
펠라스고스: 그러면 더러는 그것을 보고 아마 그대들을 동정하여 저 남자 무리의 교만을 증오하게 될 것이오. (…) (486–487행)
코로스: 그대도 싫어하시는, 남자들의 교만을 막아주소서. (…) (528행)
코로스: 마음이 너무나 교만하고, 불경한 반항심으로 가득 차고, 탐욕에 미치고, 개처럼 뻔뻔스런 자들은 결코 신들을 존중하지 않을 거예요. (757–759행)
코로스 (좌 1): 그대 주인의 교만과 함께, 못으로 선재를 이어 붙은 배 안에서 익사했더라면! (846–847행)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발췌

그리고 다음 표현은 아예 따로 빼놨는데,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허영의 상징이라는 주장의 아주 강력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뱀은 거의 모든 신화에서 허영을 상징한다. 때때로 뱀의 승천이 허영에서 신성한 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뱀과 용은 허영이기 때문에 세속적 욕망을 유혹하고 영혼을 더럽힌다. 영혼은 주로 발로 상징되는데, 그래서 뱀이 발을 무는 것은 허영에 의해 영혼이 타락하거나 죽는 것을 의미한다.

뱀은 왜 허영의 상징이 되었을까? 뱀은 나무에서 살다가 막 초원으로 내려온 원시 인간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실제로 언어의 분화 과정을 봐도 다른 동물들에 대한 단어가 없는 원시 언어라도 뱀에 대한 범주를 나타내는 단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뱀은 원시 인간들에게 특히 더 죽음을 가져다주는 존재였을 것이고, 그것이 악으로 상징화되었다. 또한, 심리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허영에 대한 경계심은 집단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신화 후기에 그런 허영에 대한 경계심의 원형이 뱀이라는 악독한 존재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코로스 (우 3): 발 둘 달린 뱀이, 독사가 달려와 내게 덤벼드는구나. (…)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895–896행

다나오스의 딸들이 남자를 혐오하는 남자 기피증에 걸려서 아이귑토스의 아들들로부터 도망다닌다는 해석도 있다. 보통 ‘타고난 남자 기피증’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해석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다음 부분을 보자.

코로스: 우리가 쉬리아와 인접해 있는 신성한 고향 땅을 뒤로하고 도망해온 것은, 유혈 행위 때문에 시민들이 추방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남자 기피증 탓에 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의 결혼과 그들의 불경한 의도가 혐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4–8행

펠라스고스: 그들이 싫어선가요, 결혼 자체를 불의라 여기는가요?
코로스장: 사랑스런 주인을 비난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336–337행

코로스 (우 1): 차라리 밧줄의 고에 목을 매달아 죽고 싶어. 저주받은 남자가 내 몸에 손대기 전에.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788–790행

순결을 지키는 것은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의무이지만, 결혼 자체를 불의로 여기는 것은 아프로디테 여신에 대한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욕망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그런 메시지를 심어놨을리는 없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교합하는 것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녀들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을 뿌리치는 이유는 허영과는 결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남자 기피증은, 남자들이 보통 타락했을 때 빠지는 허영, 교만, 파괴, 티탄적 진부화를 기피한다는 것이지, 신성한 영을 가진 남자까지 기피한다는 것은 아니다.

허영은 우월감에 빠져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맞춰주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괴한다.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힘으로 억지로라도 관철하는 것이다. 허영은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호소한다. 그들이 원하는 결합은 자신의 지위를 위한 결합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헤라가 축복하는 사랑을 통한 영혼의 결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를 그저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하녀로 부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타락한 남자, 타락한 영이다.

코로스 (좌 3):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자들의 위력에 예속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사랑 없는 결혼을 피해 별나라 밖으로까지 도망가서라도 구원을 찾을 거예요. (…)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392–394행

코로스: 그들이 사촌누이들인 우리를 힘으로 제압하여 우리가 싫다는데도 억지로, 테미스 여신이 금하는 침상에 오르기 전에. (37–39행)
코로스장: 아이귑토스의 자식들은 망종들이고 제정신이 아니며 전쟁에 물리지 않아요. (741–742행)
코로스장: 저들은 성이 나면 괴물들처럼 제정신을 잃고 무도하니, 마땅히 저들의 힘을 경계해야 해요. (762–763행)
코로스 (우 3):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교만하고도 역겨운 남정네들이 도망치는 나를 괜히 고함을 지르고 법석을 떨며 서둘러 뒤쫓아와서는 폭력으로 나를 잡으려 합니다. (817–821행)
전령: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반이오. 강요에 의해 강압에 의해 앞으로 움직이시오. 걸어가시오. 그대가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거든, 내 주먹에 맞아 죽지 않으려거든. (862–865행)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발췌

다나오스의 딸들이 조화로운 욕망이고, 허영의 유혹을 뿌리치는 존재이며,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허영을 의미한다면 펠라스고스 왕은 무엇을 의미할까? 펠라스고스 왕과 아르고스 시민들은 조화로운 욕망을 허영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이다. 펠라스고스 왕은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달변가이자, 현명한 왕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다나오스의 딸들을 허영에게 그냥 내주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거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의의 편에 서거나. 그렇다면 펠라스고스 왕은 지성의 상징이고, 아르고스 시민들은 자제력의 상징이다. 자제력은 지키는 힘이다.

지성은 옳게 사용될 수도,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정의와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성은 신화의 단골 주제이다. 지성은 당장의 손실 보전이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은 눈먼 지성이다. 허영인 악마가 약속하는 힘은 그런 눈먼 지성과 파괴적인 힘이다.

반면에 지성은 정의에 호소하여 조화로운 욕망을 허영으로부터 지켜낼 수도 있다. 지성이 정의와 다른 도덕적 미덕에 호소하면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도덕적인 힘을 발휘하면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다나오스: 너희들의 말은 무엇보다 뻔뻔스러워서는 안 되며, 너희들의 정숙한 이마와 차분한 눈에서 허영심이 비쳐 나와서도 안 된다. 주제넘어서도 안 되고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그런 태도는 미움을 사게 마련이다. 명심하고 겸손하라.(…)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197–202행

이제 정리하자. 『탄원하는 여인들』은 허영과 교만에 대한 경계심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허영으로부터의 유혹은 정의에 호소하는 올바른 지성과 자제력을 통해 방어할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찌 악의 유혹을 안 받을 수 있겠는가? 눈앞의 손익에 민감한 게 인간이다. 그리스 신화는 우리 마음 속의 악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악이 없을 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우세하지 않고 3분의 1만 있어도 만족한다고 한다. 잘못된 욕망이나 허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법은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지혜와 이성을 통해 그것을 올바르게 제어하는 것이다. 만약 펠라스고스 왕과 아르고스 시민들이 다나오스의 딸들을 위해 만장일치로 결의할 때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정의의 승리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스 (우 4): 여인들이 승리하게 해주소서! 악이 더 우세하지 않고 삼분의 일에만 그친다면 나는 만족이에요. 그리고 정의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고, 내가 기도한 대로, 신께서 우리에게 구원받을 방도를 마련해주신다면!
—아이스퀼로스, 『탄원하는 여인들』, 1070–1073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