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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숲, 2008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큰 소리로 울어대는 송아지들의 목자가 된 아르고스의 온 백성들
『탄원하는 여인들』은 『아이귑토스의 아들들』, 『다나오스의 딸들』과 짝을 이루는 3부작이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탄원하는 여인들』뿐이다. 3부작의 제목들로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듯이, 다나오스의 50 딸들은 아이귑토스 50 아들들의 구혼을 피해 도망쳐 아르고스의 왕 펠라스고스에게 탄원한다.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는 앙키노에와 벨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이오의 후손들이다.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사촌인 다나오스의 딸들과 결혼하려 한다. 근친이 숱하게 나오는 그리스 신화에서 다나오스의 딸들이 왜 사촌들과의 결혼을 거부했는지 명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다나오스의 딸들은 사촌들과의 결혼보다는 죽음을 택할 정도로 그들과의 결혼을 혐오한다. 그래서 다나오스와 그의 딸들은 이집트를 떠나 조상 이오의 고향, 아르고스로 간다. 당시 아르고스의 왕은 펠라스고스였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탄원자의 표지를 들고 아르고스의 국왕 펠라스고스에게 탄원한다.
펠라스고스 왕은 탄원자들의 청을 들어줄지 말지 갈등한다. 탄원자들의 청을 들어주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고, 그들의 청을 거절하면 탄원자의 보호자인 제우스로부터 노여움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인들이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목매달아 죽겠다고 말하자 펠라스고스는 그들이 탄원자의 가지를 들고 도시로 가게 한다.
아르고스인들은 만장일치로 탄원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인들이 기뻐하며 아르고스를 축복하는 순간,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배를 타고 아르고스로 오고 있다. 그들의 전령이 다가와 다나오스의 딸들을 데려가려 한다. 그때 펠라스고스 왕은 전령에게 아르고스의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이 여인들을 폭력에 넘기지 않기로 약속했다면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말한다. 전령은 퇴장하고 여인들은 아르고스에 집도 마련받고 시민들을 통해 보호를 받는다.
다나오스와 그의 딸들은 아르고스의 공주였던 이오의 후손이지만, 현재는 피부색이 다른 이집트 사람이다. 그러니 현재의 아르고스에서 그들은 비헬라스인, 이방인이다.
펠라스고스 왕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그는 자신이 암초에 걸려들었다고 표현한다. 여인들을 받아주면 아이귑토스 아들들과 전쟁을 하게 되어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여인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다. 고민하고 있는 펠라스고스에게 여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세요, 이 탄원하는 여인을, 정처 없이 쫓겨 다니는
이 여인을! 나는 늑대에 쫓겨 가파른 절벽 가에서
도움을 기대하며 목자에게 조난 신호를 보내려고
큰 소리로 음매음매 울어대는 송아지와 같아요.
쇠파리에 쫓기는 이오는 암벽 위에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게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대는 이 쇠뿔 달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세요?” 쇠파리에 쫓기는 암소 이오가 프로메테우스라는 목자에게 조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자식 이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제 그녀의 후손, 암소의 새끼인 송아지들이 펠라스고스라는 목자에게 조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펠라스고스 같은 선왕이 이 여인들을 가련하게 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도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이 일에 관해 모든 시민들과 상의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혼자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소.
우리는 술에 취하지 않은 맑은 눈으로
잠수부처럼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단 말이오.
그런데 어진 왕에 어진 백성인지, “누구나 약자에게는 호의를 품기 마련”이라는 펠라스고스의 말처럼 아르고스인들은 만장일치로 여인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방인에게 행사되는 폭력을 보고도 돕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결의에 의해 추방하기로 한다.
이후 아이귑토스 아들들의 전령을 내쫓는 펠라스고스의 말이 압권이다.
여기 이 여인들은 본인들이 원하고 진심으로 바란다면
데려가도 좋네. 고운 말로 설득할 수 있다면.
이 나라 온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했다네,
어떤 일이 있어도 여인들의 무리를 폭력에
넘겨주지 않기로 말일세. 그리고 이 법령은 단단히
못질되어 있고, 요지부동으로 고정되어 있네.
물론 그것은 서판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문서의 지면에 봉인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자네는 한 자유인의 입에서 그것이 공표되는 것을
듣고 있네. 이제 내 눈앞에서 어서 사라지게!
그리스에서 나온 비극답다. 왕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모든 시민들과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하는데, 그 모든 시민들은 또 약자의 편에 선다. 송아지들의 목자는 펠라스고스 왕 혼자가 아니라, 왕과 아르고스의 시민 모두였다.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에서도 테세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테나이는 주인이 없고 백성들이 통치한다고. 과연 민주주의가 태동한 나라답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국민들이 이토록 이상적이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방인들이 낯선 땅에 찾아와 탄원하는 일은 『탄원하는 여인들』이 공연된 지 약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내집단 편향 때문에 인간이 이방인을 경계하는 건 본능적이다. 그 편향을 인지하고 있어도 그것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아르고스의 백성들처럼 이방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방인과 친구는 한끝차이다. 똑같은 인간을 가르는 것은 피부색, 눈색, 머리카락색, 옷, 장신구다. 나와 다르게 생긴 이방인들을 보며 그들이 혹시나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나는 과연 여인들을 보호하자고 했던 아르고스의 모든 백성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선택이 불러올 큰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보호할 수 있었을까? 과거의 나는 어린 송아지들을 외면했겠지만, 이제는 나도 그들의 목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