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A Space Odyssey (Stanley Kubrick, 1968, UK-USA, 139m, Col

2001: A Space Odyssey (Stanley Kubrick, 1968, UK-USA, 139m, Col)

스포일러 있음

두려움을 극복한 인류의 발전과 그 부산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모놀리스가 4번 등장한다. 그중에서 생명체가 모놀리스를 만지거나, 아니면 멀리서 그것을 만지듯이 가리키는 신은 세 번 나온다. 이 모놀리스와 생명체가 그것을 만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모놀리스는 아마도 이런 존재인 것 같다.

  1. 앎, 혹은 진실로 이끌어 그로 인한 도약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
  2.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존재
  3. 도약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에 방관하는 존재

처음으로 유인원이 모놀리스를 만지는 신을 보자. 유인원들 앞에 나타난 모놀리스는 미지의 대상이다. 미지의 것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유인원은 모놀리스를 보자마자 만지지 못한다. 그것에 손을 가져다대려고 하다가 뒤로 빼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비로소 그것을 만진다. 모놀리스를 만진 후, 유인원들은 뼛조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하자 고기를 편하게 먹을 수 있었고(쉬워진 살육), 그들 사이에서도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위계도 생겼다.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인 뼛조각을 촬영한 숏와 인공위성 숏의 매치 컷이 기나긴 세월의 간극을 좁힌다.

뼛조각은 유인원이 모놀리스를 만지기 전에도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저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유인원들은 도구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지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폭력은 피할 수 없었다. 뼛조각과 인공위성은 앎을 통한 도약, 발전이 낳은 부정적인 부산물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두 번째로 인간이 모놀리스를 만지는 신을 보자. 인간은 달 표면에 묻힌 모놀리스를 통해 외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주비행사들이 나누는 대화에 의하면 이 모놀리스는 4백만 년 전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4백만 년 전쯤 출현했음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유인원들에게 모놀리스가 나타난 때와 같은 시간대에 묻힌 것 같다). 이번에도 인간은 두려운 손길로 모놀리스를 만진다. 이후 인류는 목성 탐사와 인공 지능 창조라는 거대한 도약을 하게 된다.

사실 모놀리스를 만진다고 해서 표면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인간이 미지의 것을 탐구하고 미지의 공간을 탐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저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놀리스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존재로도 생각했다.

목성 탐사와 인공 지능 창조라는 도약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도약에 뒤따르는 부산물이 존재한다. 디스커버리호의 승무원인 데이브와 프랭크는 인간이지만 사실상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우주선에 관한 모든 것은 인공지능인 HAL이 관장하고 있다. 그리고 할은 자신의 존재 의미가 훼손되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승무원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데이브를 제외한 승무원들을 죽였으며, 결국 데이브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 비극을 모놀리스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간이 모놀리스를 가리키는 신을 보자. 혼자 남은 데이브는 목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모놀리스를 통해 스타게이트를 통과해 어느 호텔방에 도착한다(그는 스타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생명의 창조, 우주의 기원에 대한 앎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 도착한 젊은 데이브는 늙은 모습의 데이브를 보고, 늙은 데이브는 자신보다 더 늙은 모습의 데이브가 식사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식사하던 데이브는, 임종 직전의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는 보편적 인간과는 달리, 모든 시간대에 동시에 존재하는 자신을 본 데이브는 인간의 선형적 인식을 뛰어넘은 것 같다. 영화 <컨택트>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들처럼,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임종 직전의 데이브는 모놀리스를 보게 되고, 그것을 가리킨다. 그러자 그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태아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태아는 결코 일반적인 태아의 형상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임종 직전의 데이브가 모놀리스를 가리킨 후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태아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데이브가 영원회귀사상을 깨달았다는 뜻처럼 보인다.

그가 영원회귀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어 한 단계 도약했다면, 그에 따르는 부정적 부산물은 무엇이 될까? 니힐리즘(허무주의)이 될 것이다. 영원회귀사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택할 수 있다. 니힐리즘에 빠질 것인지, 혹은 영원한 회귀 속에서도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갈 것인지. 초월자의 눈을 지닌 태아가 지구를 바라보는 마지막 신을 보면, 나는 그가 후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모놀리스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어 앎, 깨달음, 진리로 이끌고, 그에 따른 도약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다. 그러나 그뿐이다. 모놀리스는 그 뒤에 따르는 일은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것을 방관한다.

내가 평생 탐구해 얻을 진리도 나를 어떤 길로 이끌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어떤 진리를 발견하더라도, 그 어떤 깨달음을 얻더라도,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긍정적인 부산물을 낳을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