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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e of Life (Terrence Malick, 2011, USA, 139m, Col)
스포일러 있음
신이 모든 것을 주고 또 모든 것을 거둬가는 이유
<트리 오브 라이프>는 만물과 억겁의 시간을 이미지로서 다룬다. 우주의 기원, 생명의 탄생, 인류의 기원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그와 대비되는 한 가정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오브라이언 부인(잭의 어머니)이 이런 말을 한다. 삶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세속적 삶(the way of nature)과 자비와 은총의 삶(the way of grace). 세속적 삶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빛날 때에도 불행할 이유를 찾지만, 자비와 은총의 삶을 사는 이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자녀들에게 강압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늘 사랑으로 다정하게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초반부터 대비시킨다. 세속적 삶과 자비와 은총의 삶을 대비시킨다. 그래서 나는 감독이 수많은 별들과 한 인간 가정의 대비를 보여줌으로써 억겁의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인 인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본다면 모든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신을 여러 차례 부른다. 수영장에서 잭의 또래 아이가 죽었을 때, 잭의 동생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있냐고. 잭도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당신은 소년이 죽게 내버려두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둡니다. 내가 왜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당신이 그렇지 않은데.’ 신실한 잭의 어머니마저 그녀의 자녀가 죽었을 때 신에게 따지듯 묻는다.
잭의 할머니는 잭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은 치유가 필요한 상처에 구더기를 보낸다. 교회의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욥은 신에게 충실했던 자였지만 그에게도 불행이 닥쳤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남몰래 악을 행했기에 벌을 받는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불행은 선한 자에게도 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자녀들을 지킬 수 없다. 신이 욥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을 때, 욥은 신이 거두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신이 주기도 하지만 거두기도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제는 테런스 맬릭의 다큐멘터리 <보이지 오브 타임>에서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는 신(God)에게, <보이지 오브 타임>에서는 어머니(Mother)에게 묻는다. <보이지 오브 타임>에서는 탄생, 어머니, 생명/불면, 불만족, 욕구를 대비한다. 병든 소, 버려진 아이의 영상을 보여주고,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잊다니요.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죠.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다는 듯이요.”
신(혹은 어머니)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모든 걸 주지만 모든 걸 앗아가기도 한다. 축복과 불행, 행복과 고통 모두 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은 불행에, 고통에 방관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전도 활동을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혹은 야유는 이런 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으로 돌아가게 두냐고.’ 이에 대한 그럴 듯한 답변은 준비되어 있지만, 이는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나 그럴 듯한 답변이지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테런스 맬릭은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럴 듯한 답변을 내놓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 데 불행과 고통도 개인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좀 더 많은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잭의 아버지 오브라이언은 세속적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녀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말한다. 너의 운명은 너의 통제 하에 있으니 못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순진해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한다.
잭의 어머니는 언제나 사랑 넘치는, 자비와 은총의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서로를 돕고, 서로를 사랑하고, 모든 나뭇잎과 빛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한다.
잭의 어머니는 잭에게 사랑(행복)을 주고 잭의 아버지는 잭에게 고통을 준다. 잭의 아버지는 사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녀들에게 강압적인 인물이다. 그 사람이 너무 못나서, 열등감이 심해서, 자녀들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는 자녀들이 순진하게 자라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강하게 자라기를 원했다. 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꿈인데, 그는 자녀들에게 강압적으로 굴면서도 자녀들과 다정하게, 살갑게 지내는 모습을 꿈꾼다. 자신도 아내처럼 자녀들과 잘 지내고 싶지만, 그들이 험난한 세상에 내던져져도 잘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그만의 방식으로 양육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의도가 그의 양육 방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자녀들을 대한 태도는 잭에게 평생의 상흔을 남긴다.
아버지의 태도는 아들이 그를 미워하게 만들었지만, 만약 아버지 없이 어머니 아래서만 자랐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종종 사랑만 받고 자라면 버릇없고 제멋대로 큰다는 말을 한다. 이를 보여주듯 잭은 아버지가 출장 갔을 때 어머니에게 버릇없는 모습,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가 자랄 때는 부모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부모의 훈계도 필요하다. 사랑만 받아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사랑만 받고 자라서는 살아갈 수 없다.
축복, 행복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불행, 고통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훈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축복도 필요하지만 불행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고 행복도 필요하지만 고통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방식이 조금 덜 잔인하다면 좋겠지만, 잔인해도 견뎌야 하는 게 인생이다. 선한 욥에게도 잔인하게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 삶이다.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상을 위해서다. 내 생각에는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삶에는 무수히 많은 고통이 찾아오는데 그것을 겪어보지 않아서 고통 앞에 좌절하는 인간은 삶을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진정으로 겪어보고 이겨낸 자만이 고통을 긍정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다. 나아가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고통으로 상징되는 인물이지만 그도 한 개인으로서 바라본다면, 고통을 겪은 후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자녀 한 명을 잃고, 실직하고. 삶에서 큰 고통들을 겪은 후에 그는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빛나고 있음을 비로소 보게 된다. 나무, 새와 같은 영광을. 자신이 그 영광을 더럽혔음을 시인한다. 그제서야 자녀들에게도 너희들은 내가 가진 전부라고 말한다. 고통 이후에 자신을 둘러싼 삶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보이지 오브 타임>에서도 행복과 고통을 대비시킨 후 마지막에는 사랑을 노래한다. 어머니에게 말한다. 당신이 세상을 볼 때 사랑이 쏟아져 내렸다고,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엮는다고, 당신 안에 있는 것(사랑)은 불멸이라고 노래한다.
영화는 신이 모든 것을 주고서 또 모든 것을 앗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가 세상을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는, 아주 인간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