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플라톤 전집 1』, 천병희 옮김, 숲, 2012

플라톤, 『플라톤 전집 1』, 천병희 옮김, 숲, 2012

스포일러 있음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가 고발을 받고 나서 자신에 대해 변호를 하는 내용이다. 플라톤의 초기 저작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가까웠을 때의 이야기이다.

사실 플라톤이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쓴 픽션이지만, 이 작품은 비문학으로 분류했다. 플라톤은 문학적인 경험을 주려고 이 작품을 쓴 것보단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 혹은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펼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학책이고 비문학의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소크라테스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고발당했다.

하나는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사람들의 고발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두 번째 고발은 멜레토스와 아튀토스, 뤼콘이 함께 고발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아뉘토스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출두하지 않거나, 출두하면 사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벗어나면 우리들의 아들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모두 타락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 변론: 무지의 지

일단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장본인이었다니 충격적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고발한 것은 시기와 모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자신을 시기하는 까닭은 자신이 그들의 무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들었는데, 자신은 다른 재능 있는 사람들의 지혜인 초인적 지혜는 없고, 인간적 지혜만 있다고 한다. 그 인간적 지혜란 바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지혜이다.

인간들이여, 너희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지혜에 관한 한 자신이 진실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이니라!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혜롭다는 사람들, 신탁을 해석하는 사람들, 정치가들, 비극 시인들, 장인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 까닭에 자신이 이런 고소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시기심에 모든 철학자에게 써먹을 수 있는 고소 내용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라는 내용으로 자신을 고소했다는 것이다.

후반에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 나오는데, 이 당당함도 무지의 지에서 나온다. 인간 중에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모두 살아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나쁠지, 혹은 생각보다 좋은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워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지의 지’를 통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면 겸손하게 된다.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면 무지의 지는 인생의 수많은 불안을 없애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훨씬 많이 걱정한다. 그것이 자신의 생각보다 좋은 것일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가난이나 신체 등을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들은 필시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심리학이 입증하는 사실이 있다. 막상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레짐작을 통해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두려워한다. 무지의 지를 인정하면 인생에서 지레짐작으로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불안이 없어지며, 지레짐작으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욕망도 사라진다. 생각하는 것보다 좋을지 나쁠지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자.

두 번째 변론: 죽음보다 중요한 것들

멜레토스의 고발 내용인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내용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몇 가지 논리로 반박한다.

첫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젊은이를 훌륭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터무니 없는 내용이다. 멜레토스는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둘째, 사람들은 주변 사람이 미덕을 가진 사람으로 가득차길 원하지, 악덕한 사람으로 가득차는 것은 싫어한다. 악덕한 사람들은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자신이 주변 젊은이들을 타락시켜 악덕하게 만든다면 자신에게 해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가 모르고 한 것이거나 아니면 주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그것을 모르고 한 것이라면 법의 영역이 아니라 훈계하면 될 일이다.

셋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이 다른 신을 믿게 하여 타락시킨다고 했다. 신을 믿지 않지만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른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소크라테스는 뒤이어 아뉘토스의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출두하지 않거나, 출두하면 사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벗어나면 우리들의 아들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모두 타락할 것이다.“라는 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만약 이런 견해로 인해 죄를 면하게 해 줄테니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철학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면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코린토스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테바이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자리를 지켰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치욕을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평의원 때 병사 구출에 실패한 장군들을 심판하려고 사람들이 집단 재판을 열려고 할 때 목숨을 걸고 그런 집단 재판에 반대했다. 이후에 30인 참주가 살라미스에서 레온을 연행해 오라는 말에 거부하고 집으로 갔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두려워 부당한 결정을 지지하느니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업은 사람들이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몇 번이고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그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말의 피를 빨아먹는 등에에 비유하며, 자신은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을 계속 그렇게 일깨우고 꾸짖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얻으려고 안달하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 (…) 실제로 그에게 그런 미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나는 그가 값진 것들은 경시하면서 하찮은 것들만 중시한다고 나무랄 것입니다.
(…)
재산에서는 미덕이 생기지 않지만, 미덕에서는 재산과 그 밖에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사람에게 좋은 모든 것이 생겨납니다.

진실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잠시라도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공인이 아니라 사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죽음이 두려워 정의를 어기고 어느 누구에게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설령 내가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이 알도록 말입니다.

재판 결과

재판 중에 아테나이 배심원들은 계속해서 야유를 보낸다. 그들도 시기를 감출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에게 애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배심원들에게 법에 따라 재판하겠다고 서약한 것을 지켜야 한다고 일깨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근소한 표결 차이로 유죄 판결이 난다.

나는 자기 자신이 최대한 훌륭하고 지혜로워지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두기 전에 자신의 소유물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도시 자체에 관심을 두기 전에 도시에 속한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그 밖의 다른 일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관심을 두도록 여러분을 일일이 설득하려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하게 살아왔으므로 멜레토스가 구형한 사형 대신에 은화 1므나 정도만 벌금으로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크리톤, 크리토불로스, 플라톤, 아폴로도로스의 보증으로 은화 30므나의 벌금형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사형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아마 더욱 더 질투가 났을지도 모른다. 결국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이 확정된다.

여러분,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 비열함과 죽음 중에 비열함을 선택하는 것이 쉽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죽음보다 치욕을 두려워해야 하나 보다. 소크라테스는 비열함이 죽음보다 발이 더 빠르다고 한다.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은 죽음은 따돌리지만, 비열함에 따라잡힌다고 한다.

여러분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은, 여러분이 나를 죽이면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혹시 여러분이 사람들을 사형에 처함으로써 누가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쉬운 방법은 남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정당한 비판을 한다면, 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해서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내 통제 하에 있지가 않다. 그러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통제 안에 있다.

내가 미덕과 그 밖에 대화를 통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캐묻곤 하던, 여러분이 들었던 그런 주제들에 관해 날마다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살 것인지 항상 물어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사회의 시스템이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살 가치가 없다. 항상 따지고 들어야 한다. 이게 내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 말고, 정의를 비롯한 미덕을 따라가라고. 그러려면 내가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미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안겨준 것과 똑같은 고통을 그 아이들에게 안겨줌으로써 복수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젠체하면,
내가 여러분을 나무랐듯이, 그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도 자신들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무라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나도 내 아들들도 여러분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는 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식들에게 이 말을 하지만, 왠지 자식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후손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 같다. 돈이나 다른 것보다 미덕을 더 중요시 할 것. 무지를 인정하고, 잘난 체하지 말 것. 나에게 직접 이 말을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나도 죽음보다 비열함을 더 두려워할 수 있을까? 무지를 인정하도록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