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을 즐기는 향유 동기에서 행복과 쾌락이라는 단어를 계속 혼재하여 쓰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절에서 정확히 짚고 가겠다.

먼저 행복은 측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짚어보고 가자. 주관적인 행복을 객관적인 지표로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다.

주관적 행복을 객관적 지표로 만드는 첫 번째 난관은 행복이 주관적 감정이라는 데에 있다. 어떤 사람의 감정 상태를 -10에서부터 10까지 배열하고, 음수는 부정적 정서, 양수는 긍정적 정서, 0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라고 해보자. 이 사람이 자기는 현재 행복하다면서 8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도 좋다면서 9라고 말했다면 두 번째 사람이 첫 번째 사람보다 확실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므로 확실히 한 순간의 긍정 정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가 불가능한 것 같다.

두 번째 난관은 -10부터 10까지 배열한 정서의 배열에 관한 타당성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지금 그저 그렇다며 현재 정서가 +2 정도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2시간 뒤에 다시 물어보니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현재 정서가 +4 정도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2시간 뒤의 +4의 긍정 정서는 +2의 긍정 정서보다 2배라고 할 수 있는가? -10부터 10까지 임의로 배열하면서 생긴 각 정서 지수마다의 차이 1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는데, 인간에게 정서 측정에 있어 인지 편향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절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정서에 관한 여러 가지 편향이 있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인간은 손실을 더욱 크게 받아들인다. 만약 100,000원을 잃는 상황과 100,000을 얻는 상황이 각각 있다고 해보자. 합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전자의 고통이 -5라면, 후자의 쾌락이 +5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인간은 전자의 고통을 훨씬 크게 평가해서 -7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즉, 배열된 정서들의 값에서 음수와 양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수치에 타당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세 번째 난관은 어떤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응답하는 피실험자의 응답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휴리스틱(어림짐작) 때문인데, 이것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절에서 살펴보겠다. 어쨌든 피실험자의 어떤 경험에 대한 정서의 상태에 대한 응답은 상당히 비일관적이다. 놀이공원에 가서 좋았다고 하면 처음에는 +5만큼 좋았다고 하다가 몇 시간 뒤에 물어보면 +3이나 +7만큼 좋았다고 하는 등 응답이 일관적이지 않다.

첫 번째 이유를 통해 한 순간의 긍정 정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나온다. 두 번째 이유와 세 번째 이유를 통해서는 한 사람에게서도 각기 다른 시간에 행복의 정도에 대해 응답하라고 했을 때 각 응답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고, 비일관적이라는 문제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행복의 측정 방법이 있다. 『몰입』으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경험표집법’이라는 심리측정방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심리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도입된 방법이다. 이 방법은 간단하다. 응답자에게 일정한 간격, 혹은 랜덤한 간격으로 현재 정서 상태에 대해 계속 묻는 것이다.

‘현재’의 정서 상태에 대해서만 측정해야 한다. 회상에 대한 정서 상태는 휴리스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번 측정한 정서 상태의 값을 그래프에 나열하고, 이것을 적분하면 ‘총 행복’이 된다.

이 ‘총 행복’은 객관적이고 타당하다. 현재 상태에 대한 정서 상태만 측정함으로써 세 번째 문제였던 한 경험에 대한 정서 상태 값의 응답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해결했다. 또한, 여러 번 측정하여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두 번째 문제였던 정서 상태 값의 문제였던 타당성을 희석시켰다. 객관적인 수치로 만듦으로써 다른 사람과 ‘총 행복’을 비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피실험자의 응답 뿐만 아니라 각 시간마다 자율신경계나 표정 등의 신체적 변화도 추적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측정이 정확해졌다. (대니얼 카너먼 외, 『행복의 과학』 참고)

행복의 측정 방법을 왜 알아야 할까? 그 이유는 총 행복의 정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는 ‘시간 개념’이 도입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다. 갖고 싶던 물건이 있다고 해보자. 해당 물건을 갖게 되면 행복감이 10을 찍는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그 10이라는 수치에 주목하고, 그래서 그 물건을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이내 줄어들어 9, 8, 5, 2 등으로 점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10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오래 가는 행복이 있고, 잠시 높아졌다가 빠르게 사그라드는 행복이 있다. 전자가 5의 값으로 10이라는 시간 동안 유지되었다면 총 행복은 50(행복도 5 × 시간 10)이다. 후자가 10의 값으로 2라는 시간 동안 유지되었다가 5로 떨어졌다가 곧 0으로 떨어진다면 총 행복은 25(행복도 10 × 시간 2 + 행복도 5 × 시간 1)이다. 행복의 정의에 따르면 전자의 행복이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럼 이 절의 맨 처음에 말했던 행복과 쾌락을 혼재해서 쓰던 이유에 대해 밝히도록 하겠다. 행복은 짧은 시간 지속되는 쾌락(향락)과 오랜 시간 지속되는 만족감(웰빙) 등이 있다. 두 가지 모두 긍정 정서이다. 즉, 둘 다 모두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의 차이점은 행복의 시간적 측면 뿐이다. 빠르게 높아졌다가 빠르게 사라진다면 쾌락이고, 서서히 낮아진다면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행복의 종류 안에 쾌락이 있는 것이다. 쾌락이 행복의 한 종류이므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

만약 쾌락이 한 사건을 통해 빠르게 높아졌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긍정 정서라면 쾌락이 중요할까? 긍정심리학에서는 그래서 쾌락이 외면되어 왔다. 쾌락보다는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분명히 쾌락에 대한 동기가 있다. 때때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 이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의 정의를 통해 쾌락 안에서도 올바르게 추구할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한 사건 뒤에 찾아오는 긍정 정서보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다. 이것은 ‘기쁘다’와 ‘즐겁다’라는 감정 단어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사건 뒤에 찾아오는 긍정 정서는 ‘기쁘다’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반대로 과정 자체에서 오는 긍정 정서는 ‘즐겁다’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쾌락주의 철학자였던 에피쿠로스도 비슷하게 쾌락을 정적 쾌락과 동적 쾌락으로 구분했다.

상대가 있는 스포츠에서 오는 쾌락은 기쁨이다. ‘이겨서 즐겁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겨서 기쁘다’라는 표현이 맞다. 반대로 스포츠 자체에서 오는 쾌락은 즐거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배드민턴을 치는 것은 즐겁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이것을 기쁘다고 표현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한 사건을 통해 오는 쾌락에서도 우리는 사건 뒤에 찾아오는 기쁨보다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미식을 해도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을 입에 넣는 경험보다는 곱씹어볼 수 있는 맛에 대한 경험이나 배가 차서 만족스러운 것을 즐겨야 한다. 이것은 맨 마지막 장인 향락을 바르게 추구하는 방법에서 자세히 정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