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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zen Kane (Orson Welles, 1941, USA, 119m, BW)
스포일러 있음
모든 것을 가졌던 남자가 일평생 그리워했던 것, 로즈버드
영화 <시민 케인>은 인생에서 거의 모든 걸 다 가졌지만, 거의 모든 걸 다 잃은 한 남자, 찰스 포스터 케인에 관한 이야기다.
케인의 어머니 메리 케인은 하숙생으로부터 밀린 하숙비 대신 광산 증서를 양도받는데, 그 광산에서 노다지가 쏟아진 덕분에 부자가 된다. 케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서 그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긴다. 그는 커서 재력가가 되고, 신문사의 발행인이 되고,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하고, 제나두라는 성을 지어 그곳에서 산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퍼즐 조각, ‘로즈버드’로 대변되는 그 조각의 부재 때문에 불행하다.
‘로즈버드’는 아마도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로즈버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꽁꽁 숨기다가 마지막에 알려준다. 케인의 부모님이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던 날, 눈이 오고 있었다. 케인은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니고, 눈뭉치를 던지고,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탄다. 썰매에 적혀 있던 단어가 바로 로즈버드다. 로즈버드가 케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 어머니의 사랑, 순수, 그리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곳일 것이다.
케인의 어머니는 케인이 콜로라도를 떠나 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결국 그에게 좋은 일이 되지 못했다.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던 그는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공허하고 고독했다. 일찍이 아무도 그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알려준 적 없다. ‘애들 버릇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면서 케인을 때리려고 했던 아버지도, 그런 당신 때문에 애를 콜로라도에서 키우지 않겠다던, 공허한 눈빛을 가진 어머니도 그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곧 사랑 받는 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들도 그 방법을 몰랐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함께했다면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케인을 사랑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케인은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법을 알게 되었으리라.
하찮아 보이는 작은 선택들도 한 인간의 삶이라는 직물을 직조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내린 큰 선택은 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케인은 평생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그 자신도 파멸했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고,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서서히 파멸한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영문을 모르는 그 자신도 파멸한다. 아름답고 환하게 웃던 그의 첫 아내 에밀리도, 첫 만남부터 웃기만 했던 정부 수전도, 하나뿐인 친구였던 리랜드도, 모두 빛을 잃어간다. 그럴수록 케인은 그들을 쥐고 흔들고, 가두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할 줄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에밀리에게서도, 수전에게서도, 리랜드에게서도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법을 몰라 결국 모두 다 떠나게 만들었다. 그는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막는 법을 모른다.
케인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초등학생이 봐도 그의 삶을 ‘잘 산 삶’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돈을 얻고, 지위를 얻고, 좋은 곳에서 살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어서 무얼 하겠는가? 사랑이 없으면 모든 걸 가졌어도 모든 걸 잃은 자가 된다. 결국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일무이한 것은 다름아닌 사랑인 것 같다. ‘잘 산 삶’의 핵심 재료는 사랑인 것이다. 나는 제나두 같은 성이 없어도 모든 걸 가진 사람이고, 케인은 제나두 성이 있어도 모든 걸 잃은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를 잃으면 나 역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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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NO TRESPASSING (출입금지)이라고 적혀 있는 제나두를 보여주며 시작하고, 그것을 보여주며 끝낸다. 이게 마치 꽁꽁 닫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케인의 세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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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이 죽은 후 기자 톰슨과 집사는 케인이 남긴 어마어마한 가치의 유산들을 본다. 널려 있는 비너스상 중 하나가 2만 5천 달러의 가치를 지녔다. 한 감정 평가사가 “콜로라도의 메리 케인이 보낸 화로. 가치, 2달러.“라고 말한다. 과연 케인에게 그 화로의 가치가 2달러였을까? 아마 그에게는 다른 비너스상들, 그리고 그 대저택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합쳐도 어머니가 보낸 화로가 더 가치 있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의 소품인 로즈버드 썰매를 6만 500달러에 샀다. 인간에게 가치란 그 안에 담긴 본질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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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주변에 케인과 비슷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나 좀 봐달라고, 나 좀 사랑해 달라고 울부짖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사랑받는 방법을 도통 몰라서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게 만든다. 프랭크 어빙 플레처라는 사람이 쓴 광고에 ‘더 이상 미소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미소를 가장 필요로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랑에 관해서는,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게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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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포스터 케인의 이야기는 오슨 웰스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는 그가 25살 때 만들었기 때문에 자전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성이 그토록 좋지 않았고, 동료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던 생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케인이 곧 웰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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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본 영화 <어둠 속의 댄서>가 떠오른다. 주인공 셀마는 자신의 목숨과 아들 짐의 눈 수술 중 아들의 눈 수술을 택한다. 셀마의 친구 캐시는 “그 애는 엄마가 필요해. 살아 있는 엄마가!“라고 말한다. 셀마는 “그 애는 눈이 필요해요"라고 답하고, 캐시는 다시 짐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셀마는 아들의 눈을 택했고, 죽음 직전에 아들의 수술이 성공했음을 알고 기뻐한다. 그녀의 아들은 엄마를 잃은 대신 눈을 얻게 되어서, 남은 평생 앞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