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특정한 알고리즘대로 살아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이미 정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긴 한 것인가? 인간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쏟아지는 과학의 증거들 속에서 우리는 발버둥쳤다. 밀려오는 허무에 짓눌렸다.

과학은 항상 ‘어떻게?’에 대한 해답을 주지만, ‘왜?’라는 해답은 주지 못한다. 자연에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어떤 이유 없이 그냥 생긴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찾아낸 의미대로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의미를 찾아 헤매다가 염세와 허무 속에서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런 의미를 좀 더 일찍 찾아 평생을 만족감 속에서 살며 옅은 미소를 남기고 죽을 수도 있다.

설령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고, 어떤 선택을 할지,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의미가 있는가? 시간은 폐쇄적이다. 나의 선택이 또 다른 우주를 낳는 평행 우주 가설은 틀렸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현재가 미래와 과거, 양방향으로 상호작용 가능하다면 상호작용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시간의 축을 따라 정해진 운명을 여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확정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확정된 미래가 있다.답을 찾고자 하는 자에게는 해답이, 찾지 않고자 하는 자에게는 허무가 확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론적인 패배주의는 아니다. 운명의 지배를 받지만, 그러한 운명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운명은 인과율이고, 인과의 원인은 나이다. 만약 원인의 시발점 또한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보자. 주인공 ‘네오’가 자신의 사랑과 매트릭스 속 인류 전체의 생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네오가 예언자 ‘오라클’에게 묻는다.

네오: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오라클: 아니, 너는 이미 선택을 했다. 이제 선택의 이유를 알아내야지. (Wachowski and Wachowski 2003, 0:48:54)

인간은 선택의 이유를 스스로 찾는 존재이다.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비이성적인 합리화라고 비난하더라도, 우리는 각자가 믿는 가치를 따라 살 수 있다. 인류가 자신과 우주의 기원을 찾으려 안간힘을 써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간힘을 써서 찾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내 삶의 의미는 세 가지였다.

내 삶의 첫 번째 의미는 통제력이었다. 나는 남이 설계한 각본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우리의 삶을 스스로 설계해 그대로 살고 싶었다.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들어가 느꼈던 진정한 자유를 문명 속에서도 느끼고 싶었다. 자녀들도 그들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그들이 설계한 대로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나와 자녀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적어도 자신들의 삶만큼은 온전히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했다. 또한, 통제력을 갖출 도구로써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갖고 대접 받기를 원했다.

두 번째는 이해와 사랑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배우자,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러한 열망은 정신 활동의 열망으로 이어졌다. 책과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도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행동 모두 깊게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증오는 사랑의 반대이다. 마음 한켠에서 증오가 일어난다면,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관찰하고 있으면 질서와 무질서의 완벽한 조화에 감탄하곤 한다. 자연의 개체들은 서로 닮았지만, 완전히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아름다움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었다.

세 번째는 인류의 구원이었다. 고통과 비통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었다. 내 눈이 허무와 고통에 가려져있을 때 우주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하고 사랑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인류를 종 전체 관점에서 바라보고, 절멸의 위기에서 항상 줄타기를 하던 인류가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런 열망들은 전부 사랑에서 출발했다. 내 삶의 모든 의미는 사랑하는 배우자로부터 출발했다. 삶의 모든 의미를 배우자로부터 찾은 것은 일종의 도박이다. 배우자의 죽음이 내 모든 삶의 의미를 앗아가게 될 것이라 해도 나는 그러한 도박을 하기로 했다. 나는 배우자에게 내 꿈을 바쳤고, 그는 받아 마땅했다. 본서는 그와 함께 집필했다. 삶의 의미를 찾아 고민하는 내 자녀들과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랑의 결실을 통해 조금이라도 스스로 구원하길 원한다.

Wachowski, Lana, and Lilly Wachowski, dirs. 2003. The Matrix Reloaded. Warner B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