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심리 기제의 원리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을 살펴보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좋은 삶의 정의에 참고하되, 타당하지 않다면 왜 타당하지 않은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먼저 밝힐 것은 진화심리학적 해석과 진화심리학은 다르다. 진화심리학은 엄밀한 과학적 방법 위에 있는 과학적인 학문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진화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학습한 사람들이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현상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해석에는 종종 논리 비약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진화심리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는 그것을 표면적으로 학습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잘못된 진화심리학적 해석이 있다는 사실은 진화심리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심리학을 잘못 이해한 사람이 주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 마음의 알고리즘인 심리 기제는 어떻게 구분할까? 예를 들어 목이 말라서 물을 찾게 되었다고 해보자. 심리 기제는 알고리즘이다. 이런 알고리즘은 전부 “만약 —이면, —하라.“라는 형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아라.“라는 심리 기제를 하나의 심리 기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만약 무언가 필요하면, 적합한 것을 찾아라.“라는 더 큰 하나의 심리 기제가 발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약 번식을 하고 싶다면, 생식력 있는 배우자를 찾아라.”,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아라.”, “스마트폰이 필요하면,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아라.” 같은 심리 기제는 전부 하나의 심리 기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더 크게 봐서 우리 심리 자체를 하나의 심리 기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심리 기제를 정의할 때에는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심리 기제를 아무렇게나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은 심리 기제를 기능에 따라 구분한다. 그리고 이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구체적인 하나의 적응 문제만을 해결해야 한다. 진화심리학이 심리 기제를 임의적인 구분이 아니라 ‘기능’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우리는 신체 구조를 위치나 모양새가 아니라 기능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을 해부할 때 혈관과 뼈와 근육은 어떻게 구분할까? 이것들이 서로 붙어있다고 혈관, 뼈, 근육이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혈관을 반으로 쪼개서 오른쪽의 혈관과 왼쪽의 혈관이 다르게 생겼으므로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혈관은 혈관, 근육은 근육, 뼈는 뼈라고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그것들의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혈관은 피를 운반하는 기능을 한다. 뼈는 조직들을 지탱하는 기능을 한다. 근육도 조직을 지탱하긴 하지만, 근육은 주로 수축과 이완을 통해 뼈를 비롯한 조직들을 움직이는 기능을 한다.

인간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심리 기제는 개인적 경험이나 문화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다. 어떤 심리 기제가 진화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의 기능은 과거 환경에서 반드시 생존과 번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된 심리 기제는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것은 자연 선택과 성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마트폰이 필요하면, 스마트폰을 찾아라.“라는 기제는 인간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된 심리 기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은 과거 환경에서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생존과 번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기제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기제들이 광범위하게 공유된 기제가 아니라면, 좋은 삶을 추론할 때 이런 심리 기제들은 배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화심리학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두 가지이다. 심리 기제는 기능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인간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된 심리 기제는 성 선택을 비롯한 자연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반드시 과거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인간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된 심리 기제만을 다루자. 그런데 하나의 심리 기제는 반드시 하나의 구체적인 적응 문제만을 해결해야 한다. 목이 말라서 마실 수 있는 물을 찾는 것과 번식이 하고 싶어서 생식력 있는 배우자를 찾는 것은 명백히 다른 적응 문제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을 심리 기제의 ‘문제 특정적 경향’이라고 한다.

(물론 일반적인 기제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지능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제라기 보다는 광범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것은 논란거리이다. 지능에 대한 논란은 ‘인지 자본’ 권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만약 특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 특정적인 기제가 훨씬 강력하다. 왜냐하면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보다, 일반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가, 특수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제들은 적응 문제를 몇 가지로 분류한다. 생존 문제, 성장 문제, 번식 문제, 양육 문제, 포괄 적합도로 문제를 묶는 것처럼 말이다. 심리 기제들은 구체적인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제이지만, 문제의 성질에 따라 우리는 그러한 심리 기제를 묶을 수 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적 해석 중에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주장이 있다. 모든 심리 기제를 결국 생존과 번식으로 환원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 사이에 공유되는 알고리즘은 모두 자연 선택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그런 심리 기제는 현재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삶의 목적을 환원하자면 번식이라는 유일한 목적으로 더 환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화심리학에서 생존은 번식 전까지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식 적령기 이후에 발현되는 생존을 위협하는 특성은 도태되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다. 암에 걸리거나, 치매가 오는 것 등은 생존이나 번식에 큰 위협이 되지만, 이런 특성들은 보통 번식 적령기 이후에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심리학 자체는 오히려 적응 문제들과, 적응 문제에 대처하는 심리 기제를 모두 밝혀내 명단을 만들려고 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을 극단적으로 환원하는 주장은 진화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퍼뜨리는 해석인 것 같다. 또한 진화론은 자연 선택이라는 일반 진화론과 여러 중간 단계의 진화 이론들이 연결되어 있다. 성 선택 이론도 일반 진화론이 아니라 중간 단계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런 중간 단계에 있는 이론들은 자연 선택이라는 일반 진화론과 모순 되지 않을 뿐인 것이지, 자연 선택으로부터 도출된 것은 아니다. 적응적 문제들을 파악할 때에는 이러한 중간 단계의 이론들로부터 가설을 세우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진화심리학 자체는 삶의 목적을 극단적으로 환원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다양한 심리 기제들이 생기는 원리를 명료하게 기술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이 진화심리학에 따라 생존과 번식 뿐이라는 주장은 비합리적이다. 오히려 진화심리학의 논리에 따른다면 삶의 목적을 하나로 환원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로 두는 것이 옳다. 우리에게는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 심리 기제를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의 심리 기제는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 즉 하나의 목적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을 생존과 번식으로 환원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이유를 좀 더 살펴보자.

첫째, 지나친 환원은 직관적인 이해에 방해가 된다. 호기심과 같은 탐구 의지는 분명히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탐구 의지에 대해 규명하려고 하는데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만 계속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탐구 의지는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훨씬 나중에 생긴 것이고, 훨씬 복잡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환원주의는 비효율을 유발한다. 그래서 직관적인 이해를 방해한다.

예를 들어보자. 날아가는 야구공의 궤적을 계산할 때 야구공의 원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다루기 위해 양자역학을 도입하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공 자체를 하나의 물체로 보고 고전 역학으로 공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거기에 공이 바람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해석하기 위해 유체역학을 도입하면 된다. 공이나 바람이 원자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공과 바람은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입자들이 아주 단단히 뭉치면 하나의 물체를 이뤄 어떤 특성을 띠게 된다. 거기서부터는 고전 역학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다. 입자들이 단단히 뭉치지는 않더라도 어떤 경향성을 띠며 움직일 때는 유체역학이나 열역학으로 설명하면 된다. 고전 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모두 양자역학의 기반 위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시야가 입자보다 커지면 입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것보단 전체적인 경향성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동기를 계속 생존과 번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비효율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 복잡한 동기는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설명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복잡한 동기가 생존과 번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만 처음에 확인하면 된다. 한 번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 복잡한 동기가 생긴 기원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알고 나서는 복잡한 의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설명에 의지하면 된다.

둘째, 자연 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기제들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들을 추적하긴 하지만, 완벽하게 그것을 추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추적에는 자연 선택의 의지 같은 것은 담겨 있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혀의 G-단백질을 통해 단맛을 느낀다. 이 단백질에 설탕 같은 당이 결합하면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당은 탄수화물이므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 아주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그래서 단맛을 느끼고, 단맛을 추구하는 기제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완벽히 생존을 추적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설탕과 분자 구조가 비슷한 물질들도 G-단백질에 결합하여 단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대체당이라고 한다. 대체당은 에너지원이 될 수는 없어도 단맛은 느껴진다. 만약 G-단백질이 아주 정교해서 오직 진짜 당하고만 결합할 수 있었다면 생존에 더욱 완벽하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에는 어떤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단맛을 감지하는 것이 그렇게 정교하지 않아도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작동했으므로, 그런 기제가 남은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 기제들이 생존과 번식을 추적한다고 해서 그것으로부터 삶의 목적을 추론해내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런 추적에는 일반적으로 의지가 없다. 그래서 기제들은 완벽한 생존과 번식을 추적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지, 즉 욕망과 동기로부터 삶의 목적을 추론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삶의 목적을 생존과 번식으로 지나치게 환원하는 진화심리학적 해석을 살펴보았다. 그 중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정리해보자.

첫째, 삶의 목적은 한 가지로 환원할 수 없다. 그것보다는 삶의 목적을 여러 목적들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

둘째, 삶의 목적은 의지로부터 추론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구나 동기 이론을 살펴봐야 한다.

셋째, 생존과 번식은 분명히 삶의 목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존과 번식이 우리의 심리 기제를 만드는 기본 원리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번식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 만약 생존과 번식이 우리의 심리 기제를 만드는 기본 원리라면 그런 의지는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과 번식이 삶의 목적 중 하나라는 것은 그런 의지로부터 추론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