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런스 맬릭, 〈보이지 오브 타임〉, 2016

테런스 맬릭, 〈보이지 오브 타임〉, 2016

스포일러 있음

시간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자연 전체의 섭리

나는 감독의 다른 작품인 〈트리 오브 라이프〉 영화를 본 뒤 이 영화를 봤는데, 두 영화가 거의 비슷해서 놀랐다. 마치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2편 같았다. 다만,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엄격하고, 금지하고, 고통을 주고, 거두어가는 ‘아버지’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 〈보이지 오브 타임〉은 ‘어머니’와 섭리 전체에 대해 조망한다.

영화는 오케스트라 연주 전 튜닝을 하는 음악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리를 매우 좋아한다. 연주자로서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에도 이 소리를 듣느라 튜닝에 집중하지 못했던 때도 있으니 말이다. 몇 개의 악기만 섞이면 무질서한 음이지만, 모든 음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오히려 조화롭게 느껴진다. 카오스에 카오스를 더하니 질서가 되는 것 같은…

어쨌든 영화가 오케스트라 튜닝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연주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그렇다. 자연이 이제 시간의 예술을 연주할 것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이 ‘시간의 항해’라는 뜻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별이 생성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원시 우주에서 가스들이 모여 별이 탄생하고, 원시 행성이 탄생한다. 원시 지구에서는 아직 생명은 없다. 생명이 살 수 없는 화산과 유황, 그리고 바다가 부딪히고 있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시를 읊는데, 종종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자연이자 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누구인가? 그런데 시는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은 영상이 한다. 영상이 보여주는 것이 곧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별과 은하, 폭포와 화산, 물고기와 공룡, 신을 섬기는 인간들 모두 다 자연이다. 시에 대한 대답은 자연이다. 자연은 사랑으로 풍부한 자원을 제공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고, 역동적이며, 생명의 근원인 강과 바다이다.

다른 질문을 보자. 자연은 잘못된 게 없는 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통과 죽음의 방관자이다. 선의는 늘 승리하는가? 선함의 근원인 기쁨은 왜 영원하지 않은가? 불만족, 목마름, 병든 소, 버려진 아이, 상처, 늙은 여자, 맹인. 자연은 가혹한 것인가? 그렇다. 자비로운 것도, 가혹한 것도 전부 다 자연이다. 자연은 죽음이자 고통이다.

자연의 두 가지 측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빛만이 자연이 아니라 어둠 또한 자연이다. 시에서 말하는 빛과 어둠은 다른 단어와 대치된다.

나방과 불꽃. 나방은 생명이고, 불꽃은 죽음이다. 나방을 낳은 것도 자연이고, 불도 자연이다. 나방은 불을 향해 뛰어들지만 그것은 소멸이 아니다. 죽음이 있어야 탄생이 있으니, 자연은 그것을 순환시키며 다음 탄생을 준비한다.

친구와 이방인. 친구는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이방인은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친구가 항상 도움이 되고, 이방인이 항상 위협적인가? 친구도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은 친구가 된다. 둘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와인과 잔. 와인은 우리를 취하게 하고 기분이 좋게 한다. 잔은 와인을 담는 단단한 그릇이다. 잔은 뜨거운 불을 견디고 식히며 탄생한다. 와인과 잔은 없어지지 않는다. 와인은 잠깐 잔에 들어가 잔의 모양대로 바뀔 뿐, 잔을 비워야 와인을 또 담고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빛뿐만 아니라 어둠도 자연이다. 빛의 심연. 빛이 곧 어둠이고, 어둠이 곧 빛이다. 생명뿐만 아니라 소멸도 자연이다. 생명이 곧 소멸이다. 친구가 곧 이방인이고, 이방인이 곧 친구이다. 와인은 잔에 담겨 모양만 변할 뿐이다.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마신다.

빛과 어둠 그 양면 사이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생명의 탄생이 어디서 이루어졌는가? 바다 한 가운데였나? 아니다. 그렇다면 화산 한 가운데였나? 아니다. 길러내는 바다와 삼키는 화산 사이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심해열수구라고 하는 화산과 바다가 맞대는 곳에서 처음 생명이 탄생했다. 자연은 환희와 고통 모두이며, 그 사이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생명의 종착지를 따라가보면, 그것은 죽음이다. 모든 생명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이 탄생을 멈춘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곧 자연이다. 자신에 대한 경계선을 넓히다 보면 모든 자연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자연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의 한 형태일 뿐, 그것이 끝이라고 할 수 없다. 탄생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의 한 형태일 뿐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래서 영화의 시는 말한다. 어머니 자연은 자신을 집어삼키고 다시 자신을 낳는다고. 시간을 따라 아득히 이어지는 탄생과 소멸의 반복이다. 그래서 감독은 죽음을 하나의 관문으로 표현했다. 죽음이 문으로 표현되어도, 문 이전과 문 이후에 다른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연 한가운데 놓여있는 문이며, 문을 넘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다시 생명을 잉태하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곡은 〈말러 2번 “부활”〉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부활이다.

시간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생명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같은 땅에서 자라난 여러 나무처럼,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여러 나뭇잎처럼 같은 존재들이 그릇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너는 타조, 너는 별, 너는 나무, 너는 나, 나는 너. 이것이 감독의 다른 작품 〈트리 오브 라이프〉의 제목의 뜻인 “생명 나무"이다. 하나의 생명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런 생명들이 자연이라는 나무 줄기에 묶여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제 다른 질문을 따라가보자. 당신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아득한 무한이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실체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내가 자연이고, 모든 것이 다 나라면 방법이 있다.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희망을 갖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신이라고 부르는 자연을 만나는 방법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나무로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면 우주 전체가 하나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다.

우주의 시간대에서 인간은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원시 인간들의 모습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지금까지 영화의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은 타조의 알이나 토끼 고기처럼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한다. 생명력을 지닌 강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반면에 자연은 불이나 번개, 표범처럼 무서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폭력과 병듦, 죽음 또한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눈으로 다른 존재들을 보고 나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에 원시 인간들이 찍는 손바닥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인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돌에 찍는다. 자연이 자신을 기억하길 원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태어나 살다 간 한 존재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다른 사람에게 찍는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길 원한다.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손바닥을 찍는다.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 같은 존재들이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바닥은 자아의 경계를 넓히는 사랑의 눈길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 존재들이 오늘날 도시에 사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가 사랑의 눈길로 공간과 시간 전체에 흩어져있는 자연의 존재들을 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영화는 땅에서부터 줄기, 나무, 나무 잎, 하늘과 태양으로 상승한다. 마치 사랑으로 만물을 보는 존재가 점점 자아의 경계를 넓혀가는 것처럼 시선이 올라간다. 어제의 나도 나이고, 내일의 나도 나인 것처럼 나라는 하나의 존재는 시간의 축에 흩어져있다. 그런 것처럼 나와 같은 존재가 시공간의 축에 흩어져있다. 표범, 타조, 고래, 나무, 땅, 하늘 모두 다 말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이 영화는 이번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감상한 작품이다. 이런 명작을 영화관처럼 큰 곳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개인적인 목표가 하나 더 생겼는데, 영화나 문학, 비문학 같은 작품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곳을 세우고 싶다. 물론 안에 큰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도 두고 싶다. 그래서 인류의 정수가 담긴 영화들을 함께 감상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