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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플라톤 전집 1』, 천병희 옮김, 숲, 2012
스포일러 있음
목숨 위에 있는 신념과 캐묻는 삶
소크라테스는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자로 여겨지는 사람 중 하나다. 4대 성인 중 한 명이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현인이다. 그가 어떻게 가장 현명한 자가 되었는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누가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을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유명한 ‘무지의 지’ 개념이 여기서 나온다.
무지의 지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은 델포이에 가서 신탁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듣고 그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는 지혜롭기로 명망이 높은 자들—정치가들, 시인들, 장인들—을 찾아간다.
어떤 정치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혜롭다고 여겨지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겼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증명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다. 그 자리를 떠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저 사람보다는 분명 내가 더 지혜롭네. 둘 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아무튼 그 차이가 아주 작긴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은 저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아.
그는 시인들도 찾아갔으나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시인 자신들보다 더 그들의 작품에 대해 잘 설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시인들은 지혜가 아니라 일종의 소질, 영감으로 시를 짓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실제로 많은 영화 창작자들은 어떤 주제를 말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한다). 그런 시인들도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잘 안다고 자부한다는 것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인들을 찾아간다. 장인들은 탁월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과오가 그들의 지혜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신이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들이여, 너희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지혜에 관한 한 자신이 진실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이니라!
모두가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소크라테스가 역설적으로 가장 지혜로워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발과 변론
소크라테스는 가장 명망 높은 사람들이 사실은 가장 결함이 많고, 그들만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그보다 오히려 사리가 더 밝은 것 같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쳇말로 ‘좀 치는’ 사람들에게 “그대는 그대가 지혜롭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무지한 자라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생각해보라. 지금으로 치면 이름난 교수들과 학자들을 찾아가서 저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어찌 공분을 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내 생각을 말하면 누구라도 듣기 싫어할 걸 알아서 얘기조차 안 꺼낸다. 사람들이 내가 대화로 소일하는 것을 참다못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여러 사람에게 고발당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에는 두 가지 고발 내용과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나온다.
첫 번째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모든 철학자에게 써먹을 수 있는 비난이나 다름없는 이 고발에 대한 변론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비방을 얻게 된 이유를 말한다. 이 변론 과정이 곧 위에서 언급한 ‘무지의 지’에 대한 내용이다.
두 번째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 않았거나 만약 타락시켰어도 고의가 아님을, 그리고 신을 믿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고발에 대한 변론을 끝낸다. 이 책의 정수는 고발에 대한 변론보다 그 이후에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에 있다.
예정된 죽음
그는 변론을 끝낸 뒤 오히려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 이후에 그가 내뱉는 말들에 사람들의 자아가 너무 크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의 방어기제 때문에 죽음을 당할 운명이었으며, 본인도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 변론이 끝나자마자 그는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당신들의 시샘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그는 거의 저격수가 된다.
하지만 변론 첫머리에서 내가 많은 사람에게 심한 미움을 샀다고 말한 바 있는데, 여러분은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유죄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멜레토스 때문도 아뉘토스 때문도 아니고, 많은 사람의 선입관과 시샘 때문이겠지요. 그동안 그것들이 죄 없는 많은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나에게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마냥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토해낸다. 유죄 투표에서는 총 500표 중 280의 유죄 표를 얻었지만, 이후 배심원들이 더욱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내뱉은 후 사형 판결 투표에서는 360명이나 그에게 사형 판결 표를 던졌다. 사실 이제부터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그를 옹호했던 사람들이 140명이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아테나이인들 중 지성인이 많았음을 드러낸다고 생각될 정도다. 듣는 사람이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 만할 말들만 한다.
여러분이 내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나를 살려주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아마도 졸다가 깬 사람처럼 짜증이 나서 아뉘토스의 조언에 따라 철썩 쳐서 아무 생각 없이 나를 죽이겠지요. 그러면 신께서 여러분을 염려하여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보내주지 않는 한, 여러분은 잠 속에서 여생을 보낼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는 당신들은 나를 죽일 것이고, 그러면 당신들의 구원자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잠이 의미하는 것은 무지, 어둠일 것이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이는 자기 경우를 떠올리면서 자기는 이보다 작은 죄로 재판받으면서도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배심원들에게 애걸복걸하고 최대한 동정을 사기 위해 어린 자식들은 물론이요 수많은 친족과 친구를 법정에 데리고 나왔는데, 나는 극도의 위기에 처한 것 같은데도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지요. 아마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그런 생각 때문에 내게 더 가혹해지고, 그런 생각에 울분이 치밀어 홧김에 내게 불리하게 투표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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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런 짓을 하지 않을까요? 아테나이인 여러분, 고집을 부려서도 아니고 여러분을 무시해서도 아닙니다. 내가 죽음에 직면해서 용감한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실은 나와 여러분과 도시 전체의 명성을 고려할 때, 이 나이에 이런 명성을 누리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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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러분 가운데 지혜나 용기나 그 밖의 다른 미덕에서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재판을 받으면, 명성이 자자한데도 깜짝 놀랄 짓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는 분명 자기가 죽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나는 그런 저급하고 추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며 소크라테스는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최선의 결과가 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려달라고 말한다. 당연히 유죄 판결을 받았다. 500명 중 280명이 그에게 유죄 표를 던졌다.
이후 그는 본질과 미덕에 대해 말하며 자신이 아테나이를 위해 봉사했다고 말한다(물론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최대의 봉사라고 여기는 것을 여러분에게 해주었고, 그런 자신이 받아야 할 형벌에 ‘시청사에서 무료로 식사를 제공받는 것’보다 합당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이 배심원들의 약을 얼마나 올렸을지. 당연히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시점부터는 정말 점입가경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소크라테스를 미워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듣기 싫은 진실은 공분을 사기 마련이다.
내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배짱이 두둑하지 못하고 뻔뻔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며, 여러분이 나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을 말투로 여러분에게 화답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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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론할 때도 내가 위험에 처했다고 자유민답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변론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변론하여 사느니 이렇게 변론하다가 죽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건 전쟁터에서건, 나도 그렇지만 다른 누구라도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내 말빨이 딸려서 유죄 판결 받은 게 아니라, 당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위해 당신들처럼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느니, 자유민으로 죽겠다’며 대놓고 사람들을 깐다.
그는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이들에게 촌철살인을 한다.
여러분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은, 여러분이 나를 죽이면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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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이 사람들을 사형에 처함으로써 누가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쉬운 방법은 남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였던 자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자들, 미덕을 추구하지 않았던 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저격에 찔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죽이면 자신은 구원받을 줄 알았겠지만, 그의 죽음은 그들을 지혜롭게 만들 수도 없으며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없다. 찰나의 자위일 뿐이다. 그들은 잠 속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목숨 위에 있는 신념과 죽음에 대한 무지
이제 소크라테스 앞에는 죽음이 놓여 있다.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사형 선고를 받기 전부터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첫째로, 죽음보다 자신의 신념, 정의, 자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에게 목숨 때문에 자기 신념을 저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로, 그는 죽음을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는 그가 죽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태도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그는 재판에 회부되기 한참 전부터 죽음이 두려워 자신의 뜻을 접는 일을 멸시했다. 그가 평의회 위원이었을 때는 혼자만 집단 재판이라는 위법행위에 반대표를 던졌다. 집단 재판을 지지했던 정치가들은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체포할 태세였고, 평의회 위원들은 그러라고 고함을 질러댔지만, 그는 구금이나 죽음이 두려워 부당한 결정을 지지하느니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두제 때 30인 참주가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처형하기 위해 그를 연행해오라고 했을 때도 혼자만 집으로 돌아갔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그 뒤에 곧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처형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재판에서도 당연히, 살기 위해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죽는 한이 있어도"라는 말을 쓴다.
여러분은 이 점을 고려하여 아뉘토스의 말을 따르든지 말든지, 나를 무죄방면하든지 말든지 하십시오. 아무튼 나는 몇 번이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내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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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이 두려워 정의를 어기고 어느 누구에게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설령 내가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이 알도록 말입니다.
비굴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그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언급한다.
아킬레우스는 그 말을 듣고도 죽음과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 친구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못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기에 이렇게 말하지요. ‘저는 당장 죽고 싶습니다, 악당을 응징하고 나서. 여기 부리처럼 휜 함선들 옆에 남아 웃음거리가 되고 대지에 짐이 되느니 말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어떻게 사는 것이 치욕이었을까?
아테나이인 여러분,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자신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여겨서든 지휘관의 명령에 의해서든 일단 한곳에 자리 잡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자리를 지켜야 하며, 죽음이나 그 어떤 것보다 치욕을 염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테나이인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지휘하도록 선출하신 지휘관들이 포테이다이아와 암피폴리스와 델리온에서 내게 자리를 정해주었을 때 나는 누구 못지않게 죽음을 무릅쓰며 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한 내가 나중에 나 자신과 남들을 탐구하며 철학자의 삶을 살라고 신께서 정해주셨을 때—나는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것이 두려워서 내 자리를 뜬다면, 나는 심한 자기모순에 빠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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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을 쉬고 그럴 능력이 있는 한 나는 철학에 종사하는 일도, 여러분에게 조언하는 일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여느 때처럼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일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당신은 아테나이인이오. 당신의 도시는 가장 위대하며, 지혜롭고 강력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오. 그런데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얻으려고 안달하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
그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곧 치욕이다. 그에게 자신의 자리란, 자신과 남들을 탐구하는 것, 즉 철학에 종사하는 것, 사람들이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그에게 치욕이고, 그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요?”
자신의 신념보다 목숨이 중요한 이라면,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을 떠나 조용히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철학에 종사하며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일을 그만둘 테니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 그것은 인간이기를, 그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그것은 부리처럼 휜 함선들 옆에 남아 웃음거리가 되고 대지에 짐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다.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태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목숨보다 신념을 위에 두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류 역사에서 그런 태도를 취한 사람은 꽤 있었고,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많이 보이는 인물상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태도는 무척이나 놀랍다. 그 이유는 그가 죽음이 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진심으로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죽음이 인간에게 사실은 최대의 축복이 아닌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죽음이 인간에게 최대의 불행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런 무지야말로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아마도 나는 바로 이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보다는 우월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점에서 남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저승에서의 삶에 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점에서 지혜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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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들보다 사실은 오히려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결코 더 두려워하지도, 회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죽음까지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끝까지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죽음이 곧 불행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경험해본 자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아직 죽음이 축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새롭고 놀라운 관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을 불행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이승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이것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또 내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안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후세계가 없다고 단정지은 것이고, 이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는 무지한 자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좋을지도 모르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죽음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잠, 혹은 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하는 것이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이득이라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이 모두 저승에 가 있다면, 그곳에는 미노스, 라다만튀스, 아이아코스, 트리플톨레모스 같은 반신들이 있고,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같은 가인들도 있고,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도 있고, 팔라메데스, 아이아스, 오뒷세우스 같은 영웅들도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캐묻고 대화할 것이다.
죽음이 정말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라면, 내게도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나는 죽으면 모두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저승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 배우자와 또 다시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오르페우스,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아이아스, 오뒷세우스, 아가멤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것도 큰 축복일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들을 만나고 있다. 인류가 내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들 덕분에, 저승으로 이주하지 않고서도 그들을 만나 캐묻고 대화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죽음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떠났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가 죽어서 먼저 떠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캐묻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여러분’보다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간 것이다.
부, 명예, 명성 vs 지혜, 진리, 혼의 최선의 상태, 본질, 미덕
소크라테스는 부, 명예, 명성을 좇는 것과 지혜, 진리, 미덕, 혼의 최선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을 비교한다.
나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인류의 발자취를 좇아 여행 다니는 것, 웅장한 자연경관을 보는 것, 예술을 탐닉하는 것, 악기를 연주하고 여러 체험을 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어느 정도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탐구에 푹 빠져든 이 삶이 너무 좋아서, 탐구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당장 자본을 추구하게 되면 플라톤을 읽고 호메로스를 읽는 일은 어느 정도 뒷전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날, 배우자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모든 걸 다 희생하더라도 이렇게 탐구만 하고 살 수 있겠냐고. 배우자는 그렇다고 답했고, 나는 아직 다른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고 바로 다음 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숨을 쉬고 그럴 능력이 있는 한 나는 철학에 종사하는 일도, 여러분에게 조언하는 일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여느 때처럼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일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당신은 아테나이인이오. 당신의 도시는 가장 위대하며, 지혜롭고 강력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오. 그런데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얻으려고 안달하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
위에서도 인용했던 부분이다. 소크라테스는 숨을 쉴 수 있는 한 철학에 종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얻으려고 하면서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할 경우 따지고 물으며 시험한 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그에게 그런 미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그가 값진 것들은 경시하면서 하찮은 것들만 중시한다고 나무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부와 명예와 명성은 하찮은 것이며,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는 값진 것이다.
그는 결코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돈을 벌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군인, 대중 연설가, 공직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역으로 말하면 군인, 대중 연설가, 공직자가 되는 것조차 조용하고 평범한 삶에 속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말하자면 나는 자기 자신이 최대한 훌륭하고 지혜로워지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두기 전에 자신의 소유물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도시 자체에 관심을 두기 전에 도시에 속한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그 밖의 다른 일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관심을 두도록 여러분을 일일이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는 아테나이인들이 소유물보다는 자신을 지혜롭게 만드는 데 관심을 두도록, 그들이 본질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소유물보다 지혜가 먼저고, 본질에 귀속되는 것들보다 본질이 먼저다. 그는 더 중요한 것을 두고 재산을 추구하는 아테나이인들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는 최고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내가 미덕과 그 밖에 대화를 통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캐묻곤 하던, 여러분이 들었던 그런 주제들에 관해 날마다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내 말을 더더욱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지혜, 진리, 혼의 최선의 상태, 본질, 미덕에 대해 날마다 대화하는 것이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이다. 캐묻는 삶. 내가 언제나 동경해왔고, 살고 싶은 삶이다.
소크라테스는 내게 답을 내려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면 중간점을 찾을지도 모르지만, 내 삶에서 진리는 좇지 않고 부와 명예와 명성만 좇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진리만 좇는 삶은 살 수 있어도, 부와 명예와 명성만 좇는 삶은 살지 않겠다. 내게 최고선은 배우자와 함께 캐묻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재산에서는 미덕이 생기지 않지만, 미덕에서는 재산과 그 밖에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사람에게 좋은 모든 것이 생겨납니다.”라고 말합니다.
인류에게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떠나면서, 자신을 고발하고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미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안겨준 것과 똑같은 고통을 그 아이들에게 안겨줌으로써 복수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젠체하면, 내가 여러분을 나무랐듯이, 그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도 자신들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무라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나도 내 아들들도 여러분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미덕은 소홀히하고 사라지고 말 것들에 관심이 더 많다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지혜로운 척한다면, 그들을 나무라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조차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잘 사는 것이구나.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가 잘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런데 배우자가 옆에서 말했다. “마치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저 대목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그는 그의 죽음 이후 약 2,400년이 지나고 태어난 나까지 나무라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아들들이, 아테나이인들이, 인류가 미덕을 추구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부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형당하는 자신조차도 정당한 대접을 받는 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간절했던 부탁이자 소원이었다.
그가 인류에게 전한 말을 잊지 않는 것이 그의 죽음에 대한 예의다.
당신이 내게 전한 말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