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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2020
스포일러 있음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죽을 운명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과 그 유한성에 대한 공포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기 전에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기록되어 전승되는 최초의 문학, 최초의 신화, 그리고 최초의 영웅 이야기. 최초의 문학, 최초의 신화는 맞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이 최초의 영웅 이야기는 될 수 없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그리는 길가메시의 모습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은 모두 모순적인 존재이며 영웅 역시 인간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서사시 곳곳에 길가메시의 비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우루크의 왕으로서 그의 통치 능력은 뛰어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왕인 동시에 초야권을 행사하는 잔인한 인간이었고, 도시의 남자들을 한탄하게 했다. 이 서사시에서 길가메시 다음으로 비중이 큰 엔키두는 우루크 사람들의 한탄을 듣고 아루루가 창조해낸 존재다. 길가메시에 대항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인 것이다.
길가메시의 못된 짓을 끝장내겠다고 우루크성으로 간 엔키두와 길가메시가 만나면 둘의 결투 내용이 아주 길게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대결은 고작 몇 줄의 서술에서 끝나고, 그들은 이내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어느 날 뜬금없이 훔바바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는 훔바바를 죽임으로써 땅에서 악을 추방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 땅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에서 모두 그는 ‘이름’과 ‘명성’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다.
“내가 쓰러지면 난 나의 이름을 알릴 걸세. 그러면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훔바바와 대결한 길가메쉬’라고 말할 테니.”
“그들이 비록 죽는다 해도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걸세.”
“엔키두.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넘어서서 살 수 없기에 나는 산속으로 떠나고 싶다. 그곳에 내 명성을 세우기 위해서. 그곳이 내 명성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나는 어떤 명성도 세워지지 않은 그곳에 신들의 명성을 세우겠다.”
반면 엔키두는 훔바바를 죽이러 가는 것은 위험하며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며 길가메시를 여러 번 말린다. 그때 길가메시는 엔키두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들은 샤마쉬와 함께 영생을 누리는 반면 인간의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거늘, 사람이 무엇을 해본들 일순간의 바람보다 더 하겠는가. 그대마저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
“이보게, 친구. 자네도 저들과 똑같은 말을 할 건가? ‘나는 죽음이 두렵다’라고. 응?”
마치 본인은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으며,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명성이라는 듯이 말한다. 길가메시를 말리던 엔키두는 결국 훔바바를 죽이러 가는 길에 동참하고, 옆에서 길가메시를 지켜주기로 한다.
보통의 영웅 이야기라면 이제 담대하고 겁없는 길가메시가 곧장 삼목산으로 달려가 훔바바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삼목산으로 가는 길 내내 엔키두에게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길한 꿈을 꾸었다면서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 떨어졌다는 둥 자꾸만 훔바바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한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인다. 엔키두는 계속해서 꿈들이 길몽이라면서 길가메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태양신 샤마쉬조차 길가메시에게 서두르라고 경고한다. 위대한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마음 먹고서는 계속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모습이 보통 인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찌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훔바바와의 대결에 관해 서술된 수메르어 판본에서도 역시 길가메시는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훔바바의 후광을 빼앗기 위해 어머니 닌순, 아버지 루갈반다의 목숨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여동생 페쉬투르를 산으로 보내 훔바바의 부인으로, 다른 여동생 마투르를 산으로 보내 첩으로 삼게 하겠다고. 당연히 그는 훔바바의 뒤통수를 친다. 오죽하면 훔바바가 이렇게 말할 정도다.
“영웅이 ……속이는 행동을 하다니!”
초야권을 행사해 도시의 모든 남성들이 한탄하게 만들고, 엔키두에게 너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고 묻더니 막상 거사 앞에서 겁에 질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부모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며 여동생을 팔고 뒤통수를 치는 인간이 과연 영웅인가? 그다지 영웅스럽지 않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를 아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서사시는 ‘죽음의 공포에 관한 서사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함께 훔바바를, 하늘의 황소를 죽였다. 수메르어 판본에서는 길가메시가 훔바바의 목숨을 살려주려고 할 때 엔키두가 훔바바를 살해하고, 길가메시가 하늘의 황소를 죽일 때는 엔키두가 요령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엔키두는 신들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부터 이 서사시의 정수가 시작된다. 길가메시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죽음을 목도했다. 엔키두의 죽음 이후 길가메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죽을 것이다! 나도 엔키두와 다를 바 없겠지?! 너무나 슬픈 생각이 내 몸속을 파고드는구나! 죽음이 두렵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도 타인의 죽음을 목도했다. 훔바바를 죽이러 삼목산으로 떠나기 전에 길가메시는 태양신 우투(샤마쉬)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우투여. 제가 당신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귀 기울여 들어주실 말씀이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들어주십시오! 제가 사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마음이 고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라집니다. 그 때문에 저는 비애를 느낍니다. 제가 목을 길게 빼고 도시의 성벽 너머로 바라보면, 시체들이 강을 따라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본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제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산 위로 펼칠 만큼 몸이 넓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산속으로 떠나길 원합니다. 저는 제 명성을 세우겠습니다. 저는 어떤 명성도 세워지지 않은 그곳에 신들의 명성을 세우겠습니다.”
이때도 길가메시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고, 비애를 느꼈다. 이때도 길가메시는 죽음이 본인에게도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죽음에 대한 해답이 자신의 ‘명성’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친구 엔키두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길가메시의 해답은 명성이 아니라 ‘죽음을 피하는 것’이 된다.
우리 인간은 젊은 시절에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깊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시절은 결국 지나고, 언젠가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과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필멸의 존재임을 인식한다.
길가메시가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볼 때 그는 진정으로 죽음을 마주하지 않았다. ‘나의 형제’, ‘나의 친구’가 죽는 순간 그는 진정한 의미로 죽음이라는 존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그에게는 죽음을 피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긴 여정을 떠난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은 길가메시에게 충고한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여인숙의 주인 씨두리는 길가메시의 마음 깊은 곳에 비애가 서려 있음을 알아채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는 씻고 몸은 닦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길가메시의 마음에 비애가 서려 있는 이유는 모두가 꼭 한 번은 반드시 도착하는 인생의 종착역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씨두리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라 말한다. 밤낮으로 즐기고 놀고, 아이들을 돌보고, 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바로 인간이 즐길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씨두리의 말을 당최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씨두리에게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라고 묻는다. 인간의 숙명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여정을 강행한다.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통해 영생을 얻은 자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간다. 어렵게 찾은 우트나피쉬팀조차 길가메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쉼 없이 고생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고생 끝에 네 자신이 완전히 지쳐버리면, 너는 네 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고 너의 긴 인생 항로를 조급히 끝내는 길로 접어든다! 인간, 그들의 자손들은 갈대처럼 부러진다. 잘생긴 젊은이나 귀여운 소녀들도 죽음은…… 아무도 죽음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비정한 죽음은 인간을 꺾어버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가 가정을 이끌고 갈 수 있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가 유언장에 침을 바르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형제들이 상속받은 재산을 나누어 갖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증오심이 마음속에 남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홍수로 일어난 강물이 흘러넘칠 것이며, 잠자리들이 강물 위에서 표류할 것인가! ‘태양의 얼굴’을 바라보는 얼굴은 결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법. 잠자는 자와 죽은 자는 얼마나 똑같은가! 죽음의 형상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도다! 바로 그것이다. 너는 인간이다! 범인이든 귀인이든, 꼭 한 번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고, 하나처럼 모두 모여든다.”
우트나피쉬팀의 말처럼 범인이든 귀인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것처럼 보이는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도 마찬가지다. 그조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피하려고 한다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불멸의 인간이 되고자 한다면, 누구든 자신의 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고 긴 인생 항로를 조급히 끝내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우트나피쉬팀의 말을 듣고도 영생을 얻고 싶어 한다. 우트나피쉬팀은 그에게 과제를 하나 준다. 6박 7일 동안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과제다. 그리고 길가메시는 7일을 내리 잔다. 168시간의 잠조차 참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트나피쉬팀은 빈손으로 그를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그의 아내가 길가메시에게 연민을 느껴 고생한 그에게 선물을 줄 것을 제안한다. 우트나피쉬팀은 어떤 식물을 얻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식물은 불로초다. 길가메시는 불로초를 손에 넣지만 그가 샘에서 목욕할 때 뱀이 그것을 훔쳐간다. 길가메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영생을 얻지 못한 길가메시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그가 죽기 얼마 전 어느 신의 음성이 들린다.
“오, 길가메쉬! 큰 산이며 신들의 아버지인 엔릴은 왕권을 네 운명으로 주었으나 영생은 주지 않았다. 길가메쉬, 이것이 바로 네 꿈의 의미였다. 그렇다 하여 슬퍼해서도,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너는 이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고난의 길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품고 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인간의 가장 고독한 장소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멈추지 않는 밀물의 파도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로 인한 작은 접전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
인간은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죽을 운명을 품고 살아간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전투다. 신은 길가메시에게 이에 분노한 채로 저승에 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길가메시는 이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루크의 위대한 왕, 닌순의 아들, 2/3는 신인 인간, 엔키두의 친구, 훔바바를 죽인 자, 하늘의 황소를 죽인 자는 죽었다.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그는 과연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을까? 분노로 얽힌 마음 없이 저승에 갔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그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나도 길가메시처럼 죽음이 두렵다. 아주 많이 두렵다.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서사시의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길가메쉬는 여전히 젊은이다. 성숙하여 어른이 되면 누구든지 다 받아들이는 죽음을 거절한다. 그는 죽음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샤마쉬 앞에서 절규하는 것이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고.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태양신 샤마쉬와의 대화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샤마쉬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가 찾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길가메시는 이렇게 답한다.
“여행이 끝난 뒤에, 대초원을 방황한 뒤에, 저는 제 머리를 땅속에 묻게 될까요? 그러고 나면 잠들고…… 영원히 잠든다? 안 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언젠가 끝나고 영원히 잠든다는 것은 끔찍하다. 나는 아직 죽음을 용납할 수 없다. 성숙하여 어른이 되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이라면, 나도 여전히 젊은이인가보다. 젊은 길가메시처럼.
언젠가 나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때 인간이 필멸의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될까? 아니면 길가메시처럼 죽음을 피하려고 발버둥칠까? 만약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정말 성숙한 어른이 된 것일까?
어쨌든 길가메시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 그는 이 땅에 명성을 남기고자 했고, 다음에는 죽음을 피하고자 했다.
비록 그의 두 번째 목표는 실패했지만, 첫 번째 목표는 실현되었다. 4,600–4,800년 전에 살았던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이렇게 글로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명성을 세웠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그는 ‘무시무시한 훔바바와 대결한 길가메쉬’다. 그의 이름은 망각 속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그는 땅에서 이름이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