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진화심리학에서는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본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행복해지는 것은 모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그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참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행복하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행복하다. 이런 행복들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직 모든 행복의 비밀이 풀린 것은 아니다. 모든 행복을 생존과 번식으로 환원하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또한 지나친 환원주의는 사람들 간 행복의 근원의 차이를 무시할 수 있다. 만약 맛있는 음식이 생존에 도움이 되고, 음악도 번식에 도움이 나는 것으로 결론이 나도 이것을 생존과 번식 동기로만 환원해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동기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라면, 왜 그것만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보자. 원자 수준의 작은 입자가 상호 작용하는 데에는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과 같은 정말 무수히 많은 기체 분자의 이동을 설명할 때에는 열역학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열역학이 양자역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위에 토대를 자리잡고 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를 아이에게 설명할 때에는 엔진의 열역학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 고전역학이면 충분하다. 앞의 각 현상은 결국 전자기력이라는 하나의 힘으로 환원해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은 비효율적이다. 특정 현상을 해석하기 용이한 역학 분야가 있다. 이렇듯 인간의 행동과 동기를 생존과 번식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해도, 이는 비효율적이다.

모든 동기를 생존과 번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다른 이유도 있다. 진화의 속도는 현대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행동이더라도 현대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향락 동기를 추구할 때에도 이를 유념해야 한다.

좋다. 그러면 인간의 동기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지는 동기 수준에서 한 번 살펴보면 된다. 그러고나서 인간의 행동은 상정한 동기로 설명하면 될 것이다.

이제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닌 생존과 번식이라는 동기를 잘 충족하고 있는지 지표일 뿐이라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행복한 이유는 생리적 욕구, 즉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맞잡으면 행복한 이유는 번식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기의 눈동자를 마주보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양육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관계 동기와 지위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궁금해하던 사실을 알아내거나, 어려운 문제를 끙끙 거리다가 풀어내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탐구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의 주도로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발전하면 생복해지는 이유는 지위 동기나 자기 완성 동기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즉, 행복은 삶에서 이뤄내야 하는 동기가 아니라 각 동기를 잘 충족하고 있는지 지표일 뿐이라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음식이 아닌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음악을 들으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다른 동기들로 설명하기 힘들다. 물론 맛있는 음식은 그것이 과거 조상들의 환경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라는 뜻이고, 음악이 감정 전달이나 사회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런 주장은 동기 수준에서 한 번 살펴보자.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인 동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음악이 적응이 아닌 부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음악은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지만, 도움이 되는 행동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배꼽 자체가 생존이나 번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탯줄은 태아에게 영양분을 전해줄 수 있는 소중한 통로이므로 생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배꼽은 탯줄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렇듯 음악도 부산물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이 부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음악을 듣고 싶은 동기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동기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다른 동기들(생존, 사랑, 양육, 관계, 지위, 탐구, 통합)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행복들이 있다. 인간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한다. 이러한 나머지 모든 욕구를 이제부터 향락과 심리 자본으로 구분할 것이다. 이제 이 절의 제목대로 향락을 정의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탁월성)와 헤도니아(쾌락)로 구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이성을 활용하여 사유하고 참된 행복에 이르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는 삶 전체의 행복을 높이는 낙관적이거나 용맹한 태도 등이 있다. 긍정심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이러한 행복에 대한 전략은 심리 자본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태도는 다른 동기를 채우거나 다른 자본을 얻는 데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므로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참고)

삶 전체가 아닌 개별 사건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은 향락으로 분류한다. 이것은 쾌락이라는 말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데, 쾌락은 일반적으로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 흥분을 통한 쾌락 등은 사랑 동기에서 설명할 수 있으므로 향락 동기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즉, 향락 동기란 다음과 같다. ① 생존, 번식, 양육, 탐구, 관계, 지위, 통합 등의 동기로 설명이 되지 않으며, ② 긍정적인 감정적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고, ③ 개별 사건 하나 또는 몇 가지 사건의 집합으로써 충족되는 동기를 말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맛 보고, 향기를 맡고, 느낄 필요가 있다. 그럴 ‘의무’가 있다. 그러나 ‘향락의 특성’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향락만을 최고로 두는 태도는 자칫 자기 파괴적으로 될 수 있다. 바로 ‘쾌락 적응’을 비롯한 여러 이유들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행복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과 향락, 심리 자본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향락을 추구할 때는 이런 쾌락 적응을 빗겨가고, 최고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른 동기나 자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향락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이 장의 맨 마지막에서 자세히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