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 디엘, 『그리스 신화의 상징성』, 안용철 옮김, 현대미학사, 1997

뽈 디엘, 『그리스 신화의 상징성』, 안용철 옮김, 현대미학사, 1997

스포일러 있음

호메로스나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들을 비롯한 그리스 신화를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전에 신화에 대한 이해력을 좀 더 높이고자 이 책을 읽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에는 너무 어렵고 난해했다. 그러나 한 번 개념 정리를 해둔 뒤에는 신화를 정말 어떻게 이렇게 깊이 이해할 수 있는지 감탄만 나왔다. 신화가 심리학적 상징들의 범벅이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구스타프 융이다. 그는 신화에 원형이 집단 무의식을 통해 신화나 여러 이야기들에 상징으로 심어져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발전한 여러 문명의 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신화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온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그 속에 있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찾아야 한다. 신화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애니미즘적 신격화나 권력의 공고화를 통해 처음 생겼을 수 있다. 그러다가 신화에는 점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교훈이 담기다가 한 인간이 겪는 심리적 갈등 자체가 담겼다. 처음에 애니미즘으로 시작했던 상징들은 심리학적 고뇌를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쓰인 것이다. 신화는 점점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사상이 스며들었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애니미즘적 해석을 넘어서서 심리학적이고, 신화가 제시하고자 하는 초의식적 교훈을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의 묘미는 종종 히브리 신화와 그리스 신화를 비교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서구 문명의 거대한 두 축이다. 이 책은 헬레니즘의 시초인 그리스 신화와 헤브라이즘의 시초인 히브리 신화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성경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야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그리스 신화도 신화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야 신화가 전하고자 하는 참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그리스 신화를 프로이트와 융 심리학에 기반해서 썼으므로 몇 가지 개념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아주 곤란하다. 먼저, 무의식과 잠재의식, 의식, 초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무의식은 동물적 욕망이다. 먹고, 번식하고, 자는 것 등으로 표현되는 육체적 쾌락을 일컫는다.

잠재의식은 현실 속에서 억압된 세속적 욕망이다. 명예나 권력을 얻고 싶은 욕망이나 부자가 되고 싶은 세속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이런 잠재의식은 현실과 어느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얻을 수 없다.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재의식은 억압되어 있다.

의식은 지성이다. 그런데 이 지성은 바람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목적에 따라 지성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바람직한지가 결정된다. 즉, 의식은 영리함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지적 미덕」 12장에서 말했듯이 영리함은 설정한 목표에 이르는 능력이다. 고매한 실천적 지혜를 달성하는 사람도 영리하다고 하지만, 악랄한 사람도 영리하다고 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성만 있는 상태에서는 지성은 바람직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지상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세속적 욕망을 품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는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려우므로, 현실에서는 억압되어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지성이다. 예를 들면, 도둑질을 하는 방법을 찾는 것 등으로 지성이 작용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절대 들키지 않고 재산을 빼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지성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에는 성질이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원래는 동물적 욕망을 나타내는 무의식에는 ‘초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초의식은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는 도덕적 가치 판단을 한다. 언뜻 생각하면 도덕적 가치 판단은 의식에서 비롯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도둑질을 사람들에게 들킨 이후 있을 리스크에 대해 따져보다가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은 사람들에게 절대 안 들키고 도둑질을 할 방법을 찾는다. 초의식은 그런 것이 아니라, 고매하고 숭고한 마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갈 피해를 예상해 도둑질을 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다. 초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지만 육체적 욕망과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다뤄야 한다. 초의식은 다른 말로 영이라고 하며, 영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 발로 많이 상징된다(오이디푸스가 버려지면서 발의 힘줄이 잘린 것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인간 정신은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 초의식으로 이뤄져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은 현실에서 억압되어 있다. 지성은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여기까지가 잘못된 집착과 욕망인 ‘도착’이다. 이런 무의식과 잠재의식, 현실을 조화시키는 것이 초의식이다. 무의식과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욕망을 긍정적인 형태로 승화시켜 의식이 바른 길을 탐색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초의식인 것이다.

인간 중심의 사상인 헬레니즘과 신 중심의 사상인 헤브라이즘의 구분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는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과 현실에의 조화를 초의식을 통해 추구하였다.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절대로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부정하고 억압하려는 것은 죄로 여겨졌다. 왜냐면 이것은 신처럼 되려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망의 억압은 영의 타락으로 이어졌고, 영의 타락은 허영으로 여겨졌다. 이런 사상은 그리스 신화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나타난다. 하지만 히브리 신화에서는 인간 중의 인간인 ‘예수’가 인간의 욕망을 초월한다. 이는 신의 경지이자, 신 그 자체이다. 히브리 신화가 그리스 신화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적, 세속적인 모든 욕망을 초월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욕망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여기서 그리스 신화와 히브리 신화의 차이점이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욕망을 초월하는 것보단 그 내면을 다 드러낸 뒤, 욕망과 조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욕망을 초월하려는 과정에서 억압된 욕망은 다른 나쁜 정신병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에는 종교적으로 억압된 욕망들이 다른 부정적인 형태로 발산되고 있기도 하다. 내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는 인간적인 그리스 신화에 더 정감이 가는 것 같다.

어쨌든 크게 보면 그리스 신화는 초의식이 이끄는 바람직한 방향대로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 현실을 조화시키고, 욕망을 승화시켜 숭고한 의지에 도달하자는 것이 주요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를 알고 신화를 보면 각종 괴물들이나, 신의 무기 등이 상징하는 바가 분명해진다. 그리스 신화의 디테일들에서까지 상징과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비롯한 욕망을 과장되게 보아서도 안 되고, 억압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이 널리 퍼져있다.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올바르게 조화시켜야 신들의 만찬에 초대되고 영원히 살 수 있다.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해석을 시도하면 신화의 모든 디테일들이 맞아 떨어진다. 예를 들면, 어떤 영웅이 제우스의 아들인지, 포세이돈의 아들인지는 심리학적 해석을 도입하기 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낼 뿐이다. 하지만, 제우스는 영인 초의식을 상징하고, 포세이돈은 잠재의식을 비롯한 욕망을 상징한다면 그 신의 아들들이 겪게 될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다. 신화는 정확히 심리학을 반영한 영웅들의 최후를 그려낸다. 포세이돈의 영역인 바다는 깊은 심연으로 그려지고, 거기에는 온갖 바다 괴물들이 살고 있다. 포세이돈이 일으키는 폭풍은 격정적인 욕망을 의미한다. 영웅들은 바다 괴물과 싸우며, 폭풍을 이겨내면서 성장하게 된다.

심리학적 해석 없이 보면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나 영웅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고, 그저 횡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 해석을 곁들이면 신화는 한 인간의 처절한 심리적 고뇌를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심리적 고뇌에 대한 내용도 꼭 정리하고 이 책을 봐야 이해하기가 쉽다.

도착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정신이 타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착은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무기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리적 고뇌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신경증적 도착이고, 다른 하나는 진부화이다.

신경증적 도착은 육체적 쾌락이나 세속적 욕망의 유혹을 받아 영적 갈등을 겪는 것이다. 모든 영웅이 겪는 운명이다. 그래서 신경증적 도착은 죄책감의 형태로 나타난다. 만약 죄를 뉘우치지 않고 죄책감을 갖고만 있으면 영이 타락하게 된다. 허영은 영이 타락한 하나의 형태인데, 이는 자신이 고귀하다고 여기며 교만하게 되는 것이다. 허영은 신화에서 뱀이나 용의 형태로 많이 나온다.

진부화는 더 이상 초의식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려는 현상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초의식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이다. 진부화는 영의 죽음이다. 이 책에서는 진부화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관습적 진부화이다. 이는 정신적인 긴장의 부재로 나타난다. 그래서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냥 이끌리게 된다. 그래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진 않고 미다스 왕처럼 부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거나 프시케처럼 관능적이고 성적인 욕망에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소망이 유일한 것뿐인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관습적 진부화가 영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둘째는 디오니소스적 진부화이다. 이는 관습적 진부화와는 좀 다르다. 관습적 진부화가 정신적 긴장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디오니소스적 진부화는 삶의 강렬한 체험을 추구하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서 할 수 있는 강렬한 모든 체험을 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방탕한 욕망에 몸을 맡기게 된다. 디오니소스 신 자체가 탐욕과 무절제의 상징이다. 무한한 욕망의 탐닉 속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데, 이것이 디오니소스적 진부화가 영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마지막은 티탄적 진부화이다. 티탄적 진부화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의미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명성이나 지배력을 얻기 위해 권력에 집착한다. 이들은 초의식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의 뜻에 맞춰주기를 바란다. 특히 이들은 이런 욕망을 세상을 발전시키려는 의지이자 야심이라고 포장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권력을 얻게 되면 폭군, 독재자로 변모한다. 그래서 그들은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며 분별력을 잃게 된다. 이것이 티탄적 진부화가 영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진부화의 상징은 주로 진흙이다. 인간은 지성의 상징인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인간들이 진부화에 빠질 때마다 그들을 다시 끌어올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게 뭘까?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간은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고찰하고 초의식의 외침에 응답하게 되었다. 즉, 신화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보면 난해했던 이 책이 굉장히 쉬워진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각을 장착하고 신화를 읽으면 훨씬 깊이 있는 신화 감상을 할 수 있다. 신화가 그리는 신성함을 읽지 못하고 신화를 읽으면 그저 신들과 영웅들의 모험이나 횡포로 비춰진다.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싸움이 그저 제우스의 질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심리학적 해석의 안경을 쓰고 보면 비로소 신화에 신성함이 깃든다. 왜 프로메테우스가 악이고, 제우스가 선인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신화가 당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하려면 심리학적 해석이 필수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의 제목은 ‘내면심리와 신화의 상징’이다. 여기서는 신화의 주요 구조나 상징에 대해 설명한다.

2부의 제목은 ‘신화적 상징의 심리학적 해석’으로 본격적으로 신화를 해석한다. 1장의 제목은 ‘허황되게 들뜬 마음과의 싸움’이며 여기서 이카로스 신화나, 탄탈로스의 저주, 페르세우스 신화를 해석한다. 2장의 제목은 ‘최초의 갈등’이며 여기서 신들의 계보(신통기)의 창조 신화를 해석한다.

3부의 제목은 ‘진부화’이며, 1장에서는 ‘관습적 진부화’에 대해 설명하며 미다스 왕 이야기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를 해석한다. 2장의 제목은 ‘디오니소스적 진부화’이며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해석한다. 3장의 제목은 ‘티탄적 진부화’이며 오이디푸스 비극을 해석한다. 4장의 제목은 ‘진부화와의 투쟁’이며 여기서 영웅이나 신들의 모험을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아르고나우티카에 나오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이야기, 영웅 테세우스 이야기, 영웅 헤라클레스 이야기, 프로메테우스 신화 등의 해석이 있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리스 신화의 해석에 대한 책 중 이렇게 심도 깊은 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찾은 것이 나에게는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히브리 신화를 공부할 때도 이 사람의 책을 참고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