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i, 2000, Hong Kong-France, 97m, Col)

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i, 2000, Hong Kong-France, 97m, Col)

스포일러 있음

사랑해서 떠나는,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화양연화>는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 차우와 여자 주인공 첸 부인은 모두 결혼했는데, 그들의 배우자는 외도하고 있다. 첸 부인과 차우 부인은 같은 가방을 갖고 있고, 차우와 첸은 같은 넥타이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그들의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와 남자는 각자의 배우자가 어떻게 외도를 하게 됐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하고,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라는 차우의 말처럼, 둘은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린 그들하고 다르다.”면서 선을 그었고, 자기 마음을 꾹꾹 눌렀다.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속 무협 소설에 대한 대화와 평행을 이룬다. 다음은 첸 부인이 아파트에서 차우에게 무협 소설을 빌릴 때 둘이 나누는 대화다.

“무협 소설 좋아하세요?”
“한동안 푹 빠져서 직접 쓸까도 했었어요.”
“근데 왜 안 쓰세요?”
“생각만 하고 시작을 못 해서 관뒀죠. 작가 할 운명은 아닌가 봐요.”

다음은 둘이 확실하게 호감을 품기 시작했을 때 나누는 이야기다.

“무협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졌어요. 쓰기 시작했으니 다음에 보여 줄게요.”
“좋아요.”
“당신도 좋아하니까 같이 써 볼래요?”
“난 볼 줄만 알지 쓸 줄은 몰라요.”
“한번 해보는 거죠.”
“그럼 열심히 해볼게요.”

남자는 생각만 하고 시작을 못했던 무협 소설을 용기를 내서 쓰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같이 쓸 것을 제안했더니 여자는 망설이다가 수락한다. 마치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열심히 소설을 쓰고, 여자도 열심히 소설을 쓴다.

그런데 세상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시작한다. 둘이 남자의 방에서 같이 소설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술에 취한 채로 아파트에 들어오고, 거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밤새 마작을 하는 바람에 그들은 꼼짝없이 다음 날 아침까지 방에 갇힌다.

바로 다음 신에서 차우는 장소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어떤 장소요?”
”글 쓸 장소요. 그럼 앞으로 오기도 편할 거예요. 우리 사이에 다른 일은 없지만 당신이 오해받는 거 싫어요.”

남자는 여자가 오해받는 게 싫어서 장소를 찾는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가 오해받는 게 싫어서 다른 장소를 구할 수는 없다. 안 만나면 그만이지 않은가. 이제 그들 사이에 다른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자는 그 장소에, 2046호에 들어가기를 여러 번 망설이다가 들어간다. 당신이 올 줄 몰랐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우린 그들하고 다르니까요.”*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좋아하는데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고,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은 커져만 간다. 선을 그어버린 여자의 말에서 그들이 사랑을 시작하기는 했어도 계속 할 수 있는 운명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호텔방에서 남자와 소설을 쓰면서 외출이 잦은 여자에게 아파트 주인은 한 마디 한다. 젊으니까 나가서 즐기기도 해야겠지만 정도는 지키라고. 여자는 남자에게 주인아주머니한테 한 마디 들어서 당분간 못 갈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파트 사람들이 여자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수도 없이 말했고, 여자는 수도 없이 거절했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행동을 저울질 당하자, 처음으로 그들과 완탕을 같이 먹는다. 미스 위라는 여자랑 외도하고 있는, 여자의 사장조차도 여자를 비난의 눈길로 바라본다.

여자가 상처 입고 있다는 것을 알자, 남자는 떠날 결심을 한다. 뒷말 들리지 않게 환경을 바꾸고 싶다고 한다. 떠날 거라고 말하면서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이 곧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라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은가보다. 자기가 좋은 것보다 상대방이 아픈 게 더 싫어서 떠나는가보다.

그래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남자는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에 여자에게 같이 떠날지 물어본다. 여자는 끝내 남자를 떠나보냈고, 그들이 무협 소설을 같이 썼던 그 호텔방에서 울면서 속으로만 말한다. ‘날 데려갈래요?’

진짜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1년 뒤 여자는 남자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의 집으로 찾아간다. 남자가 집을 비웠을 때. 이후 남자는 집에 돌아와 무언가를 미친듯이 찾는데, 그건 그가 유일하게 갖고 있던 여자의 흔적인 분홍색 꽃무늬 슬리퍼였다. 여자는 그녀의 유일한 흔적을 가져가버렸다. 마치 이제 그만 나를 잊고 잘 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구덩이에 자신의 비밀을 묻는다. 그들의 화양연화를 묻는 이 신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들의 무협 소설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남편도 외도하고, 아내도 외도하고, 회사 사장도 외도하는데, 왜 본인들만 사랑하면 안 되는가.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도덕 의식 때문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그 사랑 때문에 손가락질 받게 될 서로를 위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진짜 어른들의 사랑인가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받는 걸 원하지 않아서, 사랑하지만 떠나야만 하는 어른들의 사랑. 떠나고서도 날 사랑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나 잊고 당신 인생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들의 사랑.

나였으면 떼썼을 거다. 남들 시선이 뭐가 중요하냐고. 이미 파국이라고. 저들도 서로 눈맞아서 우리를 떠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우리만의 낙원으로 도피하자고. 내가 아이처럼 떼썼으면 상대방은 아마 옆에 있어줬을 거고, 그러면 나는 철없이 좋다고 헤헤거리다,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기를 반복했을 거 같다. 그러면 미어지는 가슴은, 그 무거운 무게는 분명 상대방이 다 짊어졌을 거다.

나는 못할 것 같은,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이 너무 가슴 아프다. 영화가 많은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많은 것을 덜어낸 채로 말해서 더 가슴이 아프다. 첸 부인의 분홍색 꽃무늬 슬리퍼는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