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스코세이지, 〈플라워 킬링 문〉, 2023
스포일러 있음
욕망에 순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조소
이 영화는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살해되고, 그것이 파헤쳐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는 줏대 없이 살다가, 욕망에 순응하여 이리저리 휘둘리는 주인공 어니스트와 현명한 인디언 여자 몰리, 그리고 절대 권력으로 나오는 킹 빌 헤일이 있다.
줄거리와 해석
영화는 파이프를 묻는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들에게 파이프는 살아있는 것이다. 파이프는 인디언들의 방식을 의미하며, 인디언들에게 전해져내려오는 가르침과 지혜를 의미한다. 그들은 파이프를 묻으며, 아이들은 백인들의 새로운 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백인들은 욕망의 집합체이다.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디언들은 그 욕망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호화로운 삶을 지낸다. 오세이지족은 다섯 개화 부족 중 한 부족이며, 그들의 땅에서 석유가 나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된다.
백인들은 오세이지 네이션으로 계속해서 이주를 한다. 오세이지 네이션은 가장 부유한 카운티이기 때문이다. 욕망에 이끌려 온 것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떤 사람이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며 전단지를 뿌리고 간다. 모두들 자신도 부자가 되리라는 욕망을 품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 이미 부를 쥐고 있는 인디언들을 죽여서라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욕망에 이끌리는 남자이다. 삼촌 킹 빌 헤일을 만났을 때, 주인공 어니스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욕심 많은 남자라고, 어떤 여자든 다 좋다고 말이다.
킹 빌 헤일도 욕망의 집합체이긴 하지만, 주인공과는 다르다. 주인공은 교활하지 못하다. 욕망을 따라가긴 하지만, 남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이다. 그래서 삼촌에게 휘둘린다. 삼촌은 교활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그는 프리메이슨 32도이며(프리메이슨에서 공개된 계급은 33도가 최고 계급이다), 사람들을 체스 말처럼 조종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든다. 주인공이 일을 그르치면 매질을 하기도 한다.
킹 빌 헤일은 주인공과 영화에서 만나자마자, 일을 그르쳐, 크게 만들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인디언들을 조심하라고, 그들에게 휘말리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이다.
몰리 카일은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그녀는 인디언 순혈이기 때문에, 순혈 토지라 불리는 거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다. 삼촌은 주인공에게 몰리가 어떻냐고 묻는다. 어니스트는 자기 차에 태워본 적이 있다고 한다. 삼촌은 몰리가 갖고 있는 재산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런 게 진짜 사업이고 투자라고 한다. 어니스트는 몰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랑은 순수한 사랑일까? 집으로 들어가는 몰리 뒤로 몰리의 땅이 보인다. 어니스트는 몰리와 땅을 함께 본다.
백인과 인디언이 자연을 대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볼 필요가 있다. 오세이지 족에게 물은 어머니이고, 불은 아버지이다. 태양은 할아버지이다. 그들은 와콘타 신을 섬긴다. 오세이지족에게 새벽은 와콘타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신성한 시간이다. 그런데 어니스트는 새벽에 무엇을 하고 다니는가? 인디언들에게 훔친 돈으로 도박을 하고 다닌다. 몰리와 어니스트가 함께 있을 때 폭풍이 지나간다. 몰리는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잠잠히 있자고 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잠깐을 참기가 힘들다.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잡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주인공은 완전히 욕망에 사로잡혔다. 몰리에게 달면 좋지 않냐고 이야기하지만, 몰리는 달면 아프다고 한다. 오세이지 족 여자들은 당뇨 유전병을 앓기 때문이다.
몰리도 알고 있다. 어니스트가 자신의 돈을 함께 원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를 코요테라고 한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코요테는 돈을 원한다고 한다. 늑대나 코요테는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삼촌 킹 빌 헤일은 치밀하고 교활한 뱀 같은 존재이다. 축제 가운데 아픈 미니를 위해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계산된 행동이다. 인디언들에게 친절하게 구는 것도 인디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것이다. 오랜 인디언 친구인 헨리 론을 위해 병원 상담도 받게 한다. 하지만, 그가 술에 곯아떨어지자마자, 어니스트에게 본심을 말한다. 그에게 자기 앞으로 된 사망 보험금이 있으니, 보험이 유효하게 될 때까지는 헨리 론은 죽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후에는 헨리 론을 자살처럼 보이게 죽여 자신이 보험금을 탈 생각이다.
몰리의 어머니는 몰리가 못마땅하다. 인디언들이 인디언과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딸들이 백인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애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총도 갖고 다닌다. 어니스트의 동생 바이런은 술에 취한 애나를 집에 데려다준다. 그러면서 삼촌의 명령에 따라 애나를 죽인다. 그래야 어머니와 애나의 재산이 자기 가문에 속한 몰리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삼촌에게 인디언들은 인간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죽은 애나는 수사를 위해 머리가 파헤쳐진다. 하지만 그것은 수사가 아니라 증거인멸을 위한 것이다.
인디언들은 계속 죽는다. 그래도 수사가 이뤄지진 않는다. 킹 빌 헤일과 어니스트는 몰리가 고용한 사설 탐정도 죽인다. 킹 빌 헤일은 애나의 죽음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주장하는 리타와 그의 남편 빌 스미스도 죽이기로 한다. 어니스트에게는 빌 스미스에게 개인적인 원한도 있다. 빌 스미스는 아프다가 죽은 미니 다음에 다시 또 리타와 재혼했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빌 스미스를 미워하는 것은 빌이 욕망에 따라 몰리의 자매들과 결혼하는 부당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빌 스미스가 어니스트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자신들의 방식대로 대처한다. 밤에 두려움의 불빛을 켜둔다. 킹 빌 헤일과 어니스트의 행적은 점점 과감해지고, 동시에 점점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몰리는 어니스트에게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어니스트는 여전히 사랑한다고 몰리를 안심시키지만, 진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젠 어니스트에게도 몰리는 그저 욕망의 수단이다.
인디언들은 계속 죽고, 그들의 재산은 백인들이 강탈한다. 인디언들은 30명이 넘게 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킹 빌 헤일이 혼자 벌인 일이 아니다. 킹 빌 헤일 혼자서 일을 꾸며 30명을 죽일 수는 없다. 오세이지 네이션에는 킹 빌 헤일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잡히지 않는다. 인디언들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발로 차는 것이 유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몰리가 아기를 낳아 인디언 방식에 따라 축복하는 자리에서 인디언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백인들이 그 자리를 다 대체했다.
극의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리타와 빌의 집이 폭탄으로 날아가는 시점부터이다. 생각없이 욕망만 좇던 어니스트는 그때 죽음의 참상을 처음 본다. 그때부터 그는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대부분 신화나 문학 작품에서 죄책감은 파리로 상징된다. 그가 파리를 잡으려고 자신을 때리는 장면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는 참회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킹 빌 헤일은 사건을 덮기 위해 더 교묘해진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도 모두 계획된 일이다. 그는 오세이지 마을에 발레 교습소를 세워준다. 그리고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이 죽도록, 드럼라이트 은행을 털거나, 보석상을 털게 시킨다.
몰리가 워싱턴에 갔다왔기 때문일까? 결국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망이 어니스트에게 좁혀져온다. 삼촌은 어니스트에게 수익권은 집에 있어야 하니 서명하라고 한다. 삼촌에게는 조카인 어니스트도 체스 말일 뿐이다. 어니스트는 생각 없이 욕망을 좇았으므로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다.
어니스트와 몰리가 함께 샀던 목장도 불에 탄다. 그들이 함께 일구려고 했던 꿈이 날아가는 것이다. 목장에는 화재 보험이 들어있었다. 킹 빌 헤일에게는 이들의 꿈도 이익의 수단으로 보였던 것이다.
어니스트가 몰리에게 놓아주는 인슐린 주사에는 독이 들어있다. 그래서 아내 몰리는 거의 죽어간다. 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말을 할 수 없다. 인디언들의 말은 백인들의 체제 안에서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몰리는 앨버트 신부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몰리는 어니스트에게 다음은 당신이라고 말한다.
어니스트는 죄를 인정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어니스트는 수사망이 좁혀져 결국 잡혀가는 순간에도 아내가 아파서 자신은 잡혀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여전히 아내를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아내와 만나는 순간에 들꽃들은 전부 죽어있다. 처음에 만개해 있던 장면과 아주 대비되는 장면이다.
어니스트는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아내를 무시한다. 오세이지 족인 당신은 백인들의 제도를 잘 모를 것이라고 말이다. 몰리는 길을 잃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처음 법정에 들어설 때 수사관은 옳은 길은 좁다고 충고해준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삼촌의 모습을 보자, 삼촌의 변호사를 보자 그는 삼촌의 말을 따른다.
그가 구속되어 잠을 못 자고 있을 때, 파리가 어니스트를 다시 괴롭힌다. 아직 죄책감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블래키 톰슨을 만나서 예전에 5달러를 줬는지, 20달러를 줬는지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가 구원 받기는 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삼촌과 함께 구속되어있을 때, 백일해를 앓고 있던 어니스트의 자녀인 작은 애나가 죽는다. 어니스트는 이미 후회밖에 없는 지옥이라고, 전부 말하기로 결심한다. 오세이지 족은 더이상 삼촌 편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삼촌은 대중은 곧 잊고 신경도 안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삼촌에게는 사람들이 여전히 수단이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진실을 밝히기로 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인 인디언들에게 미안해서, 진심으로 뉘우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니스트는 모든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법정에서 결혼 전에 아내가 재산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냐고 질문을 받는다. 그러자 어니스트는 표정이 굳어지며, 알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니스트는 이후에 아내를 만나 자신은 드디어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에게 놓았던 인슐린 주사에 무엇이 들었었냐고 묻는다. 어니스트는 당황하며 인슐린이라고 대답한다. 어니스트는 끝까지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구원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종신형을 살게 된다. 중간에 석방되긴 하지만 말이다.
주인공은 생각 없이 살다가 욕망에 순응하는 존재이다. 그러면서 끝까지 자신을 위해 행동했다. 진정한 뉘우침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실을 말했다. 그런 태도에는 구원이 없다. 그가 진실을 말하고, 아내에게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에 감독은 그를 바로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하지만 세상에는 생각 없이 살다가 욕망에 순응하는 긴장감 없는 상태가 얼마나 많은가? 참 씁쓸하다.
아쉬운 점은 영어의 원제를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영어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다. 플라워 문은 5월의 보름달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밤 중에 인디언들이 두려움의 불빛을 밝히고, 그날 바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 제목과도 연계된다. 5월은 들꽃이 만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플라워 문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만발한 들꽃이 나중에 다 죽어있는 장면과도 연계가 된다. 그런데 이 원제를 번역한 것도 아니고, 그냥 〈플라워 킬링 문〉이라고 하다니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달을 죽인 꽃이라는 뜻인가? 플라워와 킬링 사이에 하이픈이 들어가거나 킬링 뒤에 반점이 들어가면 좀 낫다. 그러면 꽃을 죽인 달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달은 늑대, 코요테를 의미할 수 있고 꽃은 인디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말이다. 번역할 거면 차라리 꽃을 죽인 달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첫 장면만큼이나 제목도 중요하다. 제목에는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스토리나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번역한 것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