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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스포일러 있음
인류와 인간성에 대한 찬양시
이 영화는 모노리스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시 인간들은 처음 등장한 모노리스를 보고 두려워한다. 그렇게 경계하다가 모노리스를 터치하게 된다. 그 이후 원시 인간들은 도구를 쓸 수 있게 된다.
이전까지는 맥과 같이 생긴 동물과 함께 지낸다. 아마 감독이 에오히푸스(말의 조상)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원시 인간들은 모노리스를 터치하기 전까지는 맥처럼 생긴 동물(이하 에오히푸스)과 함께 살아간다. 에오히푸스가 음식을 뺏어먹으려고 하면 그냥 화내서 쫓아낼 뿐이다. 쫓아낸다고 에오히푸스가 가지도 않는다. 이것은 원시 인간이 에오히푸스와 그냥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시 인간들끼리는 수원을 두고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도구를 쓸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원시 인간들은 에오히푸스를 때려죽이게 된다. 이것은 이전까지는 에오히푸스, 들짐승과 같은 존재였던 인간이 도구를 쓸 수 있게 되자 들짐승과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수원을 두고 같은 원시 인간들끼리 다시 패싸움이 벌어졌을 때도 보자. 도구를 가진 쪽은 다른 원시 인간들을 도구로 때려죽이고 수원을 차지한다. 도구를 쓸 수 있게 된 원시 인간은 이전에 도구를 쓸 줄 몰랐던 원시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뼈다귀 도구는 인공위성을 비추는 화면으로 전환된다.
여기까지 봤을 때 모노리스는 도구로 대표되는 ‘지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지성만으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할 순 없다. 달에 모노리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인간이 모노리스를 터치하려고 다가가는 장면을 보자. 원시 인간들이 사막에 모노리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 경계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뼈다귀와 인공위성은 같다. 모노리스를 터치하는 원시 인간들과 달에서 모노리스를 터치하는 현대 인간들은 같다. 인간은 원시 인간부터 현대 인간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온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모노리스를 터치한 이후 인간은 모노리스가 신호를 쏜 방향인 목성을 향해 항해한다. 우주선에는 데이브와 프랭크가 활동을 하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동면 중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인 HAL 9000(이하 할)이 우주선에 함께 있다. 할은 오류를 저지른 적이 없는 가장 완벽한 컴퓨터이자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인공지능 할 덕분에 지성을 쓸 필요가 없다. 더 높은 지성을 가진 할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선의 통제권도 할이 갖고 있다. 진실도 할만 알고 있다. 우주선에서 활동하는 인간인 데이브와 프랭크는 진실을 모르고 있다. 할이 더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으며, 할이 거짓말을 해도 데이브와 프랭크는 알 수가 없다. 데이브와 프랭크는 우주선에서 지성을 쓸 필요가 없으며, 운동을 하고 지내거나 할과 체스를 두며 지낸다.
할은 통신 안테나 부품에 이상이 있다고 한다. 내 생각엔 할이 일부러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완벽한 지성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이 실수를 했다는 설정을 넣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할은 이미 그 전부터 데이브에게 임무에 대해 이상하게 묻거나, 승무원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데이브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할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확성에 대해 강조하며 모든 실수는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할의 반란 이후 데이브가 할의 기억을 제거하러 가는 장면을 보자. 표면적으로는 인공지능의 권리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특히 할이 자기는 데이브에게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데이브가 할의 메모리 카드를 해체하자, 할의 기억은 하나씩 사라진다. 할은 멈추라고 한다. 그러다가 할은 ‘두렵다’고 말한다. 기억들을 한꺼풀 벗겨내고 보면 감정만 남는 것이다. 마지막에 할은 노래를 부른다. 데이지에 대한 사랑 노래이다. 인공지능이 이 사랑 노래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데이지, 내 청혼을 받아줘요.
당신을 향한 사랑 때문에 나는 반쯤 미쳐가요.
그렇게 멋진 결혼은 되지 못할 거예요.
마차를 살 여유는 없지만,
자전거만으로도 사랑스러워 보일거에요.
인간이 지성을 쓰지 않게 된 순간 인간은 다시 자연에 잡아먹힌다. 영화에서 인간이 죽는 장면은 세 번 나오는데, 서로 원시 인간이 수원을 두고 싸우는 장면을 제외하면 두 번이다. 한 번은 원시 인간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이고, 다른 한 번은 할이 프랭크와 동면 중인 인간을 죽이는 장면이다. 표범과 할은 둘 다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감정과 욕구만이 존재하던 시절의 인간은 자연(표범)에게 먹힌다. 지성만을 숭상하다가, 지성의 사용을 더 완벽한 존재에게 위임하면 인간은 자연(인공지능 할)에게 먹힌다.
인공지능을 없애기 위해서 인간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데이브가 우주 헬멧도 잊고 작은 우주선을 타고 나가 동료의 시체를 구해오는 장면을 보자. 살기 위해서는 동료의 시체를 버려야 한다. 죽은 자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은 우주선 안에 머무른다면 잠시 살 수 있다. 그러나 곧 산소가 떨어져 죽을 것이다. 해치를 열고 공기가 없는 우주로 나가 다시 모선으로 복귀해야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작은 우주선과 인공지능은 같은 역할이다. 완벽한 지성인 인공지능에게 모든 통제권을 위임했을 때에는 잠깐 살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적당한 환경에 안주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미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인간은 더 이상 지성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야 영원을 꿈꿀 수 있다. 지성을 쓰지 않는 인간은 통제권이 없다. 삶에 대한 통제권도 없다.
작은 우주선을 탈출하는 리스크를 감내하고 인공지능을 해체하자마자 항해의 목적, 즉 진실이 드러난다. 인공지능을 해체해서 영상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그때 마침 목적지에 도착해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해체하자마자 그런 영상이 나오는 것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항해의 목적은 외계 생명체의 흔적인 모노리스가 쏜 신호의 목적지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노리스가 있었고 이 모노리스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드디어 모노리스의 정체를 볼 시간이다.
모노리스 안으로 들어간 데이브는 우주를 여행한다. 우주의 온갖 행성들을 본다. 초신성 폭발과 같은 별의 탄생과 별의 죽음을 본다. 그것은 마치 정자와 난자의 모습과도 같다. 별과 우주의 탄생과 죽음은 한 사람의 탄생과 죽음과도 같다는 것일까. 다시 보니 모선 우주선의 모양도 정자 같고, 목성은 난자 같기도 하다. 모노리스 안에는 우주의 탄생, 인간의 탄생, 인간 역사의 탄생이 모두 담겨 있다. 그 ‘진리’가 모노리스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모노리스는 진리를 상징하는가? 아니다. 그 진리를 좇는 지성에 대한 상징이다. 하지만 지성의 최고는 인공지능이다. 그렇다면 모노리스는 지성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모노리스는 진리 자체가 아닌 그 안을 항해하는 데이브에 가깝다. 인간은 ‘직관’과 ‘도전 정신’으로 완벽한 지성으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할을 이겼다. 지성은 인간성의 일부분이지, 인간성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욕망과 감정, 직관을 모두 합쳐야 인간성이라고 볼 수 있다. 모노리스는 지성과 직관, 도전 정신을 포함하는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모노리스 속으로 들어간 뒤에 마지막 장면을 보자. 데이브는 좀 더 늙은 자신이 식사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좀 더 늙은 데이브는 임종 직전의 자신을 바라보고, 임종 직전의 데이브는 모노리스를 바라보고, 모노리스는 태아를 바라본다. 그리고 태아는 지구를 바라본다.
이것은 그저 순환하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인가? 죽음이 또다른 탄생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 말이다. 우주의 탄생과 죽음,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같은 것이라고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라는 순환의 메시지가 담기면 참 근사한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아니다. 그러면 임종 직전의 노인이 바로 태아를 봐도 됐을 것이다.
각 단계의 데이브는 바로 다음 단계의 데이브만 볼 수 있다. 여러 단계를 건너뛰거나 과거의 자신을 볼 수는 없다. 과거의 자신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단계는 원래 불연속적이고, 임종하는 데이브에서 끊겼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모노리스가 이어주었다! 노인은 모노리스를 보았고, 모노리스는 태아를 보았다. 불연속적인 고리를 모노리스가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태아는 우주와 지구를 볼 수 있다.
즉 지성과 직관, 욕망과 감정을 포함한 이 인간성을 세대를 넘어 전수하는 것이 모노리스이다. 모노리스는 인간성이다. 그 인간성 안에는 욕망과 감정, 지성과 직관, 그것을 세대를 초월하여 전수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인간은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들을 책이나 다른 형태로 항상 전수해왔다. 도구를 발견한 원시 인간도 혼자서 도구를 쓰던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쓴다. 그것이 인간성이다. 주변 사람이나 후손들에게 인간 정신을 전수하는 것.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태아 때부터 지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인간성에 대한 찬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