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Dictator (Charles Chaplin, 1940, USA, 128m, BW)

The Great Dictator (Charles Chaplin, 1940, USA, 128m, BW)

스포일러 있음

서로 사랑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

영화 <재즈 싱어>가 나오기 전까지 영화계는 무성영화의 세계였다. 그러다 1927년, 유성영화가 처음 나왔고 이후 ‘토키’라 불리는 유성영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찰리 채플린은 그때까지 수많은 무성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영화 산업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바로 유성영화로 전환했을 법도 하지만, 한동안 계속해서 무성영화를 고집했다. 그러다가 1940년, 처음으로 유성영화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위대한 독재자>다.

유성영화가 나오고도 13년이나 그가 무성영화를 고집했던 이유는 잘 모른다. 그러니 내 멋대로 추측해보건대, <위대한 독재자>는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만 했던 절절한 이유가 담긴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간 채플린의 영화를 14편 보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찰리 채플린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직접 들었다.

1940년이면 이미 1차 세계 대전이 지나가고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다. 채플린은 분명 쉽지 않은 시기를 겪었을 것이다. 전쟁 아래 행해지는 폭력과 억압, 차별, 독재를 목도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채플린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유대인 이발사/힌켈 역의 채플린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연설하기를 거부하다가 ‘희망’이라는 말을 듣고서 그 말을 한 번 더 읊조린 후, 연단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을 뗀다. 이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남긴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증오가 불러온 불행, 죽음, 그리고 행복과 자유의 상실에 대해 말한다. 기계가 가져다준 신속함과 풍요가 우리를 욕심 속에 버려놓았다고 말한다.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한다. 언젠가는 증오가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인류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인류에 대한 사랑이 숨쉬고 있으니, 증오하지 말라고 한다. 화합을 외친다.

채플린은 분명 말했다. “언젠가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빼앗아간 힘 또한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인류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1940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2023년이다. 83년이 지난 지금은 증오가 지나갔는가? 독재자들은 사라졌는가? 전쟁은 없는가?

전쟁은, 독재는, 증오는 정말 사라질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약 기원전 423년에 쓰여진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을 보자. 테바이의 전령이 아테나이에 찾아와 이 나라의 독재자는 누구냐고 묻자, 테세우스는 이렇게 대답한다(테바이는 독재자의 통치 하에 있었기에, 전령은 아테나이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이 나라의 독재자가 누구인지 물은 것이다).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자를 찾고 있소. 여기에는 주인이 없소. 아테나이는 자유롭다네. 백성들이 통치하지.”
···
“우리 아테나이는 우리가 직접 법을 쓰고 그것에 의해 통치를 받는다네. 우리는 국가에게 있어 혼자 법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보다 더한 적(enemy)은 없다고 믿네. 우리가 직접 법을 쓰고 그것의 통치를 받는 것은 우리의 위대한 특권이며, 우리의 땅은 이성과 지혜로 강한 힘을 지닌 아들들로 인해 기뻐한다네. 하지만 독재자에게 이러한 것들은 혐오스러운 것이네. 독재자는 우리의 아들들이 그의 권력을 흔들까 두려워하며 그들을 죽인다네. 테바이로 돌아가 ‘우리는 인간에게 전쟁보다 평화가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게.”
—에우리피데스, 『탄원하는 여인들』

83년 전이 아니라 2446년 전에도 전쟁이 있었고, 독재자가 있었다.

지금도 당연히 전쟁이 있고, 독재가 있다. 여전히 탐욕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여전히 증오는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은 말한다. 절망하지 말라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항아리의 뚜껑을 들어올렸을 때 모든 것이 빠져나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단 하나만은 남아 있었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오직 희망만이 거기 부술 수 없는 집 안에’ 남아 있었다. 희망은 부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걸 다 잃어도 인간이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희망이다.

몇천 년이 지나고서도 변한 게 없더라도, 또 다시 몇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인간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 해도 채플린의 말처럼 ‘인류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테세우스처럼 ‘인간에게 전쟁보다 평화가 훨씬 더 좋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찮아 보일 정도로 작은 창백한 푸른 점 안에서 서로 미워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흔히들 말하지 않나.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너무 짧다고. 제인 구달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아라. 그녀의 표정에서 인류를 향한, 모든 생명을 향한, 세상을 향한 그녀의 사랑을 느껴보아라.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보다는 모두를 포용하는 사람이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나부터 바뀌어야겠다. 사람들을 돕고, 남을 미워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느끼고, 친절과 관용을 베풀고, 인류에 대한 사랑이 살아 숨쉬게 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겠다.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아주 많이 노력해야겠다.

26년 만에 목소리를 내준 채플린에게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