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천병희 옮김, 숲, 2004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천병희 옮김, 숲, 2004

스포일러 있음

그리스·로마 신화 읽는 순서

비블리오테케, 혹은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이 책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전체 내용에 관한 책이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들이나 호메로스에 입문하기 전 그리스로마신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체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는 작품에는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도서관이라는 뜻)나 ‘히기누스’의 『파불라』(이야기라는 뜻)가 있는데, 파불라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이 아직 없다. 그리스 신화부터 로마 신화까지 써져있는 것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 신들 이름이 전부 로마 신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크로노스’를 ‘사투르누스’로, ‘데메테르’를 ‘케레스’로, ‘포세이돈’이 ‘넵투누스’로 써있는 식으로 말이다.

『비블리오테케』에는 카스트로가 쓴 『연대기』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연대기는 기원전 1세기의 작품이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가필되었거나, 아폴로도로스와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저자 이름에 ‘(가)‘를 붙여 (가)아폴로도로스라고 하기도 한다.

『비블리오테케』는 이야기가 요약 형식이라서 하나, 또는 몇 개의 사건만을 다루는 작품들보다는 밋밋하다. 또한, 완전한 시간 순서로 쓰여지지 않았고 지역별이나 가문별로 신화를 배치하다보니 읽다가 앞으로 다시 가서 여러 번 읽어봐야 했다. 오히려 『변신 이야기』는 『비블리오테케』보다는 문장 묘사가 더욱 풍부하게 쓰여있다.

『비블리오테케』는 총 3권에 요약 1권으로 해서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본인 필사본이 3권 중간까지 전해지고, 그 뒤의 이야기는 소실된 줄 알았는데 그 뒤의 이야기가 요약되어 있는 버전이 나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약본이라고 해서 앞의 이야기들보다 더 밋밋하거나 하지는 않다. (앞의 이야기부터 쭉 밋밋하기 때문에…) 어쨌든 신들의 탄생부터 트로이아 전쟁 이후 오딧세우스의 귀환까지 모든 이야기에 관해 읽을 수 있다.

제1권

1권에서는 신들의 탄생, 데우칼리온의 자손들, 아르고 호 원정대 이야기가 나온다.

신들의 탄생에서는 우라노스, 크로노스를 이어 제우스, 포세이돈, 플루톤(하데스)가 통치권을 잡는 이야기, 오르페우스의 이야기, 첫 번째 동성애자이자 신에게 도전한 타뮈리스 이야기, 아테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탄생 이야기, 오리온 이야기,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이야기, 기가스들이 신들에 대항했지만 헤라클레스와 신들에게 진 이야기, 튀폰의 이야기 등이 나온다.

데우칼리온의 자손들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대홍수와 인간 창조 이야기, 알로에우스의 아들들이 신들에게 도전했다가 아르테미스의 꾀에 넘어가 죽은 이야기, 삼촌들을 죽인 멜레아그로스와 오이네우스의 멧돼지를 화살로 쏜 아탈란테 이야기, 오이네우스의 뒷 이야기, 프릭소스와 헬레가 황금 양을 타고 탈출한 이야기, 아이올로스부터 벨레로폰테스까지의 계보, 펠리아스와 넬레우스 쌍둥이의 아들들 이야기, 예언자 멜람푸스 이야기, 펠리아스와 그 대신 죽으려고 한 아내 알케스티스 이야기 등이 나온다.

이아손과 아르고 호에서는 이아손이 펠리아스에게 빼앗긴 왕좌를 찾기 위해 황금 양 모피를 찾아오는 아르고 호 원정대를 조직한 이야기, 여인들만 있는 렘노스 섬 이야기, 헤라클레스가 동성애인인 휠라스를 잃어서 중간에 이탈한 이야기, 베브뤼케스족과 싸운 이야기, 예언자 피네우스를 하르퓌아이들로부터 구해준 이야기,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만나고 황금 양 모피를 얻은 이야기, 자신의 오라비를 죽이고 탈출한 메데이아 이야기, 메데이아가 탈로스를 죽인 이야기, 메데이아가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펠리아스를 죽인 이야기, 메데이아가 이아손에게 배신 당하자 이아손의 다른 아내 글라우케와 가족들을 불 태워 죽이고 자기 아들들도 죽인 뒤 떠난 이야기, 메데이아의 그 후 이야기 등이 있다.

내 생각

신화는 왜 만들어졌을까? 몇 가지 이유로 나눠볼 수 있다.

  1.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2. 왕에게 신권을 부여하고, 그러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3. 역사를 기록하려고
  4.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5. 그냥 재밌으라고

즉, 고대에는 신화가 과학이자, 정치학이자, 역사학이자, 윤리학이자, 문학이었다.

신화가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의 기원을 설명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농업, 풍년의 신 데메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보자. 플루톤(하데스)는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지하 저승 세계로 납치해간다.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모든 곳을 돌아다녔고, 땅에는 가뭄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극심한 가뭄의 원인을 풍요의 신인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결국 찾았지만 페르세포네는 이미 저승의 음식인 석류 몇 알을 먹었기 때문에 일 년 중 3분의 1은 지하 세계에 가있어야 했다. 그래서 1년 중 겨울에 해당하는 4개월 동안은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기기 때문에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기가스의 반항 사건 이후 게(가이아)가 보낸 괴물 튀폰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보자. 튀폰은 제우스가 던진 아이트네 산에 깔렸다. 산 꼭대기에서는 제우스가 튀폰에게 던진 벼락 때문에 불길이 솟아오르고, 튀폰이 신음할 때마다 화산이 폭발한다고 한다. 고대인들은 화산이 왜 폭발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뭄이 왜 발생하고, 겨울에는 왜 농업이 안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자연 재해는 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연 재해가 일어나는 이유가 필요했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제우스의 벼락이나 괴물 튀폰의 신음 소리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신화를 읽을 때에는 신들과 요정, 사건들이 어떤 상징을 갖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므네모쉬네의 자녀들인 아홉 무사(뮤즈)들의 상징을 보자. 므네모쉬네는 기억을 상징하고, 아홉 뮤즈는 각각 서사시, 역사, 서정시,비극, 무도가, 뤼라 서정시, 찬신가와 무언극, 천문학, 희극과 목가를 상징한다. 기억에게서 음악들이 나왔다. 팔라스와 스튁스 사이에서는 승리(니케), 힘(카르토스), 열성(젤로스), 완력(비아)가 태어났다. 이들은 티탄 신족과 올림피아 신들이 싸울 때 올림피아 신들의 편에 섰다. 이것은 올림피아 신들에게 힘과 열성, 완력 그리고 승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들 중 특히 나라나 도시를 세운 왕은 거의 다 신들의 자식으로 나온다. 신에게는 감히 도전할 수도 없고,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고 해도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한 신의 자녀들인 왕에게도 일반 사람들은 함부로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신화는 왕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쓰였다.

아테네가 버린 피리를 주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된 마르쉬아스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아폴론에게 함부로 도전했다. 도전이 잘못된 것인가? 아폴론에 대한 도전에서 진 마르쉬아스는 감히 신들에게 도전한 벌로,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껍질이 벗겨져 죽었다…! 이것은 신들에게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는 뜻이자, 도전할 때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교훈이 퍼진 세상에서 누가 신에게 도전하려 했겠는가? 또한, 그런 신들의 자녀에게 어떻게 도전하려고 했겠는가? 왕들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신성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했다. 똑같은 인간이 똑같은 인간을 지배한다면 지배받는 사람들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배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면 쾌감을 느낀다. 이 ‘샤덴 프로이데’라고 불리는 쾌감은 본능이다! 그러므로 신들의 자녀 정도가 아니라면 사람들을 강제로 지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불을 주고 나서 벌을 받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자녀들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자식인 데우칼리온이 돌을 뒤로 던져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우스와 인간은 상관이 없다. 제우스는 그저 절대 권력으로 인간들을 지배하고, 요정이나 인간들과 몸을 섞는 존재이다. 그러나 제우스의 뜻을 거스르고 자녀들인 인간들을 걱정해서 불을 나눠준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밤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먹히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신들에게 도전했던 기가스, 퓌톤 전부 어떻게 되었는가? 포세이돈의 손자이자 알로에우스의 아들들인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또한 신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들은 아르테미스의 꾀에 넘어가 서로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제우스를 거스르고 자신의 어머니인 헤라를 도와줬던 헤파이스토스도 섬으로 던져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만약 왕들이 별탈 없이 도시를 잘 다스리다가 죽었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그들은 신들의 자식으로 신화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다. 사람들이 신들의 자식들이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런 왕들은 교만 때문에 신들에게 죽었다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교만한 살모네우스는 자신이 제우스라고 주장했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알퀴오네와 케윅스는 서로 헤라와 제우스라고 주장했다고 새로 변하는 벌을 받았다.

신화에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장려하는 기능도 있었다. 청동 종족은 부덕함으로 인해 홍수에 쓸려나가 죽었다.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테 이야기를 보자. 아탈란테는 멧돼지를 제일 먼저 화살로 쏘았다. 멜레아그레스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공을 인정하고 멧돼지의 가죽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런데 여자가 상을 받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테스티오스의 아들들, 즉 멜레아그레스의 외삼촌들은 아탈란테에게서 상을 빼앗는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여겨졌다. 여자라는 이유로 공이 가로채어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외삼촌들은 화가 난 멜레아그레스에 의해 죽는다.

그런데 외삼촌을 죽이는 것도 사회적으로 부당했다. 멜레아그레스의 어머니인 알타이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자신의 아들인 멜레아그레스는 자신과 유전적 근연도(포괄적합도)가 50%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게서 받았을테니까. 그런데 알타이아의 오라비들도 유전적 근연도(포괄적합도)가 50%이다. 오라비 두 명은 나 하나와 같다. 오라비가 세 명 이상 있었는데 그들이 멜레아그레스에 의해 모두 죽었다면 알타이아 자신보다 더한 존재가 죽은 것이다. 어머니인 알타이아의 복수심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미 죽은 오라비들은 매몰 비용이므로 신경 쓰지 않아야 하지만 인간은 매몰 비용의 오류를 저지른다. 알타이아는 멜레아그레스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던 장작을 태워 자신의 아들을 죽인다.

아타마스에게는 프릭소스와 헬레가 자녀가 있었다. 아타마스는 이노와 재혼하였는데, 이노는 프릭소스와 헬레를 죽이려는 음모를 세웠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프릭소스를 제물로 바쳐야 기근이 풀린다는 거짓 신탁을 내린다. 기근 조차 이노가 세운 계획의 일부였다. 그러나 프릭소스와 헬레는 황금 양이 나타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을 구해준다. 헬레는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프릭소스는 콜키스 나라에 도착해 잘 성장하게 된다. 헤라는 화가 나서 이노와 이노의 자식들을 모두 죽게 만든다. 헤라는 가정의 여신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둥이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노의 행동은 헤라의 벌로 보복을 당하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보며 교훈을 얻거나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아르고 호의 이야기에서는 이아손보다 메데이아가 진짜 주인공 같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손에 계속 피를 묻혔다. 이아손을 사랑했기 때문에 살인도 불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하고 결혼까지 했는데도 다른 여자 글라우케와 또 결혼한다. 결국 메데이아의 복수심은 글라우케와 글라우케의 아버지,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자식들까지 모두 죽이게 된다.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것이 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큰 복수심을 낳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여자를 버리는 남자에게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을지 교훈을 주는 기능도 한다.

물론 모든 신화 속 모든 이야기가 상징이나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나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엔릴 신이 대홍수를 내리고, 엔키 신을 잘 섬기던 아트라하시스(우트나피쉬팀)은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보자.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도 제우스가 화가 나 대홍수를 내렸을 때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았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히브리 신화에서도 그대로 각색되어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전해진다.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찾아 방황할 때 왕비 메타네이라는 데메테르를 잘 대접했다. 데메테르는 그녀가 기특해서 그녀의 아들을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자 불 위에 얹었다. 그걸 본 유모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보다 천 년 전에 있었던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 이야기에도 그대로 나온다. 똑같은 이야기가 신화마다 어떻게 바뀌고 전승되는지 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신화에는 역사도 섞여있다. 누가 누구를 낳았고 낳은 자식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등이 쓰여있다. 그런데 역사와 신화가 섞여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고 상상을 가미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신화가 왜 쓰였는지 생각해보고,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보면 절묘하게 섞인 신화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밌게 볼 것은 그리스 신화의 운명론적 시각이다. 운명은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에 의해 권좌에서 몰아내질 것이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래서 자녀들을 모두 먹는다.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먹는 것 때문에 제우스를 숨기고, 제우스는 커서 자식들을 먹는 아버지를 몰아낸다. 운명을 피하기 위한 행동조차 운명에 도달하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운명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 참 재밌고 신기한 역설이다. 이런 운명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그 행동 때문에 운명을 맞이한 운명론적인 이야기는 다른 그리스 비극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 다음 권에 대한 이야기


제2권

『비블리오테케』의 2권은 아르고스 지방의 신화와, 헤라클레스와 그의 자손들이라는 2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고스 지방의 초기 신화에는 제우스가 이오를 유혹하다가 이오를 황소로 변신 시킨 이야기, 이오가 황소로 변해 헤라의 질투로 고통 받는 이야기, 다나오스의 50 딸과 아이귑토스의 50 아들 이야기, 예언자 멜람푸스 이야기, 벨레로폰테스가 키마이라를 죽인 이야기, 영웅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고르곤 메두사, 안드로메다 구출 등), 헤라클레스를 키워준 암피트뤼온 이야기 등이 있다.

헤라클레스와 그의 자손들에는 헤라클레스의 탄생 이야기와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죽인 이야기, 헤라클레스가 미뉘아이족으로부터 테바이를 방어한 이야기, 헤라클레스의 첫 번째 결혼과 미쳐서 자녀들을 죽인 이야기,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시킨 12가지 고역, 살인죄 때문에 다시 3년간 종살이를 한 이야기, 일리온(트로이아 1차 함락) 침략 이야기, 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결혼과 죽음과 신격화, 헤라클레스의 자녀들이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와 멧세네를 지배한 이야기 등이 있다.

내 생각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신’이라는 형태로 의인화되었다. 번개와 천둥은 제우스로 의인화되었다. 농업을 하려면 별들의 운행을 보고 계절의 진행을 예측해야 했다. 그러한 별들은 신으로 의인화되었다. 이런 의인화를 ‘애니미즘’이라고 한다. 신들은 인간의 물활론적 편향으로 인한 자연 현상의 상징이 되었다.

아르고스 나라에서는 물이 없었다. 이를 포세이돈과 헤라가 이 나라의 주도권을 두고 싸웠는데, 사람들이 헤라를 섬기자 포세이돈이 우물까지 말려버렸다고 신화는 설명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이다. 물이 없는 환경은 고통 그 자체이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물활론적 편향으로 인해 다른 의식을 가진 존재가 자신들에게 나쁜 일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제우스의 자식들이라는 사람들이 진짜로 실존 인물이었다면 둘 중 하나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거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신성 부여를 위해 아버지의 존재를 지웠거나이다. 그래서 『비블리오테케』에는 제우스의 자식이지만 일설에는 인간 누구의 자식이라더라. 이런 이야기도 많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과부 밑에서 자랐거나 고아로 자랐다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현재보다 더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부 밑에서 자라거나 고아로 자란 경우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우스의 자식들이 겪는 고통은 물활론적 편향에 의해 헤라의 질투로 인한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것이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알크메네는 헤라의 질투로 인해 출산이 지연되었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칠삭둥이로 미숙아로 태어난 것도 헤라 때문이었다. 과부들이 받는 고통은 헤라의 질투에 의한 것으로 의인화되었다. 원인도 모르는 채로 삶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보다 그런 의인화가 훨씬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알크메네가 헤라클레스를 낳게 된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암피트뤼온은 전쟁에서 돌아와 집에 왔을 때 아내 알크메네가 자신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그리고 신의 아들을 잉태했다고 했다. 암피트뤼온은 신으로부터, 그것도 무려 제우스한테서 오쟁이를 지게 되었다! 과연 그게 제우스였을까? 알크메네가 암피트뤼온에게 매정했던 이유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거나, 혹은 남편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다. 이후에 암피트뤼온이 하는 행동을 보자. 암피트뤼온은 부성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즉 태어난 두 아들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 중 누가 자신의 아이인지 알기 위해 뱀 두 마리를 아기의 침대로 보냈다. 헤라클레스가 두 뱀을 죽이자 헤라클레스는 신의 아들이고, 이피클레스는 도망치자 이피클레스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았다고 한다. 혹은 암피트뤼온은 그냥 남의 자식인 헤라클레스를 죽이기 위해 뱀 두 마리를 보냈을 수 있다.

이후의 헤라클레스의 행보는 상당히 불안정해보인다. 그는 부모로부터 좋은 교육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볼 때 좋은 사랑을 받았는지는 의문이 든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음악 교사에게 반항해 악기로 그를 때려 죽인다. 이후에도 미쳐서 가족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그런 살인죄로 오랫동안 노역을 하며 살긴 하지만, 그의 정신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해보이는 것은 명백하다. 그가 미쳐서 사람들을 죽였던 것 중에는 헤라의 질투 때문에 헤라가 미치게 만들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것은 헤라클레스가 미쳐서 가족들을 죽이는 것도 그가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겪는 시련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갖게 된 이유는 (헤라의 질투로 상징되는) 그가 부모로부터 좋은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의 부재가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피스가 독재자가 된 뒤 그는 신으로 여겨졌다. 신화는 왕에게 신권을 부여하는 용도로도 쓰여진다. 현대의 많은 독재자들도 신화를 통해 자신에게 신권을 부여한다. 그래야만 같은 존재인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 신권에는 절대로 도전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헤라클레스가 아마조네스족 여왕 힙폴뤼테의 허리띠를 가지러 갔던 일화가 있다. 이때 헤라의 분탕으로 인해 힙폴뤼테와 많은 아마조네스족 여전사들이 죽는다. 헤라에게 책임이 있는가? 신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손해는 신들이 아닌 그 아래의 인간들이 감수한다. 특히 신탁은 신권의 상징인데, 이 메시지의 모호성 때문에 일어나는 손해도 신의 책임이 아닌 인간의 책임이다. 테메노스는 신탁을 잘못 이해해 손해를 보고 신에게 항의를 한다. 신은 그것이 신탁을 잘못 이해한 테메노스의 책임이라고 한다. 신탁이 모호한 것은 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오가 제우스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보자. 제우스는 헤라의 여사제였던 이오를 유혹하다가 헤라에게 들키자 이오를 흰 암소로 변신시킨다. 그러고 제우스는 자신이 이오와 교합한 적 없다고 거짓 맹세를 한다. 헤라는 이오를 받고, 그 암소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먼저 천리안 아르고스를 시켜 이오 나무에 묶고 감시하게 했다. 이것 때문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고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죽인다. 아르고스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이오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이들은 잘못이 없다. 제우스의 잘못으로 인해 이들이 손해를 받고 있다. 헤라는 쇠파리를 보내 이오를 또 괴롭히는데 그래서 이오는 방황하다가 아이귑토스(이집트)까지 도달한다. 헤라의 질투는 멈추지 않고 쿠레테스를 시켜 그녀의 아들을 빼돌리게 한다. 제우스는 화가 나 자신을 키워줬던 쿠레테스를 죽인다. 쿠레테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오와 이오의 자녀도 아무 잘못이 없다. 헤라의 복수의 대상이 제우스가 아니라 후처인 이오인 것을 보자. 과거 전제 정치에서도 이랬을 것이다. 권력이 있는 자들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손해는 결백한 아랫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유의미한 그리스 신화의 일화들도 한 번 보자.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을 다 죽였을 때, 딸들 중 휘페름네스트라만 아이귑토스의 아들 륑케우스을 살려준다. 그 이유는 륑케우스가 휘페름네스트라의 처녀성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처녀성이 여성의 성적 자원 중 하나라는 것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녀성이 의인화된 아르테미스 신이 탄생한 것도 괜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테스피오스는 자신의 딸들을 헤라클레스와 자게 만들었다. 헤라클레스는 키가 컸고, 눈이 총명했으며 활과 창 던지기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당연히 힘도 말도 안 되게 셌다. 그는 ‘섹시한 남자’였다. 테스피오스의 딸들은 헤라클레스와 50일 동안이나 한 명 한 명 동침했다. 『비블리오테케』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씨를 받아 잉태하기를 열망했다고 나와있다. 이것은 힘과 신장이 남성의 성적 자원 중 하나라는 것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로 인한 트로이아 1차 함락 때 지위에 관한 좋은 일화도 있다. 이때 트로이아 원정대 중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은 헤라클레스였다. 그런데 텔라몬은 헤라클레스보다 앞장서서 가장 먼저 시내로 들어간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텔라몬이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갖게 될까봐, 텔라몬에게 칼을 들고 덤빈다. 모든 지위가 싸움으로 결정이 난다면 지위는 없다. 왜냐하면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위는 서로의 전투 실력을 싸움 전에 알아보고,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게 만드는 심리 기제이다. 텔라몬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헤라클레스를 보자, 돌을 쌓으며 이것은 영광스러운 승리자 헤라클레스를 위한 제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아부를 한다. 텔라몬은 헤라클레스와 직접 싸워보지 않고도 헤라클레스의 전투 실력이 더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부를 하며 자신은 싸울 의사가 없고, 더 높은 지위는 헤라클레스의 몫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싸움은 이길 자와 질 자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고도 싸움의 결과를 예측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것이 지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지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 일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수컷의 높은 지위는 성적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의 증가로 이어진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성적 자원의 접근성에 대한 이득이 없었다면, 인간에게 자유나 통제력, 높은 지위에 대한 욕구는 없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가 동침한 여자들과 낳은 자녀들에 대한 기록만 2페이지가 넘는다. 역사에서도 많은 권력을 가진 남성 왕들은 항상 더 많은 여인과 동침하고 많은 자녀를 낳았다. 그렇게 낳은 많은 자녀들이 권력 때문에 다투어 쇠락의 길을 걷는 것도 역사에서 항상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법 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도 있다. 현대 법 체계에 대한 근거는 근대에 확립되었다고 해도,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법 체계가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것이 많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남편을 죽인 죄로 저승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았다. 이들은 저승에 가서야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죗값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저승에 가서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죗값을 이승에서 치르지 못한다면 저승에 가서 평생 치러야 한다. 이런 두려움은 이승에서 처벌을 받도록 촉구하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음악 교사 리노스를 악기로 때려죽였을 때 먼저 맞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정당방위로 처벌되지 않았다. 이는 이 시대에 이미 죄질을 판단할 때 의도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은 감형의 사유가 되었다.

벨레로폰테스는 본의 아니게 형을 죽이자 죄를 정화받으러 프로이토스를 찾아간다. 살인자를 방치하는 것은 공동체에 역병과 기근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살인자는 추방되었고 외국에서 신들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고, 혹은 노역을 해서 자신의 죄를 정화해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첫 번째 결혼 이후 미쳐서 자신의 가족들을 불 속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그는 테스피오스에게 죄를 정화받은 뒤, 에우뤼스테우스 밑에서 12년 동안 12가지의 고역을 완수한다. 이후에도 미쳐서 이피토스를 죽이자, 그는 다시 3년간 옴팔레 밑에서 노예로 살게 된다. 죗값을 치르기 위해 누군가의 밑에서 노예로 강제노역을 하게 된 것이다. 벨레로폰테스와 헤라클레스 사례는 ‘이에는 이’ 식의 법에서 벗어나 참회의 기회를 주는 법 체계로 이미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웅들은 어떻게 영웅이 된 것일까? 그들은 인간이나 사회를 위협하는 괴물, 혹은 인간을 해치운다.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든, 아니면 무서운 자연재해를 상징하는 것이든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면 영웅이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고르고 메두사를 해치운다. 이 책에서는 메두사가 했던 나쁜 행적에 관해서는 쓰여있지 않지만, 메두사가 있는 지역을 지나가거나 그녀를 해치우러 간 전사들을 모두 돌로 변하게 했다. 그런 괴물을 해치운 사람은 영웅이 된다. 페르세우스는 캇시에페이아를 잡아 먹으러 온 바다 괴물도 죽인다. 괴물이 진짜 짐승이었는지, 자연 재해에 대한 상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쪽 다 둘 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나 현상을 해결하면 영웅이 된다.

헤라클레스의 행적을 보자. 그자 에우뤼스테우스 밑에서 12가지 과업을 수행했을 때 그가 처치한 인간을 해치는 괴물들은 네메아의 사자, 레르나의 휘드라, 에뤼만토스의 멧돼지, 스튐팔로스의 새 떼, 크레테의 황소, 디오메데스의 인육을 먹는 암말들 등이 있다. 여기에다가 레슬링을 하자고 강요하며 이방인들을 죽이는 안타이오스도 해치웠다. 이방인들을 제물로 마구 바치던 무시리스도 해치웠다. 그가 또 미쳐서 살인죄를 저질렀을 때, 그는 옴팔레 밑에서 다시 3년간 노예로 종살이를 하게 된다. 이때 케르코페스라는 노상 강도 형제를 잡고, 나그네에게 포도밭을 파도록 강제 노역을 시키던 쉴레우스를 죽인다. 이런 괴물이나 인간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페르세우스나 헤라클레스나 그런 존재를 무찌르고 영웅이 되었다. 그런 영웅은 사람들에게 추앙 받고, 그렇기 때문에 영웅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꾸준히 나오는 교훈은 자만은 중대한 죄라는 것이다. 캇시에페이아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만심에 빠져 바다 괴물의 먹이가 될 뻔 했다. 고르고 메두사가 괴물이 된 이유도 아름다움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여신 아테네와 아름다움을 겨루려 했기 때문이다.

운명을 피하려고 해도, 피하려는 시도가 운명이 진행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는 이야기 구조도 2권에서도 역시 보인다. 아크리시오스는 다나에의 아들(페르세우스)에게 죽는다는 신탁을 듣고 페르세우스가 자신에게 온다는 소식을 듣자 도망친다. 그런데 도망치러 가다가 페르세우스가 참가한 운동 경기를 구경하러 가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관객으로 있다가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는다. 운명을 피하려 한 시도가 운명을 실현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신이 부여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을 대변한다. 이는 인간이 신을 섬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신을 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 다른 권에 대한 이야기


제3권

『비블리오테케』의 3권은 크레테와 테바이 신화, 테바이 전쟁, 아르카디아 지방 신화, 라코니케 지방과 트로이아 지방 신화, 하신 아소포스의 자손들, 아테나이의 왕들 1이라는 6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크레테와 테바이 신화에는 제우스가 황소로 변해 에우로페를 납치해 크레테 섬으로 간 이야기, 미노스와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예언자 폴뤼이도스 이야기, 카드모스가 아레스의 용을 죽이고 테바이를 건국한 이야기, 디오뉘소스의 탄생 이야기, 악타이온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죽는 이야기, 디오뉘소스의 모험 이야기,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가 뱀이 된 뒤 지상 낙원으로 가서 산 이야기, 니오베의 교만으로 자식들이 죽는 이야기,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 비극 이야기, 영웅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물리친 이야기 등이 있다.

테바이 전쟁에는 폴뤼네이케스와 아드라스토스를 비롯한 일곱 장수가 테바이로 진격한 이야기, 남자와 여자로 모두 살았던 테이레시아스 이야기, 2차 테바이 원정 이야기, 알크마이온이 모친 살해죄를 정화받다가 죽는 이야기 등이 있다.

아르카디아 지방의 신화에는 뤼카온의 아들들이 한 인신 공양으로 인해 데우칼리온의 대홍수가 일어난 이야기, 칼리스토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아르테미스에게 죽은 이야기, 여자 사냥꾼 아탈란테 이야기, 멜라니온이 아탈란테에게 달리기 시합으로 구혼하며 황금사과를 던진 이야기 등이 있다.

라코니케 지방과 트로이아 지방의 신화에는 플레이아데스들의 탄생 이야기, 헤르메스의 탄생 이야기, 라케다이몬의 자녀들 이야기, 의사 아스클레피오스 이야기, 페넬로페(오뒷세우스 아내) 탄생 이야기, 헬레네와 오빠들 탄생 이야기, 미녀 헬레네의 구혼자들 이야기, 트로스가 트로이아(일리온)를 건국한 이야기,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와 자녀들 이야기 등이 있다.

하신 아소포스의 자손들에는 아이아코스 이야기, 펠레우스가 추방된 이후부터 테티스와 아킬레우스를 낳을 때까지의 이야기 등이 있다.

아테나이의 왕들 1에는 아테나이의 건국 이야기, 나무로 변한 스뮈르나에서 아도니스가 태어난 이야기, 아테나이의 초기 세 왕들의 이야기, 프로크네와 필로멜레가 테레우스에게 복수한 이야기, 클레오파트라 이야기, 에렉테우스가 딸들을 죽이고 아테나이를 공격한 이야기, 테세우스의 탄생 이야기, 아테나이가 미노스에게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를 바치게 된 이야기, 영웅 테세우스가 괴한들을 해치우는 이야기 등이 있다.

내 생각

미노스는 왕이 되려고 했으나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신들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신권을 받은 사람은 왕이 될 수 있었다. 신의 명령에는 인간이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흰 암소를 포세이돈에게 받아, 혹은 받았다고 주장하여 왕이 될 수 있었다. 신은 인간이 권력을 잡기 위해 사용된 수단이다.

그러나 신을 의심하는 일은 이때에도 있었던 것 같다. 알타이메네스의 누이 아페모쉬네는 헤르메스에게 겁탈당한다. 그녀는 도망쳤지만 헤르메스가 깔아놓은 동물 가죽에 의해 미끄러져 겁탈당했다는 것이다. 아페모쉬네는 알타이메네스에게 자신이 헤르메스에게 겁탈당했다고 설명했지만, 알타이메네스는 믿지 않았다. 그는 신은 핑계라고 이야기하며 자기 누나인 아페모쉬네를 발로 차 죽였다.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는 그리스인들은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신의 행동, 신의 뜻이라고 포장했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겁탈당한 일은 여자에게 있어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또한 순결이라는 자신의 성적 자원이 훼손된 것으로, 피임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짝짓기 시장에서 번식 가치가 낮아짐을 의미한다. 자신이 고아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하기 껄끄러운 진실이다.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행동이었다고 설명하기 좋았을 것이다. 신의 뜻은 거스를 수 없고 모욕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평판이 낮아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그렇다고 해서 알타이메네스는 누나를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누나를 죽인 원인 몇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누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을 하는 것이 괘씸해서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유는 그 괘씸함에 대한 보복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누나의 성적 자원이 훼손되었으므로 불결하다고 여겨지는 평판이 자신에게까지 올까 염려되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분노의 촉발제가 될 수 있지만 살인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너무 과하다. 셋째, 누나에게 아이가 생기면 자신이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누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겁탈당했으므로 남편이 없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부양하는데 필요한 자원의 조달이나 양육의 부담을 자신이 공동으로 지게 될 것이다. 누나의 아이는 자신과 유전적 근연도가 25% 밖에 안 된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거나 동성애자들의 경우 25%의 포괄 적합도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유전적 근연도 50%의 자식을 얼마든지 낳을 수 있는 알타이메네스에게는 손해로 느껴졌을 것이다. 조카에게 돌아가는 자원은 곧 자신의 번식 기회를 그만큼 상실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미성숙한 방어 기제가 살인까지 이어지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신화는 기원을 모르는 자연 현상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혹은 그런 것들을 상징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가자, 그녀의 아버지이자 강의 신인 아소포스는 제우스를 쫓아간다. 제우스는 그를 벼락으로 쳤다. 그래서 아소포스 강에서는 아직도 숯이 나온다고 한다. 강에서 숯이 나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가 만들어졌다.

아이기나가 낳은 아이아코스는 한 섬을 지배하게 된다. 제우스는 그 섬의 개미들을 사람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상징할까? 아이기나 섬의 사람들이 개미만큼이나 부지런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렇게 한 집단의 사람들이 특히 더 부지런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설명할 때에도 신화가 만들어졌다.

아테나이 땅의 북서쪽에는 트리아시온 평야가 있는데 주기적이었는지, 한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여기가 범람했었던 것 같다. 이것을 두고 아테나이 사람들은 포세이돈과 아테네가 아테나이 땅을 두고 영유권 다툼을 했는데, 올리브 나무를 심은 아테네에게 영유권이 돌아가자 화가 난 포세이돈이 트리아시온 평야를 범람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화는 이런 자연 재해의 원인을 설명하는 역할도 했다.

자만에 대한 경계심도 3권에서도 이어진다. 악타이온은 순결의 신인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봐서 사슴으로 변한다. 그래서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려 죽는다. 아르테미스가 순결의 신인만큼 그녀가 목욕하는 것을 봤다는 것은 한 인간의 신체를 보는 것 이상의 죄이긴 하다. 순결은 여성의 중요한 성적 자원이므로 과거에는 여자의 몸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그런 성적 자원이 훼손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저 우연히 목욕하는 것을 본 것만으로 죽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 여신도들』에서는 악타이온이 그런 벌을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사냥 실력이 아르테미스보다 좋다고 큰소리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악타이온이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우연히 봤을 때 아르테미스가 여러 이유로 분노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리스 신화는 지식보다 그 이상의 것을 숭상했던 것 같다. 지식만을 숭상한다면 자만은 당연한 것이 된다. 실력이 있는 자신감이 무엇이 죄가 된단 말인가? 그러나 죄와 같은 선악을 따지는 것은 지식이 하는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식보다 도덕을 그 이상으로 취급했다.

니오베는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을 낳고서 자신이 레토보다 더 자식 복이 많다고 자랑했다. 이것도 자만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폴론이 쏜 화살에 아들들을 잃고, 아르테미스가 쏜 화살에 딸들을 잃었다.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이다. 자신의 자만심으로 인해 자녀들이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더 볼 게 있다. 자식이 많은 것은 복이다. 또한, 레토가 비교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아 레토도 복이 많은 것처럼 여겨진다. 레토는 자식이 많지는 않아도 두 자식 모두 열두 신의 왕좌에 앉을 정도로 잘 컸다. 자식이 많은 것도 복이고, 자식들이 커서 잘 되는 것도 복으로 여겨진다.

아르카디아를 다스렸던 뤼카온은 50명의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이들은 가장 오만하고 불경했다고 한다. 이들의 오만 때문에 데우칼리온의 대홍수가 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제우스가 이들의 불경함에 대해 시험하는 일이 있다. 가장 불경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신공양이었다. 그들은 남자아이를 죽여 제우스에게 내놓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신공양에 대한 문화는 사라지고, 그것을 야만적인 문화로 여길만큼 의식이 성장했다. 이것은 도덕적인 영역이다. 자만은 인신공양과 같이 도덕적인 영역에서 함께 다뤄졌다.

디오뉘소스에 대한 이야기는 해석이 좀 어려웠다. 디오뉘소스는 포도나무 심는 방법을 알려주는 신이며, 술과 향락의 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에는 박코스(디오뉘소스)의 여신도들과 함께 향락적인 파티가 열렸다. 그런 디오뉘소스를 모욕한 뤼쿠르코스는 미쳐버린다. 뤼코르코스는 자신의 자식이 포도나무인줄 알고 도끼로 쳐서 죽인다. 그리고 자신도 사람들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는다. 펜테우스도 이 광란의 파티를 방해하려고 갔다가 이미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는다. 랍다코스도 박코스 여신도들의 파티를 못마땅해 해서 죽는다. 아르고스에서도 디오뉘소스를 신으로 믿지 않은 여인들은 미쳐서 자신의 자녀들을 먹는다.

향락은 분명 인생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향락을 등한시하고 디오뉘소스를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미쳐버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어쩌면 향락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현명한 여인숙 여주인 씨두리의 말처럼 말이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그리스 신화는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헬레니즘의 뿌리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는 인간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모습을 본딴 신들은 불완전하고, 실수를 하거나 감정적으로 되기도 하며, 그래서 인간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른 신화보다 특히 음악이 중요시되고, 술과 향락도 중요시된다. 인간의 속성 안에 이런 것들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대중들은 향락을 즐겨야 한다. 그런 인간의 속성을 무시하고 향락을 금기하는 지도자는 축출되고, 사지가 찢겨진다. 대중들은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향락을 즐긴다. 혹은 대중에게는 향락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 무얼 하고 싶냐고 하면 사람들과, 혹은 혼자서 놀고 싶다고 하기 때문이다. 유한계급에 대한 선망은 거의 대부분이 향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하는 데에 있다. 이것을 인생의 최종 목적으로 두는 것이 좋은지는 더 논의를 해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이런 향락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성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이것이 디오뉘소스 이야기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라 생각한다.

3권에서도 역시나 영웅의 조건에 대한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고 못 맞히면 테바이인들 중 한 명을 잡아먹던 괴물이었다. 그래서 많은 테바이인들이 스핑크스에 의해 죽는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물리쳤다.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를 물리치는 것은 영웅의 조건 중 특히 중요한 조건이다.

영웅 신화에서 다른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신비한 탄생과 비범한 능력이다. 헤르메스의 탄생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신의 아들이다. 또한, 헤르메스는 태어난 바로 당일 아폴론의 소 50마리를 증거 없이 훔쳐간다. 뤼라와 목동의 피리도 아름답게 연주한다. 헤르메스는 영웅이 아니라 신이지만, 어쨌든 모든 영웅이나 신들의 설화에는 신비한 탄생과 비범한 능력 이야기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3권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다. 테바이의 왕이었던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나중에 뱀이 되어 엘뤼시온 들판으로 보내졌다. 엘뤼시온 들판은 히브리 신화의 에덴 동산이자,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우트나피쉬팀이 살던 딜문 낙원이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가 뱀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축복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든 무슨 상관인가?

그리스인들의 운명에 대한 관점은 3권에서도 나온다. 모든 권에 걸쳐 나오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인들이 신탁을 거스를 수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트레우스는 자식 중 한 명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카트레우스의 아들 알타이메네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까 두려워 도망치게 된다. 나중에 카트레우스가 알타이메네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러 왔을 때 알타이메네스는 아버지를 해적으로 오해해 창을 던져 죽인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라이오스는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신탁으로 경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술에 취해 아내를 임신시키는데, 결국 아이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아이를 목자에게 주어 내다버린다. 운명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오이디푸스는 커서 고향에 돌아가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는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양부모를 떠난다. 결국 길목에서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만나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테바이로 가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친어머니를 어머니인줄 모르고 아내로 맞이한다. 이것이 유명한 오이디푸스 비극이다. 여기서도 친아버지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는 각각 신탁의 운명을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만 그 행동이 운명이 이뤄지는 과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의 이런 운명론은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이야기에서 특히 부각된다. 『비블리오테케』를 읽어보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이다. 크로노스부터 페르세우스, 카트레우스, 오이디푸스 이야기 등 모두 비슷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형식이 아닌 운명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테바이 1차 원정 때 신탁에서는 아드라스토스 외에 나머지 장수들은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암피아라오스는 원정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정권이 있었던 그녀의 아내 에리퓔레는 목걸이를 받고 남편 암피아라오스를 전쟁에 참가시킨다. 사실상 목걸이를 받고 남편의 목숨을 바친 셈이다. 남편은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를 죽여 복수를 해달라고 한다. 아들 중 알크마이온은 테바이 2차 전쟁에 참가한다. 그런데 이때도 엄마였던 에리퓔레가 하르모니아의 긴 옷을 받고 알크마이온을 전쟁에 참가시킨 것이다. 알크마이온은 테바이 전쟁에서 이긴 뒤 어머니를 죽인다. 신탁이 자녀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형식은 아니지만, 그 신탁으로 인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게 된 꼴이다. 재물에 눈이 멀어 남편과 아들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어머니가 응징받는 것이 좋은 교훈이긴 하나, 아들이 어머니를 죽일 필요까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런 운명론적인 이야기가 등장할 때면 꼭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아마 그리스인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신의 예언으로부터 벗어나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 여긴 것은 법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알크마이온이 어머니를 죽인 뒤 그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며 미치게 된다. 복수의 여신은 특히나 가족이나 친족을 살해한 자를 끝까지 뒤쫓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살인 중에서도 특히 친족 살인의 죄가 더욱 무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친족 살인의 죄가 더 무거울까? 원시 사회에서는 의견 불일치가 일어났을 때 살인도 갈등의 주요 해결 방법이었을 것이다. 즉, 타인에 대한 살인은 현대보다 과거에 훨씬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적 근연도가 있는 친족에 대한 살인은 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족 살인은 사회의 근간인 가정의 형성과 유지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일이다. 법이 사회 유지를 위해 있는 것이라면 친족 살인죄는 더욱 엄하게 다스려졌을 것이다.

혼연족에 대한 살인, 즉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살인죄도 마찬가지로 무겁게 다뤄졌던 것 같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는 결혼한 사이였는데, 함께 사냥을 나갔다. 케팔로스는 창을 던져 실수로 프로크리스를 죽이게 된다. 그래서 케팔로스는 종신 추방형을 선고받는다. 고의가 아니었는데도 종신 추방형까지 당한 것을 보면 혼연족에 대한 살인죄를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주요 일화도 함께 보자. 알크마이온은 모친살해죄를 정화받고 나서, 칼리르로에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데 칼리르로에는 목걸이와 긴 옷을 갖고 싶어했다. 여성은 번식이나 양육에서 많은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서 헌신의 증표를 받지 못하면 짝짓기를 거절할 수 있다. 단기적 짝짓기의 상대로부터는 당장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헌신의 증표를 주로 원한다. 만약 단기적 짝짓기 상대가 불륜 관계라면 유전적 우월함, 즉 지능이나 신체적 우수성을 원할 수 있다. 장기적 짝짓기의 상대로부터는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헌신할 것이라는 노력의 증표나 유전적 우월성을 주로 원한다. 또는 성실함이나 야망을 보기도 하는데 이는 상대가 장기적으로 얻을 자원의 양에 대한 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적 전략이나 장기적 전략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임의적인 구분일 수도 있다. 여자에게 제일 좋은 건 단기적, 장기적 짝짓기 모두에 적합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펠레우스가 테티스와 결혼하려 할 때를 보자. 테티스가 불로 변하고, 물로 변하고, 때로는 짐승으로 변해도 펠레우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테티스가 요정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라면, 불로 변한 것은 자신을 그만 좋아하라고 화를 내는 것이고, 물로 변한 것은 물처럼 도망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거절에도 꾸준하게 테티스에게 구애를 한 것은 평생 테티스만을 사랑할 것이라는 헌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신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여자에게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정신적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아스튀다메이아는 펠레우스를 유혹했다가 실패하자, 펠레우스의 아내 폴뤼도라(테티스 이전)에게 펠레우스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펠레우스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목을 매고 자살한다. 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정조, 순결에 대해 다룰 때에는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리스토는 아르테미스에게 처녀로 남겠다고 서약했다. 그런데 제우스는 변신한 뒤 그녀를 겁탈했다. 아르테미스는 칼리스토가 처녀의 맹세를 져버린 것에 분노해서 그녀를 암곰으로 변하게 만들고 활로 쏴 죽였다고 한다. 칼리스토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제우스에게 겁탈당했다. 칼리스토의 잘못인가? 제우스에게 죄를 물을 수 없으니 칼리스토에게 헤라의 질투나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왜 남성중심적일까? 순결을 잃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큰 손해이다. 왜냐하면 남성이 여성의 순결함을 큰 성적 자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결을 잃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가? 손해는 여성이 본 것인데도 말이다. 순결을 잃는 것은 남성 입장에서 해악이다. 왜냐하면 부성 불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고찰할 때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를 제거하고 보는 것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여성이 짝짓기 시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면 순결을 잃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순결의 상실은 남자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손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결을 잃는 것을 죄로써 다스리는 것은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생각이다.

다른 예를 보자. 아우게는 아테네 신전의 여사제였다. 그런데 지나가던 헤라클레스에게 겁탈당한다. 아우게는 아이를 낳아 아테네 신전에 아이를 숨겨두었다. 나라에 가뭄이 들자, 신탁은 아테네 신전에 불경한 것이 있다고 한다. 겁탈당한 여자와 자식은 불경하게 여겨졌다! 여자나 자식이 사회나 다른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는가? 여자가 다른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남자의 부성 불확실성이 증가한 적도 없고,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오히려 겁탈당한 여자는 성적 자원을 자신의 의사에 반해 남성에게 빼앗겼으니 그것이 손해이다. 남성의 원조 없이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공공 선을 위해서라면 겁탈한 남성이 불경하게 여겨져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겁탈당한 여자와 그 자녀가 불경하게 여겨지는 것은 남성 관점 중심으로 사회 관습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남성중심적인 관점이 많이 녹아들어 있어서 잘 구분하며 봐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회 형성에 대한 통찰도 볼 수 있다. 모든 생물은 같은 종의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새 한 마리가 혼자 있을 때보다 새 열 마리가 함께 있을 때 생존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혼자 살아가기에는 자연 환경은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도우며 살도록 사회적인 뇌가 진화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케이론 혹은 아폴론에게 의술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치료하고,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사람들도 살려낸다. 그러자 제우스가 그를 벼락으로 죽인다! 제우스는 사람들이 그에게서 의술을 습득하여 서로를 구해주지 않을까봐 그를 죽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 신화는 지성보다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사람이 뛰어나게 되어 혼자 살 수 있게 되는 것보다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자기충만감(self-sufficiency, 자기효능감—self-efficacy과 다름)은 자신이 남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정도를 말하는데, 자기충만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행하다. 상관관계이므로 인과의 방향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는 것이긴 하다. 자기충만감이 높은 사람은 남을 돕기도, 남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싫어한다. 사람들이 함께할 때 더 생존 확률이 올라가고, 행복이 생존을 위해 있는 감정 기제라면, 사회 속에 있을 때 행복을 더 잘 느끼게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자기충만감이 높은 사람은 불행 속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것을 도덕으로 여겼던 듯 하다.

진화심리학에서 설명하는 (혈족이나 혼연족을 제외한) 사회 형성의 기본적인 원리는 상호호혜성이다. 즉, 무엇인가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것을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사람들 사이 관계가 형성되는 기본 원리이다. 사람은 어떤 때에는 생존에 불리하고, 어떤 때에는 생존에 유리했다. 생존에 유리해질 때에는 불리한 사람에게 자원을 빌려줄 수 있을 만큼 유리한 때도 있었다. 만약 내가 유리할 때 불리한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그것을 통해 내가 불리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것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을 수 있다면 생존 확률이 훨씬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 생존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받는 만큼 돌려준다. 이것이 상호호혜성의 기본 원리이자, 사회 형성의 기본 원리인 것이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 캇산드라는 어땠는가? 캇산드라는 아폴론에게 예언술을 배우고, 그 대가로 아폴론과 교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언술을 배우고 나서 캇산드라는 교합하기를 거절했다. 배신의 대가는 파괴이다. 그래서 아폴론은 캇산드라의 예언술에서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혼자만 미래를 아는 것은 저주이다. 상호호혜성을 파괴한 배신의 대가는 저주인 것이다.

▼ 다른 권에 대한 이야기


요약 (4권)

『비블리오테케』의 마지막 권인 요약 권은 아테나이의 왕들 2, 펠롭스의 자손들, 트로이아 전쟁, 영웅들의 귀향이라는 4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테나이의 왕들 2에는 테세우스가 나머지 괴한들을 죽이고,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운 이야기,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이 된 이야기,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 힙폴뤼토스가 억울하게 죽은 이야기, 테세우스가 친구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저승에 갔다가 갇힌 이야기 등이 있다.

펠롭스의 자손들에는 탄탈로스의 저주 이야기, 펠롭스가 힙포다메이아에게 구혼하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이야기, 펠롭스가 펠로폰네소스를 세운 이야기, 펠롭스의 아들들인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가 싸운 이야기,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이야기가 있다.

트로이아 전쟁에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해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난 이야기, 헬라스인들이 재집결한 이야기, 필록테테스가 물뱀에 물린 이야기,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 영웅 아킬레우스 이야기, 헥토르의 죽음 이야기, 아킬레우스의 죽음과 그의 무구를 두고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경쟁한 이야기, 필록테테스와 파리스가 죽는 이야기, 트로이아의 목마와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이야기 등이 있다.

영웅들의 귀향에는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 네옵톨레모스(아킬레우스의 아들)가 귀향한 이야기, 아가멤논이 죽고 그의 자녀들이 복수하는 이야기(펠롭스 가의 저주),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 이야기, 오뒷세우스의 귀향 이야기(오뒷세이아), 오뒷세우스의 죽음 이야기 등이 있다.

내 생각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에 필적하는 동시대 영웅이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과오로 인해 노예 생활을 하며 12가지 과업을 수행했다. 그러면서 여러 괴물들을 해치웠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아테나이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이나 인간들을 자발적으로 해치웠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스보다 더 위대한 영웅인 것 같다. 테세우스는 행인들을 쇠몽둥이로 때려죽이는 페리페테스를 해치우고, 소나무에 행인을 매달아 사지를 찢어죽이는 시니스를 죽이고, 괴물 암퇘지 파이아를 죽이고, 행인들에게 자기 발을 씻도록 강요하고 바다에 던져죽이는 스케이론을 해치우고, 행인들에게 레슬링을 하자고 하며 행인들을 죽이는 케르퀴온을 죽이고, 키 큰 자는 다리를 자르고 키 작은 자는 신체를 잡아당겨 죽이는 다마스테스를 죽였다. 테세우스는 이런 괴한들을 괴한들이 괴롭히는 방식으로 해치웠는데 이는 사람들이 보기에 정의롭다고 느낄 만하다.

그리스 신화에 자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고 해도, 그중 최고는 이카로스 이야기일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게 도와주자, 미노스는 화가 나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함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아교로 깃털을 붙여 날개를 만든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너무 태양에 가까워질만큼 높이 날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자만하여 높이 날다가 아교가 녹아 바다로 추락해 죽게 된다. 자만심과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그를 바다 깊은 곳으로 추락하게 만든 것이다.

요약 권에서는 유명한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탄탈로스, 펠롭스를 이어져 아가멤논의 자녀들까지 이어지는 저주이다. 그 시작인 탄탈로스의 저주에서 볼 것이 있다. 탄탈로스는 저승에서 벌을 받는다. 그런데 직접적인 고통이 전해지는 벌은 아니다. 탄탈로스 위로는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열려있고, 탄탈로스 얼굴 밑으로는 물이 있다. 그런데 그가 과일을 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과일들은 높이 솟아올라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린다. 그가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면 물은 잽싸게 말려버려 그가 마실 수 없게 된다. 직접적인 고통이 아니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벌이다.

갈망은 고통이자 저주이다. 행복이 삶의 목표 중 하나라면 갈망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감정이다. 긴 과정은 고통스럽고, 갈망이 채워질 때는 잠깐의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망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인가? 아니다. 갈망하지 않는 방법도 깨달아야 하지만 갈망하지 않기만 하면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없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정 자체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러나 소유에 있어서는 갈망의 과정이랄 게 없으므로 소유는 온전히 갈망에 의존한다. 소유는 따라서 잠깐의 쾌락이자, 오랜 과정의 고통과 저주이다. 어떤 일이든지 소유욕의 충족보다 과정에서 오는 행복을 느껴야 한다. 좋은 차를 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보다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사업이나 종사하는 분야에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얻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좋은 차를 샀을 때의 쾌락을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짧은 기쁨을 누리면 된다. 적어도 행복에 있어서는 그렇다.

요약 권은 주로 트로이아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며, 트로이아 전쟁 이후 영웅들이 귀향하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 참 파리스에 대해 답답한 부분이 많다. 나는 특히 파리스의 처음 결혼 상대였던 오이노네 이야기가 마음이 아프다(3장에 나오는 이야기). 파리스는 오이노네를 버리고 헬레네를 납치하기 위해 항해를 떠나지만, 오이노네는 파리스를 평생 기다린다. 그리고 파리스가 죽자 결국 따라죽는다. 파리스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상징한다면 우리 누구에게나 파리스의 일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파리스와 같은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은 황금 사과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파리스는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골라 황금 사과를 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헤라는 자신을 뽑으면 권력을 주겠다고 하고, 아테네는 명성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준다. 사랑이 권력과 명성을 이긴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해보자. 권력이나 명성 같은 지위는 인간의 주요 동기 중 하나이다. 권력은 강압적인 지배 체계를 말하고, 명성은 자발적인 복종으로부터 오는 지위 체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지위는 결국 성적 자원에 대한 접근, 곧 번식을 위한 것이다. 높은 지위는 번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잠재 번식 상한선이 훨씬 높은 남자가 그보다 낮은 여자보다 권력이나 명성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하다. 권력과 명성이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면 파리스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택한 것이 이해가 된다.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전쟁의 원인이 되었지만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는 이미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는데도 불구하고 파리스는 헬레네를 데려왔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심한 폭풍을 보내 그의 항해를 방해했다. 헤라는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하지 않은 파리스가 미웠을 것이고, 무엇보다 가정의 여신이었기 때문에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가정을 파괴한 파리스에게 벌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미 이룬 가정도 팽개치고 가장 아름다운 여색만 좇다가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만 주게 된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헬라스인(그리스인)들의 총지휘자인 아가멤논 또한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의 대상이다. 그는 역시 자만 때문에 저주를 불러오게 된다. 그는 자신의 활솜씨가 아르테미스를 뛰어넘는다고 자만하다가 딸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저주에 걸렸다.

트로이아 땅에 가장 먼저 상륙해서 죽은 프로테실라오스 이야기를 보자. 그는 헥토르에게 죽었다. 그의 아내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의 아내 라오다메이아는 죽은 프로테실라오스를 잊지 못하고, 그와 똑같은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헤르메스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저승에서 프로테실라오스를 데려오자 기뻐했다가 남편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자 자신도 자살했다. 남편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 죽은 사람은 뒤로 하고 산 사람은 나아가야 한다지만, 서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의 삶이 되면 삶의 모든 가치가 상대방의 존재 위에 세워진다. 그래서 상대방이 없어지면 삶은 모든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정말 위험한 삶이지만, 나도 그런 삶을 선택했으니 라오다메이아의 이야기를 보면 그녀가 이해되고, 마음이 참 아프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무구를 교환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이야기는 디오메데스와 글라우코스의 이야기이다. 전쟁 중에 적군이었떤 그들이 서로 마주치자 그들은 무구를 교환했다. 그들이 무구를 교환한 이유는 아버지들의 우정 때문이었다! 아버지들의 상호호혜성이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글라우코스는 특히 아버지의 덕을 많이 봤다. 글라우코스의 아버지가 예전에 오뒷세우스와 메넬라오스를 환대했기 때문에 트로이아가 함락될 때에도 오뒷세우스와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아 편이었던 글라우코스를 무려 달려가서 구해주었다. 상호호혜성은 대를 이어서도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진 은혜를 그 자녀에게 갚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의 생존이 아버지의 생존과 비슷한 정도로 은혜롭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이는 생존보다 혹은 생존만큼이나 번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는 아가멤논의 자녀들까지 이어진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어머니를 죽인다. 이것은 신탁에 의한 것이었는데도,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 가장 비극적인 일은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과, 친족 살인은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로 여겨졌다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일화이다.

오뒷세우스도 결국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바로 자식에 의해 죽는 것이다. 키르케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노고스는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그런데 이타케에 도착해서는 거기가 아버지의 섬인지도 모르고 약탈을 하고, 그것을 막으러 온 아버지 오뒷세우스를 가오리 뼈 창으로 죽인다. 수십 년동안 항해를 해도 일편단심으로 페넬로페를 사랑하던 오뒷세우스가 그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다니 마음이 아프고 자꾸 생각이 난다. 비극이 희극보다 오래가는 이유는 이렇게 자꾸 곱씹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책 자체에 대한 평

그리스 신화의 전체 내용이 거의 다 실려있다. 다만, 내용들 하나하나를 짤막하게 설명하다보니 다른 비극 문학처럼 어떤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다. 원전 번역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책이 양장본이었으면 더 좋았겠다하는 생각도 든다. 한 사건이나 몇 개의 사건을 다룬 비극 작품을 볼 때 참고하거나 그리스 신화의 전체 내용을 잡고 싶을 때 참고할만한 책이다.

인물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다보니, 가계도를 그리고 싶은 욕구도 생겼는데 그냥 읽었다. 나중에 그리스 신화의 문헌들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여 경전으로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아마 그때 자세히 공부하게 되면 가계도를 직접 그려보지 않을까 싶다. 혹은 비극 작품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참고하여 부분부분 가계도를 그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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