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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y and the Heron (Hayao Miyazaki, 2023, Japan, 124m, Col)
스포일러 있음
동굴을 파헤치고 늪으로 내려가 자신의 악의와 죄책감을 진실되게 마주한 이의 구원
이 영화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마히토의 어머니가 마히토가 자랐을 때 읽으라고 남겨준 책의 이름이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남긴 것처럼.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류라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남긴 이야기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히토의 엄마는 병원이 불타서 죽게 되었다. 마히토는 병원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가 집에 있으라고 만류하지만 그도 어머니를 구하러 가고 싶다. 잠옷 바람으로 현관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 2층으로 올라가는데, 그때 계단을 네 발로 오른다. 내 기억에 하야오의 영화에는 기듯이 계단을 오르는, 어린 주인공의 이미지가 꽤 있었던 것 같다. 네 발로 계단을 기어올라간다는 건 그 인물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엄마를 구하지 못했던 마히토는 그저 어린 아이였을 뿐이다.
아버지는 부인과 사별하고, 부인의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러니까 마히토에게는 이모가 새엄마가 된 것이다. 아버지와 마히토는 마히토의 이모 나츠코가 살고 있는 성으로 간다. 마히토가 처음 그 성에 들어가던 날, 왜가리 한 마리가 그의 곁을 지나간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전쟁이 진행 중인 때다. 성에는 메이드 할머니들이 여럿 살고 있다. 할머니들은 마히토의 아버지가 가져온 물건들을 구경하는데 설탕, 담배, 밀크 파우더, 통조림 같은 것을 보고 난리를 친다. 이런 물건들이 귀한, 어려운 시기임을 보여준다. 모두들 어려운 시기에 마히토는 자신이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새엄마, 할머니들에게 예의바르게 군다. 피곤해도 피곤하지 않은 척하고, 새엄마가 싫어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하지만 마히토는 아직 어린 아이다. 나츠코가 마히토의 방을 나가자마자 마히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마히토의 꿈에는 자꾸만 엄마가 죽던 날이 찾아온다. 어린 마히토가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보인다. 소방수들도 엄마를 구하지 못했는데 그 어린 꼬마 아이가 대체 뭘 할 수 있었겠는가.
왜가리는 마히토 주변을 자꾸 맴돈다. 마히토 주변에 계속해서 깃털이 떨어져 있다. 급기야 왜가리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고, 어머니를 만나게 해줄 테니 따라오라고. 마히토는 왜가리를 물리치고 싶으면서도 궁금하다. 진짜 어머니가 살아 있을까?
마히토는 새로운 학교에 간다. 도시의 소년, 전학생 마히토는 아이들로부터 배척당한다. 아이들이 마히토를 두들겨팼다. 마히토는 돌로 머리에 크게 상처를 내 피가 주륵주륵 흘렀다. 마히토의 자해는 두 가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이 더 혼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나는 새엄마에게 은근히 상처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히토는 새엄마가 싫다. 진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상처주고 싶다. 마히토의 머리에 난 상처는 그의 악의의 증표다.
마히토는 설 곳이 없다. 학교에서는 배척당하고, 새엄마와 아빠가 포옹하고 키스를 나눌 때 그는 기어서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피곤하지 않은 척, 새엄마를 싫어하지 않는 척, 할머니들에게 의젓한 척. 그는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된다. 자신을 숨겨야만 한다.
얼마 안 있어 새엄마도 시름시름 앓는다. 임신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마히토 때문에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문병을 가지 않던 마히토는, 나츠코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문병을 간다. 하지만 진심으로 나츠코를 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충 겉치레로 인사만 하고 나온다. 나오는 길에 성의 할아버지 중 한 명을 매수하는 데 사용할 담배를 슬쩍한다.
마히토의 진심과 거짓의 괴리가 심해질수록, 왜가리는 점점 더 마히토에게 다가온다. 어디에도 설 곳 없는 마히토에게 다가오는 왜가리는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구원에 대한 희망도 제공해준다. 그가 왜가리를 따라갈지 말지 망설이는 시점에 마히토는 엄마가 그에게 남겨준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발견한다. 이제 마히토는 결정해야 한다.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며 살지, 아니면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할지.
마히토는 거의 무너져 있는 작은 동굴을 발견한다. 그는 동굴 앞에 있는 나뭇가지, 돌더미를 치우고 그 동굴로 들어가려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동굴은 잠재의식을 상징한다. 마히토가 동굴을 파헤치고 들어가려 했다는 것은, 그가 이제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갈 마음이 들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마히토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한다. “막아놨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갔지…” 이 말보다 잠재의식을 잘 표현해주는 건 없다고 본다. 잠재의식은 막혀 있다. 그러니까 잠재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마히토는 이미 자신을 마주하려고 발을 떼기 시작했다.
다음 날, 혹은 며칠 뒤 나츠코가 사라진다. 마히토는 나츠코가 낮에 숲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나츠코를 찾으려는 명분이지만 엄마를 찾고 싶기도 하고, 자신이 구원받고 싶기도 한 듯한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 발을 딛는다. 메이드 할머니 중 한 명인 키리코가 마히토와 같이 간다. 책으로 둘러싸인 동굴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마히토는, 계속해서 나불대는 왜가리의 부리를 화살로 쏘아맞힌다. 이 화살은 주운 왜가리의 깃털로 장식한 것이다.
늠름했던 외형의 왜가리 아래는 우스꽝스러운 진짜 모습이 숨어 있었다. 왜가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어리고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의젓하고 늠름한 가짜 모습, 가면으로 뒤덮은 마히토 자신을 상징한다. 즉, 가식을 상징한다. 동시에 왜가리는 마히토를 탑의 세계로 인도해준 존재다. 더 이상 숨지 말고 자신을 마주하라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아까 마히토가 화살에 왜가리의 깃털을 사용했다고 했다. 왜가리의 깃털로 장식된 화살로 왜가리의 부리를 맞혔기 때문에, 새는 더 이상 날지 못한다. 왜가리의 깃털은 마히토의 죄책감을 상징한다. 죄책감이라는 깃털로 부리를 맞히자, 가짜 모습 속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더 이상 날지 못한 것이다.
이제 마히토와 할머니 키리코는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늪은 정화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이제 마히토는 죄책감, 악의 때문에 정화되지 못한 자신을 마주하러 간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동굴을 파헤치던 마히토, 늪으로 빠져드는 마히토를 보며 이 영화가 나를 울릴 것이란 걸 알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악의, 악의에 대한 죄책감을 진실되게 마주하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이 어린 주인공이 반드시 구원받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늪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자마자 펠리컨들이 마히토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실패했다. 그건 마히토가 왜가리의 깃털, 즉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허영이 있으나 죄의식도 같이 있는 경우는 영의 타락으로 여긴다. 그러나 죄의식마저 사라진 것은 영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마히토의 영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그가 가진 죄책감(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자신의 악의에 대한 죄책감)은 그가 거짓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게 막는다.
펠리컨을 문밖으로 밀어내고 마히토는 키리코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키리코는 같이 따라왔던 키리코 할머니의 어린 모습을 하고 있다. 키리코는 마히토의 이름이 진실된 자라는 걸 듣고 “그래서 죽음의 냄새가 났군”이라고 말한다. 나는 마히토가 현실에서 자신의 이름대로 진실되게 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고 받아들였다.
키리코는 마히토에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다. 첫째로 키리코는 현실에서 설 곳 없던 마히토에게 역할을 부여해준다. 배를 정박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고, 잡은 생선의 배를 가르게 한다. 어머니를 구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배척당하고 집안에서는 숨어야만 했던 마히토에게 할 일이 생긴 것이다. 키리코는 마히토가 더 이상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었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목욕탕 언니와 가마할아범이 치히로에게 일을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둘째로 키리코는 자신의 오른쪽 머리에 있는, 마히토와 똑같은 상처를 보여준다. 이는 키리코가 마히토에게 너만 그랬던 게 아니라고, 나에게도 악의의 증표가 남아 있다고 위로를 보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자신과 비슷함을 알게 된 마히토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는가.
그날 밤에는 와라와라라는 귀여운 친구들이 하늘로 날아간다. 하얀 눈송이 같은 와라와라들은 순수를 상징한다. 와라와라들은 성숙해지면 위쪽 세계로 날아가, 아기로 태어난다고 한다. 위쪽 세계란 마히토가 온 세계다. 순수의 상징은 곧 아기가 되는 것이다.
승천하는 와라와라를 펠리컨들이 잡아먹으려고 한다. 와라와라는 쉽게 펠리컨에게 잡아먹힌다. 순수는 거짓에게, 가식에게 쉽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그때 마히토의 엄마의 형상을 한, 히미라는 소녀가 불로 펠리컨을 물리치고 와라와라를 구해준다. 불은 정화의 상징이다. 엄마가 거짓을 정화시켜준 것이다.
늙은 펠리컨 한 마리가 죽어가며 마히토에게 자신이 와라와라를, 순수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가식은 살아가는 지혜였다고 말한다. 마히토는 그 펠리컨을 묻어준다. 감독은 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두를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다고, 그것이 살기 위한 당신의 방식이었음을 이해한다고 말해준다.
마히토가 펠리컨을 묻어주려 할 때 왜가리가 “엥? 묻어주려고?”라고 말한다. 마히토를 탑에 세계로 인도했던 왜가리의 말에는 떽떽거리면서도 어딘가 기특하다는 듯한 말투가 묻어 있다.
마히토가 펠리컨을 묻어준 것은 마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자신에 대한 동정이자, 이제는 거짓된 자신을 묻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다음 날 마히토는 나츠코를 찾아 떠난다. 키리코는 그와 함께 가지 않는다. 키리코는 왜가리에게 마히토와 함께 가라고 한다. 이제 마히토는 자기 자신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마히토는 히미와, 그러니까 엄마의 어린 시절과 만난다. 히미는 버터와 잼 같은 것을 바른 빵을 마히토에게 준다. 마히토는 어린 아이처럼 입에 잼을 다 묻히고 와구와구 빵을 먹는다. 이전에 성에서 할머니들과 밥을 먹을 때는 밥이 맛없다고 말했다. 그런 마히토가 히미가 해준 빵을, 엄마가 해준 음식 같다면서 너무나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말 슬펐다.
밥을 다 먹은 마히토는 이제 나츠코를 찾으러 가야 한다. 나츠코는 산실에 있다. 그런데 산실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라고 한다. 탑의 세계는 돌로 되어 있는데, 돌은 마히토가 산실에 내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잠재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다. 잠재의식은 당연히 이를 막는다. 마히토가 그곳에 내려가면 그곳은 더 이상 숨어 있는 의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히토는 기어이 금기를 깨고 만다. 그는 산실에 들어갔고, 나츠코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를 나츠코 엄마라고 부른다. 새엄마에 대한 미움(악의), 그에 대한 죄의식을 마주했고 그것과 화해한 것이다.
그런데 마히토를 산실에 데려다준 것은 히미다. 엄마가 아들을 새엄마에게 데려다준 것이다. 엄마는 마히토가 평생 자신의 동생을 미워하며 아프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마히토에게 자기 동생이랑 잘 지내보라고 하는 것이다. 너 혼자 그만 아프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히토가 나츠코를 나츠코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면서 동시에 기쁜 장면이었다.
나츠코를 엄마라고 부른 후 기절한 마히토와 히미는 앵무새들이 납치해갔다. 하지만 왜가리가 구해주었고, 마히토는 이제 탑의 세계를 만든, 자신의 종조부를 만나러 간다. 영화 초반에 마히토가 엄마를 구하러 가려고 할 때,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2층으로 다시 올라갈 때 네 발로 기었다고 했다. 하지만 탑의 꼭대기로 올라갈 때 마히토는 의젓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두 발로 걸어 올라간다. 그는 더 이상 미성숙한 꼬마 아이가 아니다.
탑의 꼭대기에서 만난 종조부는 마히토에게 이제 탑의 세계를 이끌어 가달라고 한다. 사흘에 하나씩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을 쌓으라고 한다. 그러나 마히토는 자기 악의의 증표인 머리의 상처를 만지며 말한다. 자신은 이미 악한 일을 행했다고. 자신이 있었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벌레도 들끓고 곰팡이도 생기는 세계라고 해도, 악의에 물들 수밖에 없는 세계라고 해도, 마히토는 그곳에서 살 것이다. 현실을 살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그곳에서 자신을 올곧게 마주하며 살 것이다.
마히토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앵무새 대왕이 나타나 돌들을 깨트리고, 탑의 세계는 무너지려 한다. 마히토와 히미는 그곳을 나가기 위해 달린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다. 히미가 그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마히토가 히미에게 그곳으로 나가면 병원이 불타서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자 히미가 대답한다. “괜찮아.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잖아!”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마히토의 엄마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그녀에게는 마히토를 낳는 것이 멋진 일이다. 이제 마히토는 그의 마지막 죄책감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구원받았다.
이전에 히미가 말했다. 이 문을 열면 다신 못 돌아온다고. 그때 마히토는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 나츠코 아줌마와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탑의 세계에 남았었다. 마히토는 이제 또 다시 문 앞에 섰다. 그 문을 열면 다시는 탑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츠코 엄마와 함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문을 연다.
마히토는 나츠코 엄마와 함께 돌아왔다. 탑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잊게 되어 있다. 마히토가 자신의 잠재의식과 화해했다는 사실 자체는 잊게 되겠지만, 더 이상 그는 자신을 감추며 살지 않을 것이다. 진실된 자신의 모습으로 살 것이다.
마히토가 동굴을 파헤치지 않았다면, 늪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유년시절을 보내고 그것이 어떤 정신적 기형을 만들어냈을까. 자신의 악의와 죄책감을 진실되게 마주하지 않았다면, 그는 너무나 아프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어린 소년을 구원해주었다. 이제 마히토는 아마도 할머니들이 해준 밥을, 엄마와 동생과 아빠와 함께 맛있게 먹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벌레도 들끓고 곰팡이도 피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해주고 그들에게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어떤 것이 옳다고도, 어떤 것이 그르다고도 말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의 실체를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동굴을 파헤치고 늪으로 내려가 진실된 자신과 마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