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성인, 노인으로까지 발달할 때 특정 시기에 특정한 욕구들이 생긴다. 삶의 시기마다 맞이하는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도 나이에 따라 다른 시기에 발현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본능이라는 것은 반드시 태어날 때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본능들은 삶의 특정 시기에 발현되고, 나이가 들면서 복합적으로 발달한다(Wellman, Cross & Watson, 2001; Pall & Bereczkei, 2007).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위험한 대상을 맞닥뜨리게 되는 그 시절에 발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Makrs, 1987).

예를 들어보자. 신생아에게 있는 본능 중에 ‘구토 반사(gag reflex)‘라는 것이 있다. 혀 뿌리 뒤쪽이 눌리면 혀와 주변 근육이 수축하며, 구토를 하려고 한다. 이런 반사는 삼키기 어려운 음식이나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질식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Stevenson & Allaire, 1991). 이런 본능은 태어날 때부터 생겨서 성인이 될 때까지 남아있다. 입을 열고 목젖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을 깊이 넣어보자. 구역질이 일어날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무언가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본능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겨날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아기가 영양을 섭취하는 것과 관련된 다른 반사 중에는 볼이나 입을 만지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뿌리 반사(rooting reflex)’, 입안에 젖꼭지를 넣어주면 빨기 시작하는 ‘빨기 반사(sucking reflex)’, 혀뿌리에 음식물이 도달하면 삼키는 ‘삼킴 반사(swallowing reflex)’ 등이 있다. 모두 모유를 먹는데 도움이 되는 반사들이다.

하지만 아기에게 거미를 두려워하는 본능은 약 생후 5개월부터 나타난다(Rakison & Derringer, 2007). 인간이 거미라는 동물을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기에게 거미라는 대상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리고 그 거미가 해로운 것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또한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은 약 생후 6개월부터 나타난다(Scarr & Salapatek, 1970). 아기들은 절벽처럼 보이는 곳을 본능적으로 피해간다(Bretenthal, Camposm & Caplovitz, 1983). 이때 즈음에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 기어다니기 시작한다. 엄마의 품을 떠나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 아기는 독이 있는 거미를 피하거나 절벽을 피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이렇게 발달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생기는 욕구를 탐구하고, 그 적합성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위에서 다룬 것처럼 신생아나 영유아기에 생기는 반사 같은 본능은 우리가 ‘양육’ 권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세히 알지 않아도, 우리는 신생아가 연인과의 사랑에 대한 적응적 문제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자란 뒤에 연인과의 사랑에 대한 적응적 문제를 맞이할 것이고, 더 자라면 자녀를 낳아 기르는 적응적 문제를 맞이할 것이다. 더 자라 중년과 노년기에 접어들면 손자를 대하는 적응적 문제를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삶의 특정 시기마다 다른 적응적 문제들을 맞닥뜨릴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략 일반적으로 그런 문제를 마주할 때에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 기제가 발현될 것이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직 느껴보지 못한 본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나는 연인과의 사랑이 필요 없어.’ ‘나는 커서 절대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야.’ 이것은 모르는 일이다. 자기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오지 않은 미래의 자신을 대신해 현재의 내가 속단해서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만약 미리 속단한 신념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런 고통의 책임은 오로지 자신의 몫, 특히 섣불리 결정을 내린 과거의 자신의 몫이다. 좋은 삶이 인간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인간성을 부정하려고 할 때에는 신중한 편이 좋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좋지 않다. 무조건 결혼을 할 것이라든가, 무조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태도 등 말이다. 그것보다는 그런 본능이 삶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때까지는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은 것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지’를 어기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고 속단하는 것 말이다.

참고로, ‘양육’ 권의 서술은 영유아기부터 사춘기 이후까지의 발달에 대한 내용을 모두 담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양육 문제에 직면한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과거와 현재의 인간은 모두 이런 발달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인간 발달 과정을 아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것은 특히 청소년기 이후 정체성 형성이라는 발달 과업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사춘기에는 반항심이 증가하는데 이는 부모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독립하여 자신만의 사랑을 하는, 그런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부모의 통제가 심할수록, 이런 억압에 대한 반항심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알면 사춘기에 생기는 반항심의 근원을 알 수 있고, 그런 마음을 자신이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사춘기에는 성인들과 생체 시계가 지연되어 나타난다. 어른들보다 좀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것은 깊은 수면에 도움이 되는 멜라토닌 분비 리듬이 지연되기 때문이다(Hagenauer et al., 2009; Troxel & Wolfson 2017). 이런 지연도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생리적인 기제, 즉 사회·진화적인 것이라는 수면 전문가의 해석이 있다(Walker, 2017). 청소년들은 수면 시간이 늦춰지는 생리적인 기제를 통해, 부모로부터 독립된 시간과, 같은 청소년기의 친구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물론 전자기기 중독으로 인한 수면 위상 지연 증후군 DSPS는 경계해야 한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본책 ‘생존’ 권과 ‘인지 자본’ 권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이렇듯 ‘양육’ 권은 양육 문제를 맞닥뜨린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마음의 기원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발달 심리학으로 돌아와보자. 과거에는 발달 심리학이 영유아기부터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만 다루었다. 이후에 성인기에서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드는 것은 발달이 아니라 퇴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유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발달 과정에만 집중했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노년기로 접어드는 과정도 발달로 간주된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의하면 젊음이 행복의 조건인 것 같지만, 노인들이 젊은 사람이나 중년의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더 높은 것은 많은 실험에 의해 증명되었다(Gerdham & Johannesson, 2001; Mroczek & Spiro, 2005; Deaton, 2008; Blanchflower & Oswald, 2008, 2017; Cheng et al., 2017; Graham & Pozuelo, 2017; Beja, 2018; Laaksonen, 2018; Butkovic et al., 2020). 모든 연구는 일관적으로 청년기나 중년기에 행복도가 가장 낮고, 그 이후로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온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조금 더 높지만, 대신 유쾌함을 느끼는 감정은 줄어든다(Diener & Suh, 1998). 즉,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느끼는 극단적인 즐거움은 줄어들지만 삶 전체에 나타나는 만족감은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에게 젊은이들에게는 없는 어떤 다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노화에는 쇠퇴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성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개인차가 있는 것이다. 어떤 노인은 비관적이고, 외부 요인의 탓을 하며, 병약하다. 어떤 노인은 낙관적이고, 책임지려고 하며, 활동적이고 건강하다. 발달 심리학은 이러한 개인차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발달 심리학은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주어진 과업들을 정리하고, 완벽한 삶을 정의했다.

특히 에릭 에릭슨(Erik Hoburger Erikson)은 발달 심리학자 중 가장 선구자였던 사람이다. 그는 인생의 특정 시기에 맞닥뜨리는 삶의 과업들을 8단계로 나누었다. 그는 인간이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이런 삶의 과업들을 순서대로 맞닥뜨린다고 주장했다(Erikson, 1958). 그의 설명에 따르면, 특정 시기의 발달 과업을 해결하는 것은 다음 발달 과업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덕목을 획득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특정 시기의 발달 과업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다음 발달 과업을 해결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의 이론을 살펴보고, 그의 이론에 따른 완벽한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에릭슨의 발달 단계 이론

에릭슨이 주장한 8단계 과업 중, 1단계 과업은 약 생후 18개월 이하의 유아기에 맞이한다. 이때 맞이하는 문제는 외부 세계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아기는 자신의 생존 여부를 전적으로 외부 요인, 특히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수유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배고프거나, 혹은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울어서 엄마를 부를 수밖에 없다.

만약 부모가 이런 부름에 응답하고, 아기가 배고파 할 때 수유를 한다면 아기는 외부 세계를 신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는 부모를 비롯한 타인과 외부 세계를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타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덕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거꾸로 부모가 이런 울음을 외면하고 아기를 유기한다면 아기는 세상을 불신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를 비롯한 타인과 외부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라는 신념을 형성할 수 있다. 이때에는 희망의 덕목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2단계 과업은 보통 생후 18개월부터 만 3세 이하의 영아기에 맞이한다. 이때 맞이하는 문제는 자신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아기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다. 1단계에서는 아기가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했다면, 2단계부터는 아기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음을 배우는 시기이다. 아기는 여러 가지 기술을 습득해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고, 자기가 원할 때 놀고, 스스로 옷을 입거나 배변을 할 수 있다.

이런 자율성을 습득하는 과정 중에는 특히 배변 훈련이 중요하다. 부모가 아기가 스스로 배변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인내를 갖고 알려준다면, 아기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율성에 대한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기는 성취감을 느끼고, 앞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자율적으로 하기 위해 끈기를 갖고 기술을 배우는 ‘의지’라는 덕목을 습득할 수 있다.

반면에 이 시기에 부모의 지나친 통제로 인해 자율성에 대한 믿음이 해쳐진다면 아기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부모가 이런 훈련들에 너무 서두른다면,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아기는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감이 저하된다.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 아기는 의지의 덕목을 그다지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1단계에서 희망의 덕목을 획득한 아기는 2단계의 의지의 덕목을 더욱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자신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부모에게 온전히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기는 수치심을 더욱 쉽게 느낄 수 있다.

3단계 과업은 보통 만 7세 이하의 유아기에 맞이한다. 이때 아이는 자신이 주도해서 주변 세계를 탐험하는 등 스스로 계획하고, 계획된 행동에 착수한다. 아이에게는 아이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수 있다.

부모와 교육자들이 아이의 이런 탐험심을 격려하고 지원한다면, 아이는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쉽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이때 아이는 ‘목적’이라는 덕목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덕목은 자신이 목적으로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착수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반대로 아이의 이런 호기심의 충족이 좌절된다면, 아이는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하려는 행동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된다. 이런 죄책감은 때때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주도해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죄책감을 통해 아이는 자제력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부모나 교육자가 아이의 이런 호기심을 성가신 것으로 여겨, 아이에게 지나친 죄책감을 심어준다면 아이의 창의력은 저해되고, 스스로 선택하려는 독립성을 잃게 된다.

2단계의 의지의 덕목을 획득한 아이는 3단계의 목적의 덕목을 더욱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주도권을 갖고 행동하는 데에는 자신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자신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지나친 수치심을 느끼는 아이는 주도권을 발휘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4단계 과업은 보통 만 12세 이하의 아동기에 맞이한다. 아이는 이때부터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세상에 가치를 줄 수 있는 유능한 존재인지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더 어려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문제 해결의 성공을 경험하기도 하고, 거꾸로 문제 해결의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성공을 통해 개인적인 유능함을 느끼고, 실패를 통해 열등감을 경험한다.

이때 아이에게는 유능하게 되기 위한 근면성과 책임감이 요구 된다. 부모와 교육자가 이런 근면성을 격려한다면, 아이는 자신감을 획득하고, ‘유능함’이라는 덕목을 획득할 수 있다. 유능함은 세상에 자신이 가치있는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특히 부모와 교육자들은 주의해야 하는데, 문제 해결의 성과보다는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근면을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근면성과 끈기를 포함한 그릿(GRIT)이라는 덕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Duckworth, 2016). 아이가 근면함을 통해 유능해지는 경험을 했다면 앞으로도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근면하게 되려고 할 것이다.

거꾸로 아이들이 근면함을 획득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특출나다는 믿음도 획득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때에 특히 타인과 많이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이는 향후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3단계 과업의 목적의 덕목에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획을 짜고 그대로 수행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근면함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근면함은 유능함의 덕목을 획득하게 한다. 그러므로 아이가 3단계 과업에서 목적의 덕목을 획득했다면, 4단계의 유능함의 덕목을 더욱 쉽게 획득할 수 있다. 거꾸로 아이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근면함을 획득하는 것도 전자의 경우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5단계 과업은 정체성 위기로, 보통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기에 맞이한다. 청소년들은 이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정체성이란, 자신은 누구이며,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선호하는지, 자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이런 정체성은 보통 사회 관계 안에서 확립된다.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세상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가 정체성을 크게 형성한다.

만약 이 시기의 청소년들이 탐구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한다면, 독립적인 성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미래에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확신도 갖는다. 또한 이런 정체성에는 성 정체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특히 청소년기 후반에 형성된다. 청소년들은 사회에 공헌하는 경험과, 기원에 대한 탐구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정체성 위기를 극복해낸 청소년들은 ‘충실함’이라는 미덕을 갖게 된다. 충실함은 자기 신념과 모순되는 외부 요소의 억압이 있더라도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을 관철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성이나 어떤 신념이 너무 강요된다면, 청소년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혹은 청소년 개인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경험이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사유가 모두 부족해서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청소년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미래에 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확신도 없게 된다.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자발적인 탐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청소년은 커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이때부터는 이전의 단계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이때에도 여전히 부모와 교육자, 사회의 지원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정체성 위기 단계에서는 청소년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즉, 이때의 과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는 가장 위태로운 시기이자,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있는 이 과업을 해결했는지, 못했는지는 향후 바람직한 성인기를 보낼 수 있는지 강한 지표가 된다. 이전의 과업에서 획득하지 못한 덕목들은 이후의 경험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후의 덕목들을 획득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정체성 위기는 특히 4단계의 유용성이라는 덕목이 있는 경우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특출나는 것을 경험한다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도 명확하게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이 좀 더 쉬울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근면을 통해 유용성을 갖춰본 경험이 부족하다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모르고 방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6단계 과업은 보통 만 40세 이전의 청년기에 맞이하는 친밀감 과업이다. 이 단계에서는 타인과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주요 문제이다. 특히 연인과의 사랑이나 동료와의 우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만약 이 단계에서 깊은 단계의 친밀감을 형성한다면 ‘사랑’의 덕목을 갖게 된다. 연인이나 친구와 깊은 친밀함을 달성하면, 그런 타인에게 의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타인에게 헌신할 수도 있다. 자아의 경계를 확장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고,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길 수 있다.

거꾸로 사회에서 배척되는 경험이 많아진다면, 고립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전의 정체성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경우, 더욱 고립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강화하는데,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해 확고한 신념이 없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의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지속되면 우울감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7단계 과업은 보통 만 65세 이전의 중년기에 맞이하는 생산성 과업이다. 보통 생산은 세상에서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의 생산성은 특히 다음 세대를 이끄는 것을 뜻한다.

이 세대는 직무에서 청년기보다 전문성을 갖추었으므로 더욱 생산적이다. 동시에 아직 미숙한 젊은 청년들을 직무에서 적합성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 직무나 다른 영역에서 교육을 통해 자신의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더욱 장기적인 생산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세대는 후배나 제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양육을 통해 이런 생산성을 이끌어낸다.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거나, 혹은 조카와 같은 다음 항렬을 양육하며 그들이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따듯함으로 대하기도 하며, 역할과 책임도 부여하면서 말이다. 이런 교육과 양육은 주요 관심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반, 심지어 자신 이후의 사회에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의 관심을 주변 사회로 성공적으로 확장하면 ‘돌봄’의 미덕을 획득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관심을 주변 세계로 넓히지 못한 경우, 자기중심적으로 된다. 이런 경우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게 되므로 사회와 단절되고, 자신의 비생산성 때문에 침체감에 빠지게 된다. 주변 사회와 단절되는 경우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며 점점 이기적으로 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다시 사회와의 단절을 불러일으키므로 이런 고리는 악순환된다.

이전 단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친밀감 덕목은 친구나 연인에게 돌리는 깊은 관심이다. 그런데 이런 덕목도 없이 더 넓은 대상에게 관심을 갖는 ‘돌봄’의 미덕을 획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건강한 노년에 접어든 경우 관심이 더 넓은 주변 세계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둘 사이에서도 친밀한 관계를 이뤄본 적이 없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가 더욱 쉬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8단계 과업은 만 65세 이후의 노년기에 맞이하는 통합의 과업이다. 이때에는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경험들에서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이 시기에는 어떤 의무가 없는 여가 시간이 많아지므로, 삶을 돌아볼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만약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경험들에서 의미를 찾고 그런 의미를 성공적으로 통합한다면 삶 전체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삶이 의미있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주변 사회로 확장했던 자신의 관심과 자신이 이끌었던 후배, 제자들, 자녀들을 통해 자기가 죽더라도 자신의 삶의 영향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의 경험은 아주 소중한데, 삶의 경험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노년 세대는 ‘지혜’의 덕목을 획득한다. 이 지혜를 미래 세대에게 전수하고, 자신이 일궈놓았던 업적들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고 떠날 준비를 한다.

반대로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그 경험들에서 통합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삶에 대한 후회가 남을 것이다. 이런 후회는 삶에 대한 미련으로 이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회한 속에서 비관적인 태도로 살면서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지혜의 덕목을 획득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좀 더 영속적인 지혜가 부족하게 된다.

여기까지 해서 에릭슨의 발달 단계 이론의 8단계를 모두 살펴보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삶이 완벽하게 좋은 삶일까? 영아기에는 엄마로부터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자신이 의지를 갖고 기술을 습득하면 자율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유아기에는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목적성을 가져야 한다. 아동기에는 근면함을 통해 어떤 분야에서 탁월해질 수 있다는 유용성이라는 덕목을 배워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세운 신념에 따라 살 수 있는 충실성을 획득해야 한다. 성인기에는 친구나 연인과 깊은 친밀함을 나누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 중년기에는 그 관심을 좀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함으로써 제자들이나 자녀들을 잘 이끌어줘야 한다. 노년기에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지혜와 업적들을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한다. ‘잘 살았다.‘라고 이야기하며 죽음에 의연하게 될 수 있어야 한다.

발달 단계 이론은 특정 시기에 접하는 특정 과업들을 정리했지만, 그 시기가 지났다고 해서 절대 그 덕목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지내는 일명 ‘캥거루족’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정체성 과업을 해결해야 하는 적절한 때는 지났지만, 이들도 어떤 계기를 통해 근면함을 갖고 스스로의 삶을 일궈나가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삶은 다시 나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에릭슨이 정의한 삶은 정말로 완벽한 좋은 삶처럼 보인다. 거꾸로 이런 과업들을 해결하지 못해 그다지 좋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중년이 끝나가는 데도 친밀감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여자가 젊음과 미에 집착하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런 친밀감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자녀 양육이나 다음 세대 교육에 힘쓰는 중년 여성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노년이 되었는 데에도 친밀감 과업이나 생산성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고, 정치나 사회에 대한 불만만 퍼뜨리는 늙은 남자를 상상해 볼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손주들과 제자들이 찾아와 지혜를 갈구하고,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늙은 남자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반면 이 이론을 비판적이고, 통합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첫째, 발달 이론이 좋은 삶과 관련하는 삶의 과업들을 모두 다루었는가? 우리는 발달 이론을 살펴보기에 앞서 욕구 이론을 살펴보며, 좋은 삶과 관련한 욕구들을 빠짐 없이 살펴보려고 시도했다. 그렇다면 발달 이론에서도 삶에서 맞이하는 모든 과업들을 빠짐 없이 다루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둘째, 좋은 삶과 관련하는 욕구들과 발달 이론의 과업들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발달 이론이 정의하는 완벽한 좋은 삶이 타당하다면, 그동안 우리가 욕구 이론에서 살펴본 좋은 삶과 관련하는 욕구들과도 상충되는 일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좋은 삶과 관련하는 욕구 중 사랑의 욕구가 친밀감 과업과 관련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욕구들과 발달 이론의 과업들 사이의 관계를 찾아낸다면, 욕구들 사이의 경로를 찾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욕구들은 하위 욕구를 뛰어넘어 상위 욕구의 추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발달 과업도 반드시 삶에서 직렬의 방향으로 배열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에릭슨의 발달 과업도 이전 덕목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 덕목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저 좀 더 어려워질 뿐이다. 다만 정체성 위기 과업을 해결했다고 해서 이후에 다시 정체성 위기 문제를 직면하지 않을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청소년기의 정체성 위기가 중년 이후 은퇴 시기에 다시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Logan, 1986). 상황이 변하면 과업들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 상황이 변해서 이미 해결했던 하위 욕구 충족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 있듯이 말이다.

셋째, 발달 과업들은 어떤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우리는 친밀감을 형성해야 하는 것일까? 에릭슨은 발달 과업만 제시했지, 그것이 해결하는 적응적 문제는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화심리학과 욕구 이론, 발달 이론을 통합함으로써 발달 과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적응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