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은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슨 선택을 할 지는 이미 무의식이 정해놓았다. 오른쪽과 왼쪽 버튼 중 하나를 자신이 누르고 싶을 때 눌러보라고 하자. 과학자들은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 뇌의 운동피질에서 어떤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을 준비전위라고 명명했다(Kornhuber & Deeke, 1964). 보통 우리의(자유 의지가 존재한다는 사람들의) 직관에 의하면 ① W: 이제 버튼을 눌러야겠다는 의식이 먼저 발생하고, ② RP: 뇌에서 근육에게 움직여서 버튼을 누르라는 명령을 내리는 준비 전위가 발생하고, ③ M: 근육이 움직여서 버튼을 누르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1980년 이뤄진 실험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W(의식) → RP(뇌의 명령) → M(근육 운동)의 순서가 아니라 RP(뇌의 명령) → W(의식) → M(근육 운동)의 순서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즉, 이미 의식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하기 이전에 뇌는 어떤 선택을 할지 정해놓은 것이다. RP 이후에 W가 일어나는 데에는 약 0.35초 사이의 간격이 있었다. 이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선택을 하기 전, 연구진이 0.35초 전에 이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뜻이다(Libet, 1980).

지금의 과학 기술은 인간이 선택을 하기 약 10초 전에 미리 알아낼 수 있다. 2007년에 한 연구진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fMRI를 통해 실험 참가자의 뇌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실험 참가자의 의식이 결정을 내리기 약 10초 전에 뇌의 대뇌 피질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뇌 피질은 대뇌 바깥쪽 표면에 있는 부위이다.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선택할지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다. 또한, 약 5초 전에는 뇌의 대뇌 피질 중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를 통해 오른쪽과 왼쪽 버튼 중 무엇을 누를지 60%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Haynes, 2007). 다른 연구진은 fMRI가 아니라 뇌에 직접 전극을 이식해서 실험해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버튼을 누를지 80%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Fried, 2014).

그렇다면 인간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있다.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지가 정해져있다면, 현재로부터 뻗어나가는 미래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이다. 과거로부터 자신이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한 의사결정의 합이 현재 유일한 자신의 존재를 만들었다면, 현재로부터 이어질 미래도 오직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봐도 합리적이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간은 공간의 또 다른 하나의 축일 뿐이다. 단지 관측 가능한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시간 축으로 빛의 속도로 이동할 뿐이다. 철제 자 위에 1cm인 지점과 2cm인 지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준비전위 자체에 대한 반론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준비전위가 뇌가 근육에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Mnatsakanian & Tarkka, 2002). 만약, 준비전위가 행위계획이라면, 실제로 행위를 시행하는 것은 자유 의지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나, 신경과학적으로 보나 자유 의지가 위태로운 개념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는 자유 의지로부터 삶의 의미나 목적 등을 추론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어느순간 압도적인 허무주의에 짓눌릴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전에 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존재가 자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한다고 해도, 우리가 알고리즘이라는 명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찾는 삶의 의미는 여전히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 즉 결정론은 운명론과는 다르다. 운명론은 인간이 아무리 선택하고, 행위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정론은 인간이 무슨 선택을 할지는 정해져있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선택한 행동으로 인해 현실이 바뀔 수는 있다는 것이다. 운명론은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미 현실이 정해져 있어서 어떤 행동을 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인과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 없이 결과가 먼저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자유 의지가 설령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자유 의지를 느낀다. 야식을 먹을지 말지, 이 책을 계속 읽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고, 선택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정해진 과정에 따라 행동하는 알고리즘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리즘보다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느끼기가 훨씬 쉽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절에서 살펴볼 것이다. 어쨌든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 행동은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이 우주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완결성 있고 통일된 것이라면, ‘인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인과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통합된 우주의 과거부터 미래의 법칙을 좀 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찾기 전까지는 인과라는 말을 계속 쓰겠다.

인과는 강력한 것이다. 혹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들며 인과나 결정론에 대해 부정하려고 한다. 전자도 확률에 따라 선택을 한다면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다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시간 축은 닫혀있지 않고, 여러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양자역학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전자는 어떤 의지를 갖고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확률에 의해 무작위적인 확률에 의해 어떤 상태를 가질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확률은 강력한 것이다. 입자는 불확정성 원리가 있지만, 시야를 아주 작은 계로만 확장해도 이러한 랜덤은 강력하게 상쇄된다. 그래서 거시 세계로 오면 고전 역학은 다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공을 벽에 던진다면 튕겨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인과를 무시하고 벽을 통과하거나 갑자기 다른 물체의 개입 없이 경로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우리 우주 내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다. 로또 1등을 일만 번 연속으로 당첨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이런 인과과 무시될 확률을 기대하는 것은 그런 비합리보다 엄청나게 비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열역학 제2법칙인 총계의 엔트로피의 증가는 언제나 참인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실제로 입자들의 확률 함수를 계의 시점으로 확장하여 적절히 조작하여 정의된다. 그러므로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과에 의한 강력한 지배를 받는다.

‘확정된 미래’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실패한 확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성공한 확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편이 운명론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현재의 자신은 모두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전부 자신의 책임이다. 현재의 행동이 미래의 자신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